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인터뷰] 홍상수의 새로운 얼굴, 신석호와 박미소가 품고 있는 이야기 ‘인트로덕션’

2021-05-24 22:32 위성주 기자
    신석호 “홍상수 감독 현장은 배우에게 늘 자유로워”
    박미소 “상상도 못한 제작 방식, 늘 설렜던 현장”

[맥스무비= 위성주 기자] 홍상수 감독 신작 ‘인트로덕션’이 개봉 소식을 알렸다. 여느 홍상수 감독의 영화와 같이 ‘인트로덕션’은 심심한 듯하면서도 누군가의 내면을 깊게 파고드는 이야기로 관객의 마음을 훔쳤다. 허나 ‘인트로덕션’에는 그가 선보였던 작품들과 특별히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신석호와 박미소라는 새로운 얼굴을 전면에 내세운 것.

언제나 홍상수와 함께했던 김민희는 물론 기주봉, 예지원, 서영화, 조윤희까지 기라성 같은 선배 배우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얼굴과 목소리로 홍상수 감독의 세계를 표현해낸 신예 신석호와 박미소. 홍상수 감독은 이들에게서 어떤 모습을 엿봤기에 자신의 심상을 표현할 붓으로 그들을 선택한 것일까.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한 카페에서 영화 ‘인트로덕션’의 주연을 맡은 배우 신석호와 박미소를 만나 영화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물었다.

영화 '인트로덕션' 포스터. 사진 (주) 영화제작전원사 , (주)NEW
영화 '인트로덕션' 포스터. 사진 (주) 영화제작전원사 , (주)NEW

홍상수 감독의 25번째 작품 ‘인트로덕션’(introduction, 소개, 입문, 서문, 도입)은 세 개의 단락을 통해 청년 영호(신석호)가 각각 아버지, 연인(박미소), 어머니를 찾는 여정에서 겪는 이야기를 담았다. 지난 제71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은곰상 각본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밤의 해변에서 혼자’(2017, 여우주연상), ‘도망친 여자’(2020, 감독상)에 이어 홍상수 감독은 베를린에서 세 번째 은곰상을 수상했다.

영화의 주연을 맡은 신석호와 박미소는 기성 작품들에서 만날 수 없었던 신예다. 그나마 신석호는 홍상수 감독의 전작인 ‘풀잎들’(2017)에 단역으로 출연해 얼굴을 알린 바 있지만, 박미소는 ‘인트로덕션’이 첫 주연이다. 홍상수 감독이 교수직을 맡았던 건국대학교 영화학과에서 인연을 시작했다던 이들은 과연 어떤 과정을 통해 ‘인트로덕션’에 함께하게 됐을까.

여느 감독과 달리 대본이 없기로 유명해, 기인 인사의 이미지가 있는 홍상수 감독은 신석호와 박미소의 캐스팅 역시 범상치 않은 과정으로 진행했다. 이에 자세한 비하인드를 묻자 신석호는 “평소랑 같이 이번에도 같이 하자고 말씀 주셔서, 전과 같은 스태프로만 생각했는데,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배우로 소개하시더라”라며 당시의 놀람을 회상했다.

​영화 '인트로덕션' 스틸. 배우 박미소, 신석호. 사진 (주) 영화제작전원사 , (주)NEW
​영화 '인트로덕션' 스틸. 배우 박미소, 신석호. 사진 (주)영화제작전원사, (주)NEW

“나도 그제야 ‘인트로덕션’에 내가 출연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물론 어느 정도의 분량이 나오고, 어떤 인물인지도 몰랐다. 그건 나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사실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예전부터 (캐릭터가)잘 맞는 장면이 있으면 배우로 나올 수도 있다고 말을 해주셨기에 ‘풀잎들’ 정도로 생각했다. 그래서 촬영 첫날 잠깐 나오고 말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갈수록 분량이 늘어나더라. 그때부터 부담과 긴장이 조금씩 생겼다(웃음).”

