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표현의 부적합이 불러온 기묘한 흡입력 ‘스파이의 아내’

2021-03-10 18:09 위성주 기자
    여실히 드러난 저 예산 드라마의 한계
    차라리 연극으로 만났더라면

[맥스무비= 위성주 기자]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과 일본을 대표하는 배우 아오이 유우, 타카하시 잇세이가 합을 맞춘 영화 ‘스파이의 아내’가 국내 개봉 소식과 함께 언론 시사회를 진행했다. 일본 NHK TV 드라마를 영화로 다시 만든 작품으로, 2020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인 은사자상을 수상했을 뿐 아니라, 현대 일본의 병리에 대해 심도 깊은 통찰력을 드러내 왔던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작품인 만큼, 높은 기대를 안고 영화를 감상했다.

허나 영화관의 불빛이 다시 밝혀진 후 남은 감상은 ‘당혹감’이었다. 워낙 장르적으로 자유로웠던 구로사와 감독이긴 했으나, ‘스파이의 아내’는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었다고 평하기엔 어려운 낯섦과 부자연스러움이 가득했다. 구로사와 감독 특유의 비틂이 진하게 묻어났지만, 이는 신선함과 색다름으로 다가오기보다 끊어진 고무줄과 같은 찝찝함을 남겼다. 그런데도 영화는 함부로 단정 짓기 어려운 기묘한 감상을 자아냈다. 영화가 왠지 모를 흡입력을 가졌던 탓이다.

영화 '스파이의 아내' 스틸. 사진 엠엔엠인터내셔널
영화 '스파이의 아내' 스틸. 사진 엠엔엠인터내셔널

먼저 영화의 형식 부분에서 가장 크게 두드러진 부분은 세트와 카메라 동선, 연기 등이 연극적이라는 점이다. 연극을 각색해 영화라는 장르의 특성에 맞게 재조립하진 않았다. 본디 연극이었어야 할 작품을 꾸역꾸역 스크린에 옮겨만 놓은 인상이다.

무대 위 배우를 따라 조명이 움직이듯, 카메라는 연극 무대 위에 있는 듯한 배우의 평면적인 동선을 쫓아 움직였는데, 공간의 이동과 시점이 자유로운 것이 일반적이었던 3차원의 스크린에 이차원적으로 제한된 움직임들만이 표현돼 답답한 감상을 자아냈다.

화면을 채우는 영화의 미술 세트 역시 대학로 작은 공연장의 갓 만들어진 소품을 보는 듯했다. 공간은 한정돼 있으며, 그마저도 제한적으로 사용됐고, 소품은 장난감 같다. 일본 우익 단체의 항의로 제작이 어려웠을뿐더러, 결국 받아낸 예산 역시 적었다는 ‘스파이의 아내’지만, 이렇게까지 어설프다면 변명으로 삼기엔 부족하다. 차라리 외압이 있었다고 한다면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다.

카메라의 움직임과 세트를 따라 배우들의 연기 역시 연극 특유의 과장된 몸짓이 그대로 담겼다. 구로사와 감독의 요구가 틀림없었겠지만, 결국 아오이 유우와 타카하시 잇세이의 퍼포먼스는 살아있는 인물들이라기보다, 실 달린 인형이 삐걱대며 움직이는 모습으로만 보여 안타까움마저 불러일으켰다.

영화 '스파이의 아내' 스틸. 사진 엠엔엠인터내셔널
영화 '스파이의 아내' 스틸. 사진 엠엔엠인터내셔널

TV 드라마를 영화로 재편집하는 과정에서 사라진 장면이 많았던 탓일까. 영화는 형식적 측면을 넘어 캐릭터 설정과 이야기에 있어서도, 기능적인 방식으로 구성했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게 만든다.

오로지 가정의 평화만을 걱정하던 사토코는 갑작스레 남편을 향한 사랑만으로 ‘스파이의 아내’가 되기로 결심하고, 일본 헌병대에 근무하고 있지만 순수한 마음이 남아있던 타이지(히가시데 마사히로)는 한순간에 돌변해 사토코의 뺨에 주저 없이 손을 휘두른다.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는 사토코(아오이 유우)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꾸려가지만, 영화는 시대극과 멜로, 치정극과 서스펜스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길을 잃는다. 구로사와 감독은 사토코를 향해 “사회 안에 머무르지만, 자신을 굽히지 않는 강인한 면모가 있다”고 말했으나, 사토코를 통해 느껴지는 것은 광기에 가까운 의부증일 뿐이고, 사토코와 유사쿠(타카하시 잇세이)의 목적은 어느새 불투명한 감정의 가림막 뒤로 사라져 있다.

영화 '스파이의 아내' 스틸. 사진 엠엔엠인터내셔널
영화 '스파이의 아내' 스틸. 사진 엠엔엠인터내셔널

그러나 앞서 언급하였듯 이 모든 불평 사항들에도 불구하고 ‘스파이의 아내’는 기묘한 흡입력을 지니고 있어 특이하다. 연기는 어색하고, 세트는 조잡하며, 연출은 낯설지만, 온갖 불편함이 충돌하니 되려 영화가 전하고 있는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다. 구로사와 감독의 통찰력은 여전히 발휘되고 있고, 거칠게 쌓인 이미지들 사이로 이를 엿보게 되는 것은 남몰래 숨겨온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켜주기도 한다.

개연성 없이 인물들의 내면이 툭툭 끊기니, 오히려 너무나 당당히 그러하니 “저들은 왜 그럴까”하는 호기심이 들기도 한다. 인물의 속내를 짐작하기 어려운 이야기의 흐름이 온갖 상상을 부추기며 흥미를 자극하는 것일까. ‘스파이의 아내’는 중간과정을 생략한 결과들만을 관객에게 들이밀며 밋밋함을 그럴듯한 담백함으로 포장한다.

요컨대 분명 낯설고, 일견 짜증마저 치밀지만, 함부로 단정 짓긴 어려운 이상야릇한 작품이다. 구로사와 감독의 새로운 시도와 날카로움이 엿보이지만 불친절하고, 흥미로운 동시에 답답하다. 다분히 곤혹스럽다. 물론 대중과 유리된 작품이라는 것만은 분명하겠다. 찬찬히 영화를 뜯어보는 씨네필에게 눈길을 끌 순 있겠으나, 대다수 관객과 호흡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개봉: 3월 25일/관람등급: 12세 관람가/감독: 구로사와 기요시/출연: 아오이 유우, 타카하시 잇세이, 히가시데 마사히로/수입·배급: 엠엔엠인터내셔널㈜/러닝타임: 116분/별점: ★★☆

위성주 기자 / whi9319@maxmov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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