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담쟁이’ 한제이 감독 “담쟁이처럼 연대해 ‘벽’ 뛰어 넘었으면”

2020-10-26 16:12 위성주 기자
    “도정환 시인의 詩 떠올리며 그린 작품”
    “관객에게 질문거리 던지고 싶었다”

[맥스무비= 위성주 기자] 가족의 의미에 대해 당찬 질문을 던진 영화 ‘담쟁이’가 관객과 만날 채비를 마쳤다. 행복한 일상을 누리고 있던 한 커플이, 갑작스러운 사고 이후 현실의 벽을 마주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신예 한제이 감독의 신선한 감각이 엿보여 눈길을 끌었다.  

고단한 현실을 살아가는 한 동성애 커플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꾸려갔지만, “퀴어 장르가 아니라 가족 이야기를 그리고자 했다”는 한제이 감독. 그는 어떤 심경으로 ‘담쟁이’를 기획한 것일까. 서울 신사동 한 카페에서 영화 ‘담쟁이’를 연출한 한제이 감독을 만나 영화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 '담쟁이' 한제이 감독. 사진 (주)트리플픽쳐스
영화 '담쟁이' 한제이 감독. 사진 (주)트리플픽쳐스

영화 ‘담쟁이’(감독 한제이)는 누구보다 행복했던 은수(우미화)와 예원(이연) 커플이 뜻밖의 사고 이후 현실의 벽을 실감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는 성 소수자인 두 인물이 주인공이지만, 지난 퀴어 영화들과는 달리 그들의 성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나, 격정적인 사랑이 그려지진 않았다. 

되려 영화가 그리던 것은 한 퀴어 커플의 애절한 사랑이라기 보다, 그들이 마주해야 할 차가운 현실의 벽이다. 온갖 우여곡절을 겪는 은수와 예원, 수민(김보민)은 가족으로 살아가고자 하지만, 우리 사회의 편견 어린 시선과 고루한 법 체계는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한제이 감독은 바로 이러한 지점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영화를 기획할 당시부터 퀴어 영화가 아닌 가족에 대한 영화이자, 대안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는 “대안가족은 많아지는데, 법 체계나 사회의 인식은 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영화를 기획한 계기를 밝혔다. 

영화 '담쟁이' 스틸. 사진 (주)트리플픽쳐스
영화 '담쟁이' 스틸. 사진 (주)트리플픽쳐스

“한 아이가 누군가를 기다리는 장면이 떠올랐던 것에서부터 영화를 시작했다. 한 가족의 이혼과 같은 것이 아닌, 사회 구조적 문제로 버려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다 과거 관람했던 작품 중 동성 커플이라는 이유로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못하는 장면이 생각났고, 이를 통해 대안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 성 소수자에 대한 접근은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그런 소재가 묻어난 것 같다.” 

변화하는 가족의 양상과 그에 발 맞추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이면을 그리고자 했다는 한제이 감독. 그렇다면 ‘담쟁이’라는 제목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에 한제이 감독은 도정환 시인의 시(詩) ‘담쟁이’를 언급하며 “영화 속 캐릭터들이 담쟁이 잎 같았다”고 회상했다. 

“은수, 예원, 수민이 시 ‘담쟁이’의 구절에 나오는 담쟁이 잎들 같았다. 보시는 분들이 옆에 있는 사람의 손을 잡고 연대해서, 남들이 오르지 못할 것이라는 벽이나 규범 따위를 뛰어넘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미가 담겼다. 일전에 한 관객이 영화 후기로, ‘관객으로서 나도 그 담쟁이 잎 중 하나 같았다’고 말해 줬던 것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영화 '담쟁이' 스틸. 사진 (주)트리플픽쳐스
영화 '담쟁이' 스틸. 사진 (주)트리플픽쳐스

그렇게 따뜻한 의미가 담긴 작품이지만 영화의 결말이 썩 행복하진 않다. 은수는 자신이 처한 비극적인 현실을 받아들이고, 큰 슬픔을 마주할 것을 알면서도 예원과 수민을 위해 안타까운 결단을 내린다. 한제이 감독은 “행복하게 완성된 결말을 보여주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며 “관객에게 질문 거리를 던져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영화 속 인물들이야 결과적으로 언젠가 함께 할 수 있을 수 있겠지만, 관객은 영화를 통해 다양 감정을 느꼈으면 했다. 누군가는 이들의 행복을 기원할 것이고, 죄책감이나 화를 느낄 수도 있다. 이들을 통해 희망을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행복한 장면으로 끝내버리면 그것에 만족할 것 같더라. 그보다는 관객에게 우리 사회에 산적한 여러 사안들에게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거리를 던져주고 싶었다.” 

한편 한제이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영화와 캐릭터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모든 연출자가 자신의 작품을 사랑하는 것은 매한가지지만 한제이 감독에게는 그 중에서도 남다른 애정이 엿보였다. 

영화 '담쟁이' 한제이 감독. 사진 (주)트리플픽쳐스
영화 '담쟁이' 한제이 감독. 사진 (주)트리플픽쳐스

“이 스크린 속 세계가 마치 진짜 같았다.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를 배우와 스태프가 합을 맞춰 구현했을 때 이상한 카타르시스가 있었다. 배우들도 그들의 본명이 아닌 맡은 캐릭터의 이름으로 불렀다. 촬영이 끝나고도 한동안 그 세계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배우가 캐릭터에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보는 것 조차 힘들었다.” 

깊은 애정을 쏟은 작품이 개봉을 앞뒀다는 소식에 한제이 감독은 “요즘 들어서야 개봉한다는 실감이 난다”며 “참 감사한 일이라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극장에서 관람하셔야 더 좋은 영화일 것”이라면서도 “건강하게, 조심하시면서 보셨으면 한다”고 당부의 말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한제이 감독은 “관객이 ‘담쟁이’를 보고 영화 속 주인공들을 응원하는 마음이 생겼으면 좋겠다”며 “그들의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극장을 나가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위성주 기자 / whi9319@maxmov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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