당황과 부담, 긴장에 휩싸이면서도 설레는 마음으로 임했다던 신석호의 말에, 박미소는 격한 끄덕임과 웃음으로 공감을 표했다. 그 역시 일반적인 영화 캐스팅 과정과는 달리 홍상수 감독의 즉흥적인 꼬드김에 넘어갔던 것. 박미소는 “나 역시 어느 정도 비중이고, 역할인지 사전 정보가 전혀 없었다”며 주연을 맡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당시의 심경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학교 다닐 때 감독님의 수업을 들었었다. 특별한 일은 없었다. 그런데 방학에 갑자기 촬영 관련해 연락을 해주셔서 만나 뵙게 됐다. 그때 테스트 촬영을 진행했지만, 이후로 전혀 연락이 없으셨다. 그래서 무산됐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또 갑자기 같이 하자고 연락을 주시더라. 촬영 회차가 거듭될수록 내가 오늘 출연하는지와 비중을 아침마다 확인하곤 했다. 나중에 내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땐, ‘어 뭐지? 이래도 괜찮나?’라는 생각뿐이었다.”

영화 '인트로덕션' 촬영 현장. 사진 (주) 영화제작전원사 , (주)NEW
영화 '인트로덕션' 촬영 현장. 홍상수 감독, 배우 김영호. 사진 (주) 영화제작전원사, (주)NEW

허나 갑작스러운 캐스팅에 놀랐던 두 배우의 당혹감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미리 작성해 둔 대본이 없는 만큼 홍상수 감독은 촬영 전날 혹은 새벽에 일어나 필요한 대사와 구조만을 적어, 당일 아침 배우들에게 전한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눈이 오면 오는 대로 그에 맞춰 촬영하는 식이다. 덕분에 극 중 베를린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그린 장면은, 실제 홍상수 감독이 베를린 영화제에 수상을 위해 방문했던 기간 중 즉흥으로 촬영이 이뤄졌다. 이에 신석호는 “아침에 대본을 주시면, 밥 먹는 시간에 대본 외우느라 정신이 없다”며 ‘홍상수식 촬영장’의 현장을 설명했다.

“일단 홍상수 감독님의 대본은 구조 자체가 일반적인 시나리오와는 다르다. 책처럼 쓰신다. 지문을 크게 쓰지 않고, 필요한 것만 넣어주신다.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배우들에게서 나오는 대로 사용하신다.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해서도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감독님의 확고한 생각이 있고, 그 기준에 맞춰 아닌 것만 말씀해주신다. 그게 아니라면 그냥 두시는 것 같다. 그렇게 나온 것에 맞춰 다음 장면을 생각하시는 것 같더라.

영화 클라이맥스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강원도에 갔을 때, 숙소 앞바다를 보시더니 ‘영호가 바다에 들어가는 것에 어떻게 생각해’라며 우스갯소리처럼 말씀하시더라. 당시엔 나도 농담으로 받았는데, 막상 대본에 진짜 바다에 들어가야 한다고 나와 있더라. 촬영 직전까지 내가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니 춥다기보다 시원하더라. 어떻게 보면 영호라는 캐릭터가 느꼈던 그동안의 감정을 시원하게 해소했다고 생각한다. 춥다기보단 씻겨나가는 시원함을 느꼈다.”

영화 '인트로덕션' 스틸. 배우 서영화, 박미소. 사진 (주) 영화제작전원사 , (주)NEW
영화 '인트로덕션' 스틸. 배우 서영화, 박미소. 사진 (주)영화제작전원사, (주)NEW

‘꽃잎들’에서 배우로 출연했던 것뿐만 아니라 홍상수의 여러 작품에서 스태프로 함께했던 신석호와 달리 박미소는 ‘인트로덕션’이 학생 영화를 제외하고 첫 영화 현장이었다. 그럼에도 박미소는 “이런 제작방식이 가능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면서도 “촬영이 진행될수록 설렜다”며 ‘인트로덕션’의 촬영 현장에서 느꼈던 감상을 전했다.

“나는 뭘 하든 느린 편이라 이렇게 즉흥적으로 진행하는 촬영을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막상 그 순간이 닥치니 잘 되더라. 솔직히 낯설었지만, 재미있었다. 아침에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항상 궁금했다. 내가 출연할지 여부와는 관계없는 설렘이었다. 촬영 한 달이 순식간에 지나가더라. 끝나고 나니 뭔가 하길 했는데, ‘뭘 했지?’라는 생각만 들더라. 그래서인지 당시 현장 기억이 선명하지가 않다. 우리 영화처럼 흑백의 빛바랜 사진 같다.”

