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게임 다큐 '내언니전지현과 나', 버려진 기억의 편린을 재조립하는 과정

2020-12-01 10:09 강지원 기자
    사회 내부의 다양한 유저들 감정 녹여낸 수작
사진제공=호우주의보
사진제공=호우주의보

[맥스무비= 강지원 기자]

1990년대 말, PC방의 등장과 더불어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등 다양한 게임으로 대한민국은 본격적인 온라인게임 열풍에 빠져들었다.

이후 국내 게임개발사들도 너도 나도 온라인게임 개발에 뛰어들며 리니지, 라그나로크, 아스가르드 등 다양한 게임을 선보였다.

현재 30대 이후의 세대들에겐 이미 향수가 된 게임들, 그 중에서도 ‘일랜시아’라는 게임은 그 자체로 추억 속 편린으로 자리잡았다.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이제는 '잊혀진 게임' 일랜시아를 중심으로 그 시절 향수를 찾아 떠나는 다큐멘터리다.

사진제공=호우주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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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도 넥슨에서 서비스를 하고 있는 MMORPG 게임 '일랜시아'는 이름만 들어서는 대부분 '뭐지?' 할 정도로 생소할 수도 있다. 1999년에 서비스를 시작해 현재 10년이 넘게 업데이트를 하지 않는 '사실상 방치중'인, '고인물'들의 전유물이다. 하지만 대부분 온라인 게임들이 그렇듯, 수익을 내지 못하면 2~3년 내에 서비스 종료를 하는 업계에서 현재까지 꾸준히 서비스를 이어 오는 것 자체만으로로 대단한 게임이기도 하다.

영화의 감독이자 주인공인 박윤진은 당시 게임을 하면서 인연을 맺은 친구이자 가족이라고 불리우는 유저들을 찾아가 그들의 기억을 되짚어본다.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찾아가며 1999년 이후 당시 사회상을 되돌아보며, 단순히 게임 추억팔이가 아니라 시대의 변화로 인한 사회 내부의 다양한 유저들의 감정을 녹여냈다.

당시 일랜시아를 시작했던 유저들은 어린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모두 사회의 구성원이 된 성인이 되었고, 그들이 모여 친목을 나누며 게임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는 모습은, 정부에서 ‘게임은 질병’이라고 홍보하는 캐치프라이즈 개념에 반하는 짜릿한 장면으로 반전된다.

사진제공=호우주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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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내 일랜시아의 유저들은 게임에 대한 애착이 강한 장면들은 마치 가족 구성원들이 가정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모습과도 흡사하다.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유기체 역할을 하는 동시에, 게임이 보여줄 수 있는 '순기능'에 대한 잔잔한 표현이 인상적이다. 온라인 게임을 한번이라도 경험했던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장면들도 그래서 설득력을 얻는다.

지금의 인기 게임은 높은 티어(등급)로 오르기 위한 노동적 요소가 강해졌고, 스트레스 해소 목적으로 시작한 게임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일랜시아를 비롯한 당시의 게임들은 2000년대 초반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문화라는 생각이 들만큼 정이 깃든 기억의 단편이다.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누군가에게 추억이었고, 가족이었고, 문화였고, 생활의 전부이기도 한 모습을 잔잔히 잘 담아낸 수작이다.

박윤진 감독의 이 작품은 지난 5월 인디다큐페스티벌 2020에서 상영된 후 제12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제22회 정동진독립영화제, 제24회 인디포럼 등에서 연이어 소개됐고, 제12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젊은기러기상, 제22회 정동진독립영화제 땡그랑동전상 등을 받았다.

넥슨 고위 관계자들이 상영관을 찾아 박 감독과 만남을 갖기도 하는 등 게임업계의 관심도 높아 눈길을 끌었으며, 영화는 정식 개봉을 앞두고 재편집을 거쳐 상영 시간을 기존 70분에서 86분으로 늘렸다. 

단, 게임 화면이 교차하는 컷의 빈도가 높아 일랜시아를 모르는 이들에겐 흐름이 다소 끊긴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는 점은 아쉽다.

개봉: 12월 3일/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감독: 박윤진/출연: 박윤진 외/배급: 호우주의보/러닝타임: 86분/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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