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미나리’ 모두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원더풀 노스텔지어

2021-02-18 18:53 위성주 기자
    담백하면서도 깊은 여운으로
    그립고 사랑스러운 지난날 우리들의 초상

[맥스무비= 위성주 기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이어 정이삭(아이작 정) 감독의 ‘미나리’가 해외 평단의 이목을 집중시킨다는 이야기는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다. 분명 그만큼의 기대를 안고 영화를 마주했으나, 그러한 마음의 준비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노스텔지어라니. 시사회가 아닌 영화제에서 관람했더라면 기립박수를 보내기에 여념이 없었으리라.

영화 '미나리' 스틸. 사진 판씨네마
영화 '미나리' 스틸. 사진 판씨네마

서로 외에는 희망이 없었던 한국을 뒤로하고,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낯선 미국 땅으로 건너온 한국 가족. 캘리포니아의 여러 도시를 거치며 정착할 곳을 찾던 이들은 아칸소주 한 시골 마을로 이사와 자리 잡기 시작한다. 가족들에게 뭔가 해내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아빠 제이콥(스티븐 연)은 자신만의 농장을 가꾸기 시작하고, 엄마 모니카(한예리)도 다시 일자리를 찾는다.

한편 제이콥과 모니카는 아직 어린 아이들을 위해 모니카의 엄마 순자(윤여정)와 함께 살기로 결정한다. 이내 가방에 고춧가루와 멸치, 한약, 미나리 씨앗을 잔뜩 담은 할머니가 도착하지만, 의젓한 큰딸 앤(노엘 케이트 조)과 장난꾸러기 아들 데이빗(앨런 김)은 여느 할머니 같지 않은 순자가 영 미덥지 못하다.

영화 ‘미나리’는 한국계 이민자 2세인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작품으로, 희망을 찾아 낯선 미국 땅으로 떠나온 한국 가족의 특별한 여정을 담았다.

제37회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을 비롯해 전미 비평가위원회 시상식 등 주요 영화상을 석권했으며 오스카의 바로미터로 불리는 미국 영화 연구소(AFI)에서 올해의 영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오는 제78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는 외국어영화상 부문에 후보로 이름을 올렸으며,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요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영화 '미나리' 스틸. 사진 판씨네마
영화 '미나리' 스틸. 사진 판씨네마

흔히 지난 추억을 상기시키는 영화들은 관객의 눈물샘을 억지로 자극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야기의 흐름과 전혀 동떨어져 있음에도 구태여 특별한 사연을 인물들에게 쥐여주며 보는 이의 마음을 쥐어짠다. 국내 영화에서 흔히 지적받는 ‘신파’가 그것이다.

허나 ‘미나리’는 그러한 신파가 전혀 없음에도 단숨에 관객의 마음을 휘어잡더니, 어느새 경탄토록 만든다. 지난 영화들의 클리셰를 따르거나, 의도적으로 관객의 마음을 자극하는 일이 없이 이야기가 흘러감에도, 정이삭 감독이 그려낸 지난날의 초상은 더없이 담백하지만 동시에 모두의 공감을 자아내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지만, 영화는 모두의 흉터를 따뜻하게 보듬는다. 찬란한 꿈과 비참한 현실 사이, 여러 선택지 가운데 혼란과 두려움만 가득한 제이콥 가족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잘 자라나는 미나리를 따라 되레 험난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용기를 북돋운다.

영화 '미나리' 스틸. 사진 판씨네마
영화 '미나리' 스틸. 사진 판씨네마

‘미나리’에 그러한 힘이 담길 수 있었던 것은 자전적 이야기를 스크린에 옮긴 정이삭 감독이, 영화가 자신만의 추억에 빠져들지 않도록 노력했던 이유일 터다. 영화는 분명 빛바랜 사진첩을 들춰내며 노스텔지어를 그리지만, 큰 질척거림 없이 이야기를 꾸려간다. 각자의 선택을 하는 가족 모두가 나름의 정당성을 갖고, 제이콥-모니카 가족에게 닥친 시련은 관객의 지난 어려움을 떠올리게 만들며 공감대를 형성한다.

어떤 흠도 잡을 수 없는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는 박수를 부른다. 한예리와 윤여정, 스티븐 연은 물론 아역인 노엘 케이트 조와 앨런 킴 역시 그 어떤 배우도 대체할 수 없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한예리는 왜 충무로가 그를 주목할 수밖에 없는지, 윤여정은 왜 그가 대배우로 불리는지를 여실히 증명했다.

수년 만에 엄마(순자, 윤여정)를 만난 모니카의 짧은 울먹임만으로 한예리는 관객의 눈시울을 붉혔으며, 여전히 윤여정임에도 동시에 순자가 되어버린 대배우의 능청스러움은 세월과 함께 쌓인 깊은 내공을 발하며 스크린을 압도했다. 스티븐 연의 한국어 발음은 어눌한 부분이 없지 않다. 허나 고된 연습이 엿보일 만큼 ‘옥자’(2017)에 비해 자연스러워 큰 거슬림이 없다.

영화 '미나리' 스틸. 사진 판씨네마
영화 '미나리' 스틸. 사진 판씨네마

아프지만 그립고, 사랑스럽지만 떠올리기 힘든 지난날의 초상을 담백함의 미학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는 장르와 성격이 크게 달라 비교하기 어려우나, 해외 평단의 이목이 집중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분명하다. 정이삭 감독과 한예리, 윤여정, 스티븐 연, 앨런 킴, 노엘 케이트 조가 함께 그려낸 이 ‘원더풀 미나리’의 노스텔지어에 큰 박수를 보낸다.

개봉: 3월 3일/관람등급: 12세이상관람가/감독: 정이삭/출연: 스티븐 연, 한예리, 앨런 김, 노엘 케이트 조, 윤여정, 윌 패튼/수입·배급: 판씨네마㈜/러닝타임: 115분/별점: ★★★★

위성주 기자 / whi9319@maxmov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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