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낙원의 밤’ 돌고 돌아 어둠으로 빠져드는 끝없는 심연

2021-04-05 18:52 위성주 기자
    일말의 미화 없는 처절한 느와르
    작은 화면 아닌 극장에서 만났더라면

[맥스무비= 위성주 기자] 2012년 영화 ‘신세계’로 한국형 느와르의 새로운 전형을 확립한 박훈정 감독이 처절함의 극치를 달리는 새로운 느와르로 돌아왔다. 엄태구, 전여빈, 차승원이 주연을 맡은 영화 ‘낙원의 밤’이 그것. 밤의 끝자락,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참혹한 혈투가 긴장감을 자아내길, 넘어 보는 이의 심장을 완전히 압도한다.

영화 '낙원의 밤' 스틸. 사진 넷플릭스
영화 '낙원의 밤' 스틸. 사진 넷플릭스

서울, 한 작은 조직의 행동대장 태구(엄태구). 그는 전국구 조직 북성파의 회장이 직접 영입을 제안할 정도로 냉혹하고 거침없는 인물이다. 허나 바라만 봐도 베일 것만 같은 눈빛을 가진 그에게도 누구보다 소중한 이들이 있다. 밤거리를 거니는 그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털털한 누나와 귀여운 조카가 그들. 조카를 위해 생일선물을 챙겨주고 두 사람과 헤어진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교통사고로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한다.

세상을 살아갈 희망을 잃고 분노만이 가득한 태구. 그가 따르던 양사장(박호산)은 조직의 목줄을 쥐고 흔들던 북성파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더 이상 목숨마저 아깝지 않은 태구는 피의 복수를 감행한다. 하지만 태구의 기습에도 목숨을 잃지 않은 북성파의 회장. 북성파의 2인자 마이사(차승원)는 다시금 그를 향해 복수를 예고하고, 제주도도를 통해 러시아로 떠나 새 삶을 시작하려던 태구의 뒤로 검은 그림자가 달라붙기 시작한다.

영화 '낙원의 밤' 스틸. 사진 넷플릭스
영화 '낙원의 밤' 스틸. 사진 넷플릭스

영화 ‘낙원의 밤’(감독 박훈정)은 조직의 타깃이 된 한 남자와 삶의 끝에 서 있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지난해 국내 영화로는 유일하게 제77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돼 평단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작품으로, ‘신세계’, ‘마녀’ 등으로 느와르 장르의 대가로 불리는 박훈정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줄곧 뒷골목 세계의 비열한 면모를 비추며 서늘한 감상을 남겼던 박훈정 감독인 만큼 ‘낙원의 밤’은 ‘차가움’ 그 자체다. 영화가 내뿜는 열기란 끝없이 이어지는 복수의 혈전 가운데 튀기는 핏방울과 총알을 내뿜는 총구뿐. 우리에겐 따뜻한 유채꽃밭이 펼쳐지던 제주도는 어느새 비정함과 냉혹함, 참혹함만이 그려진 지옥 그 자체다.

영화 '낙원의 밤' 스틸. 사진 넷플릭스
영화 '낙원의 밤' 스틸. 사진 넷플릭스

이야기의 기본 구조 자체는 지난 박훈정 감독의 작품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가족의 복수를 위해 칼을 든 태구는 조직에게 버림받고, 추격자들을 피해 제주도로 피신하지만, 이내 덜미를 잡힌다. 다만 늘 그렇듯 반전을 사용해 위기를 벗어나던 주인공들의 클리셰를 그대로 답습하지 않았다는 점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든다. 살아갈 의지를 잃고 방황하던 태구는 죽음을 앞두고 비로소 살아가고자 하지만, 죽음의 그림자는 이미 그의 턱밑까지 쫓아와 쉽사리 놓아주지 않는다.

간간히 등장하는 차승원표 유머가 자칫 지나치게 무거워질 수 있는 영화의 분위기를 환기시키나, ‘낙원의 밤’은 박훈정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피비린내가 물씬 풍긴다. 그러면서도 영화는 사건이 아닌 사람에 집중한다. 주인공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하고 승리를 쟁취할지에 관심을 두기보다, 여러 인간군상과 그들의 삶, 감정에 집중한다. 때문에 일전의 어떤 작품보다 마초적이고, 말초적이면서도 나약한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들춰낸다.

영화 '낙원의 밤' 스틸. 사진 넷플릭스
영화 '낙원의 밤' 스틸. 사진 넷플릭스

‘신세계’에서 건달들의 세계를 다소 낭만적으로 그렸다며 비판 받았던 박훈정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낭만이 아닌 잔인함과 비참함만을 수놓았다. 가족의 복수를 위해 칼을 들었던 태구도, 그를 배신한 누군가도, 태구를 쫓는 마 이사도, 심지어는 태구를 위해 안부를 물었던 한 여인 조차도 끝없이 어둠으로 파고드는 심연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박훈정 감독이 각본을 집필했던 ‘부당거래’(2010)가 얼핏 연상된다.

넷플릭스로 만나 아쉬움이 남는 작품 목록에 한편이 추가된 듯 하다. 애당초 대부분의 영화는 극장상영을 목표로 제작됐기에 큰 스크린으로 감상해야 그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지만, ‘낙원의 밤’은 특히 극장에서 만났어야 했다.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과 푸른 칼날이 대비되며 빚어지는 삶의 아이러니는 작은 화면과 깨질듯한 사운드로 담아내기엔 역부족이다. 영화의 매력이 크게 반감돼 보는 이에게 닿지 못했다. 자세히 살피지 않고선 일말의 지루함마저 자아낸다.

개봉: 4월 9일/관람등급: 청소년관람불가/감독: 박훈정/출연: 엄태구, 전여빈, 차승원/제작: ㈜영화사 금월/배급: 넷플릭스/러닝타임: 131분/별점: ★★★

위성주 기자 / whi9319@maxmov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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