인터뷰 | ‘소리도 없이’ 홍의정 감독이 빚어낸 기묘한 아이러니의 세계

2020-10-14 13:51 위성주 기자
    “일반적인 직장생활 같은 모습 그리려 했다”
    “이야기 원형은 별주부전”

[맥스무비= 위성주 기자] 영화 ‘소리도 없이’가 관객과 만날 채비를 마쳤다. 충무로를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 유아인, 유재명의 열연이 관객을 사로잡은 작품으로, 홍의정 감독이 빚어낸 기묘한 아이러니의 세계가 특별한 감상을 남겼다.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소리도 없이’의 연출을 맡은 홍의정 감독을 만나 영화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 '소리도 없이' 홍의정 감독.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 '소리도 없이' 홍의정 감독.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 ‘소리도 없이’는 유괴된 아이를 의도치 않게 맡게 된 두 남자가 그 아이로 인해 예사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담았다. 한나 아렌트가 역설한 ‘악의 평범성’이 자연스레 상기되는 작품으로, 홍의정 감독의 독특한 세계관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야기의 원형이 ‘별주부전’이었다는 홍의정 감독, 그가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홍의정 감독은 “생존을 위한 이야기를 그리려 했다”며 ‘소리도 없이’를 기획했던 과정을 회상했다. 

“우리가 태어날 때 환경을 결정하지 못하지 않은가. 선택하지 못한 환경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치면서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 괴물이 되어가는 것 같다. 이야기의 원형은 별주부전이다. 납치된 토끼가 오히려 악하고 교활한 것처럼 묘사되는 것이 불공평 해 보이더라. 사실 생존하려고 꾀를 쓴 것이지 않나. 악하다, 혹은 선하다에 대해 함부로 말하기 힘든데, 단정지어 이야기하는 것을 공평치 못하다고 생각했다.” 

영화 '소리도 없이' 홍의정 감독.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 '소리도 없이' 홍의정 감독.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선과 악에 대해 쉽게 낙인 찍는 사회를 향해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진 ‘소리도 없이’. 홍의정 감독은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 생각났다는 말에 “알아봐 줘서 감사하다”며 영화에 담긴 의도를 설명했다. 

“우리가 생활하면서 겪는 일반적인 직장생활과 창복과 태인이 행하는 시체유기 같은 일들이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새로 그리려 했다.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악에 대해 쓰고 싶었고, 이를 범죄 소재와 연결 지었다. 이에 더해 선한 의도로도 잘못된 결과를, 나쁜 의도로도 긍정적인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함을 담았다. 

선과 악은 시간의 흐름과 사회의 모습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단지 지금까지 이야기를 하려고 고민한 것은 너무 단편적으로 어떤 것을 해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자기반성이다. 누군가가 현재의 모습이 되기까지는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던 그의 환경 덕분일 수 있는데, 단면만을 보지 말자는 반성적인 자세인 것이다.” 

영화 '소리도 없이' 제작현장.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 '소리도 없이' 제작현장.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소리도 없이’는 작품에 담긴 메시지뿐만 아니라 다양한 미장센을 통해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기도 했다. 납치된 아이 초희(문승아)의 기괴한 토끼 가면부터, 태인(유아인)이 집착하는 정장까지. 화면 곳곳에 배치된 모든 것들에는 홍의정 감독의 치밀한 의도와 계산이 깔려 있었다. 

“수많은 고민의 절규 끝에 나온 이미지들이다. 시나리오부터 여러 생각을 했는데, 끔찍한 상황이 펼쳐지는 와중에도 배경은 화창해 반대되는 느낌을 주길 원했다. 그러한 어긋남을 계속해서 그리려 했다. 특히 토끼 가면은 토끼라는 동물의 이미지가 주로 약자로 소비됐는데, 사람들이 초희를 약자라고 느끼게 하되, 조금 징그럽게 만들어 그 안에 무언가 다른 것이 있음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영화 '소리도 없이' 스틸.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 '소리도 없이' 스틸.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한편 ‘소리도 없이’는 주연을 맡은 유아인이 한 마디도 대사가 없다는 이유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조연 캐릭터도 아닌, 영화의 전반을 이끄는 중심 인물에게 대사가 없다는 것은 상업영화로서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터. 허나 홍의정 감독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획 과정부터 확고한 의지를 다지며 태인에게 대사를 부여하지 않았다. 

“태인은 말을 못하는 사람은 아니다. 말을 안 하는 사람이다. 물론 시나리오부터 말이 많았다. 영화를 보면 그가 말을 못하는 이유도 없고, 애매하게 말을 할 줄 아는데 안 하는 것인지도 명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고집을 부리며 그렇게 했던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세상이 들어주지 않으면, 말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란 것이었고, 두 번째는 신체적인 문제가 눈에 띄어야 자신의 배경을 선택하지 못한다는 현실적 한계를 그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창복은 다리를 절고 있고, 태인은 말을 안 한다.” 

영화 '소리도 없이' 홍의정 감독.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 '소리도 없이' 홍의정 감독.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견고하게 쌓여진 홍의정 감독의 세상 위에 충무로를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인 유아인과 유재명의 압도적인 연기가 펼쳐지니, ‘소리도 없이’는 공개와 동시 단숨에 보는 이의 호흡을 앗아갔다. 스크린에 그려진 홍의정 감독의 세상은 비현실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언론시사 직후, 쏟아지는 찬사에 홍의정 감독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라며 겸손을 표했다. 

“신인이고, 시국이 좋지 못하다 보니 서로 기운을 불어넣어주시고자 좋은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좋은 분들을 만난 것이 저의 운인 것 같다. 함께 고생해주신 분들이, 영화를 보고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행히 무사히 극장에 걸렸는데, 관객이 보고 마음에 드는 장면이 있었으면 좋겠다.”

위성주 기자 / whi9319@maxmov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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