그렇게 당황스러움과 부담을 표했던 두 배우였지만, 정작 스크린에서 펼쳐진 두 사람의 연기는 더할 나위 없이 알맞은 모양새로 영화에 들어맞았다. 신석호는 묵묵히 쌓여가는 불안과 고통에 휩싸이다 마침내 겨울 바다의 시린 파도와 함께 울분을 씻어내던 영호의 마음을 관객에게 체험토록 했다. 박미소는 촬영 당일 대본을 준다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믿기 힘들만큼의 자연스러움으로 맡은 인물은 물론 극 자체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영화 '인트로덕션' 촬영 현장. 사진 (주) 영화제작전원사 , (주)NEW
영화 '인트로덕션' 촬영 현장. 사진 (주)영화제작전원사, (주)NEW

홍상수 감독의 연출, 촬영 스타일이 갖는 독특함과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연기를 선보인 배우 신석호와 박미소. 일반적인 작품에서 연기하는 것과는 다른 특별한 도전이 됐다던 두 사람에게 배우로서 홍상수 감독과 함께하는 경험이 어떤 의미를 남기는지 물었다. 이에 박미소는 “내 안에서 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 나온다”며 홍상수 감독을 향해 감사를 표했다.

“사전에 대본을 받고 준비할 기간이 있어도, 막상 현장에서는 준비한 만큼의 연기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오히려 홍상수 감독님 촬영장은 되레 틀이 없고 얽매이지 않아서인지, 내 안에서 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것들을 만나게 된다. 영화를 보면서 ‘어 내가 이렇게 나오는구나’하고 놀랐다. 감독님은 배우 혼자서 깨닫지 못했지만, 부족한 부분을 포착해, 더 좋게 만들어주시는 분이다. 배우로서 자존감이 많이 무너진 상태였는데, 감독님과 함께하면서 내가 배우를 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게 됐다.”

신석호 역시 홍상수 감독을 향한 무한한 존경을 드러냈다. 그는 “이번 작품은 개인적으로 홍상수 감독님의 실험작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홍상수 감독과 함께한 소감과 함께 전화 한 통으로 울컥해 혼자 울었던 기억을 털어놨다.

“우리가 주연일 정도로 파격적인 선택을 하셨다. 당일에 주시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전부 연결되어있더라. 사실은 미리 다 생각하신 것은 아닌지 의심도 들더라(웃음). 다른 영화 현장은 체계적으로 스케줄이 짜여있고, 그 안에서 진행되는 반면에, 홍상수 감독님 현장은 확실히 자유롭다. 시간, 날씨, 공간에 대한 제약이 없다. 그래서 배우가 더 자유로울 수 있었다.

항상 어디 가서 배우라고 말할 수 있을까 걱정이 있었다. 그런데 베를린 영화제 수상 축하 드린다고 인사를 드렸더니 되레 내게 ‘네가 잘 해줘서 그런 거지’라고 말씀해주시더라. 혼자 울컥해서 펑펑 울었다. 개인적으로는 ‘인트로덕션’이 그냥 신석호에서 배우 신석호가 될 수 있었던 계기라고 생각한다. 벅차기도 하고, 홍상수 감독님께 참 감사하다.”

영화 '인트로덕션' 스틸. 배우 박미소, 신석호. 사진 (주) 영화제작전원사 , (주)NEW
영화 '인트로덕션' 스틸. 배우 박미소, 신석호. 사진 (주)영화제작전원사, (주)NEW

촬영 전날에서야 대본을 써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그려질지 전혀 알 수 없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처럼. ‘인트로덕션’으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두 배우의 앞날 역시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 전혀 알 수 없다.

한 시간이 넘도록 진행되던 인터뷰. 난생처음이라며 긴장이 역력하던 두 사람은 막바지에 접어들자 굳은 표정을 풀고 농담도 건넸지만, 눈빛에는 여전한 긴장이 엿보여 청춘의 기로에 서 있는 두 사람의 떨림을 여실히 전했다.

신석호는 “여러 선배들의 말씀처럼 욕심 없이 연기를 하고 있으면 기회가 올 것이라 생각한다”며, 박미소는 “이 일을 평생 하고 싶어요”라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영호의 묵은 감정을 씻겨준 겨울 바다의 거센 파도가, 배우로서 이제 막 자리를 잡고 있는 두 사람에게도 닿아 그들의 불안과 고뇌를 해소해줄 수 있을까.

영화 ‘인트로덕션’은 오는 27일 극장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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