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난해한 듯 단순한 인생의 ‘인트로덕션’

2021-05-19 23:08 위성주 기자
    여전히 기묘하게 흥미로운 홍상수 월드
    파편으로부터 공감을 자아낼 수 있다면

[맥스무비= 위성주 기자] 홍상수 감독의 신작 ‘인트로덕션’이 개봉 소식을 알렸다. 간결하기 그지 없는 그의 영화와 같이 단평하자면, 영화는 얼핏 난해하나 단순하고, 유별나지만 결국 특별하지 않은 ‘누구나’의 이야기를 담은 듯 하다.

영화 '인트로덕션' 스틸. 사진 (주) 영화제작전원사 , (주)NEW
영화 '인트로덕션' 스틸. 사진 (주) 영화제작전원사 , (주)NEW

영화 ‘인트로덕션’(introduction, 소개, 입문, 서문, (새것의)도입)은 세 개의 단락을 통해 청년 영호(신석호)가 각각 아버지, 연인, 어머니를 찾은 여정에서 겪는 이야기를 담았다. 지난 제7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 각본상 수상작으로, 배우 신석호, 박미소, 김영호, 예지원, 기주봉, 서영화, 김민희, 조윤희, 하성국이 출연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영화는 세 개의 단락으로 나뉘었다. 첫 단락은 아버지(김영호)가 불러 한의원에 방문한 영호의 모습을 담았는데, 어떤 전사가 있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으나 퍽 서먹한 사이로 그려진다. 아들은 하염없이 바쁜 아버지를 기다리지만, 관객은 끝내 영호가 아버지를 만났는지 알 수 없다.

두 번째 단락은 딸(박미소)과 엄마(서영화)가 독일에서 겪는 이야기다. 패션 공부를 위해 딸은 독일 유학을 바라고, 엄마는 지인(김민희)의 집에서 머물게 하고자 함께 독일을 방문한다. 딸은 새로운 시작에 앞서 설레고 부푼 마음이 있을 법도 하건만, 어머니와 지인의 눈치만을 보고. 얼마 있어 자신을 만나기 위해 따라온 남자친구를 만나러 시내로 나선다. 이 역시 인물 사이 전사나 생각, 감정 따위가 명확한 바 없다.

여기까지 영화는 인물들의 대사만 아니라, 미장센과 이야기 구성, 사건의 흐름 등 어떤 것으로도 명확한 단서를 제공하지 않는다. 극 중 인물들은 그저 담배를 피우거나, 비슷한 대사나 행동을 반복한다. 관객은 이를 엮어 자신만의 해석을 부여해야 하는 상당한 지적 노동에 시달린다.

영화 '인트로덕션' 스틸. 사진 (주) 영화제작전원사 , (주)NEW
영화 '인트로덕션' 스틸. 사진 (주) 영화제작전원사 , (주)NEW

마지막 단락에서야 영화는 관객에게 목소리를 낸다. 사실 여전히 모호하게 전하는 것은 같지만, 일상에서 표류하는 듯 보이기만 했던 앞의 두 단락과 달리, 인물들의 행동에 생명력이 느껴진다. 아들이 어머니와 한 늙은 배우를 만나는 이야기인데, 배우는 첫 단락에서 아버지의 한의원에서 마주쳤던 이다.

아들의 친구까지 합세해 네 인물이 횟집에서 술을 마시는 동안, 아들은 드디어 내면을 엿보게 한다. 영호는 배우를 할 수 없다며 고민을 토로하고, 배우는 이해 못하며 역정을 낸다.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두 사람의 행동이지만, 결국 두 인물이 홍상수 감독의 심상에서 발한 것이라 바라본다면 납득이 간다. 우리 역시 누군가에게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언정, 그 무엇보다 중요한 사안이 있던 적이 있다.

전작에서처럼 여전히 ‘인트로덕션’은 홍상수의 내면을 탐구하고, 심취했으며, 파고들다 튕기어 나온다. 보통의 예술 영화에서도 관객이 함께 공유하는 사회와 문화, 역사와는 무관하게, 홍상수는 개인이 인생에서 목도하는 몇 장면만을 크게 잘라 보편화한다. 보통의 영화들이 거시적인 무언가를 끌고 와 관객 스스로 자신만의 심상을 영화에 덧대어 보게 한다면, 홍상수의 ‘인트로덕션’은 개인의 파편화된 경험으로 누구나 겪는 일상의 감정과 감상을 들춰낸다.

영화 '인트로덕션' 스틸. 사진 (주) 영화제작전원사 , (주)NEW
영화 '인트로덕션' 스틸. 사진 (주) 영화제작전원사 , (주)NEW

물론 이 모든 것들은 그저 한 관객의 해석에 불과하다. 홍상수는 끊임없이 관객을 ‘생각하게’ 만든다. 앞서 관객이 자신만의 해석을 도출하는 과정에 시달린다고 언급했으나, 어쩌면 일상 속 단절과 그로부터 자아내는 답답함을 목도하는 것 자체가 의미일 수 있다. ‘인트로덕션’으로부터 관객은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충돌과 단절, 불통, 개인 내면의 심상의 고뇌와 불안, 괴로움과 폭발 등을 그저 바라만보게 된다.

때문에 ‘인트로덕션’은 누군가에게 지적 유희일 수 있지만, 되레 또 다른 누군가에게 허영과 기만, 알 수 없는 낱말의 나열 따위로만 느껴질 수 있다. 놀이에 참여하기 위해선 제반 지식이 필요하고, 나아가 즐기기 위해선 영화의 문법을 넘어 홍상수식 화법에 익숙해져야 한다. 홍상수의 영화가 언제나 그렇듯 ‘인트로덕션’의 인물들은 술을 마시고, 사랑을 하지만 곧 헤어졌으며, 담배를 피우고, 여자를 안는다. 여러모로 ‘대중문화예술’이라고 불리기에는 거리가 멀다.

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는 결국 관객의 몫이다. 현학적인 말로만 이뤄진 겉멋이라고 표현한들, 영화 형식의 예술과 변주라고 평한들, ‘인트로덕션’은 그저 인생의 파도에 앞서 겪게 되는 새로운 변화의 시작을 담았을 뿐이다. 홍상수는 영화의 마지막을 겨울바다로 뛰어든 영호의 모습으로 마무리했다. 25번째 영화를 선보인 그는 어떤 열기와 울화가 있어 바다의 냉기(冷氣)를 향해 달려 갔을까.

개봉: 5월 27일/관람등급: 12세 관람가/감독: 홍상수/출연: 신석호, 박미소, 예지원, 기주봉, 서영화, 김민희, 조윤희/제작: (주)영화제작전원사/배급: ㈜영화제작전원사, ㈜NEW/러닝타임: 66분/별점: ★★★★

위성주 기자 / whi9319@maxmov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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