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파이프라인’ 유하 감독 “스크린 시대 막 내리는 것 같아 슬퍼”

2021-05-27 16:50 위성주 기자
    “정확함 아닌 스피디함이 중요한 요즘…변화 체감”
    “블랙코미디적 무거움 편집에서 덜어내”

[맥스무비= 위성주 기자]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2001), ‘말죽거리 잔혹사’(2004), ‘비열한 거리’(2006), ‘쌍화점’(2008) 등 다소 어두운 분위기를 발하는 작품을 선보이며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유하 감독이 전과는 전혀 다른 장르인 케이퍼 무비로 돌아왔다. 재빠르게 진행되는 속도감 넘치는 전개부터 간간히 묻어나는 유머와 긴박한 액션까지. 영화 ‘파이프라인’으로 돌아온 유하 감독을 만나 영화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물었다.

영화 '파이프라인' 유하 감독. 사진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리틀빅픽처스
영화 '파이프라인' 유하 감독. 사진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리틀빅픽처스

영화 ‘파이프라인’은 대한민국 땅 아래 숨겨진 수천억의 기름을 훔쳐 인생 역전을 꿈꾸는 여섯 명의 도유꾼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철저히 오락성을 중시한 케이퍼 무비로, 여러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아 이야기를 꾸려가던 일전의 유하 감독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선택이다. 그는 어떤 이유로 자신의 장기였던 느와르를 떠나 새로운 장르에 도전했던 것일까.

“처음부터 케이퍼 무비를 목표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내 아이템도 아니었고,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시나리오를 받아 연출을 하게 됐다. 블랙코미디적인 톤 앤 매너가 마음에 들어서 연출을 맡게 됐었다. 아무래도 B급 정서를 다룬 영화를 해보고 싶기도 했다. 케이퍼 무비를 키치적으로 뒤틀어보려 했다.

조금 비약하자면 위험한 일은 외주를 주는 자본가들과 그에 희생당하는 블루칼라들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기도 했다. 그런 방식으로 최종적으로 4시간 정도의 영화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최대한 스피디하게 편집이 됐다. 보다 블랙코미디적 요소를 많이 그려 넣으려 했지만, 조금 무겁게 느껴져서 편집 과정에서 덜어냈다.”

영화 '파이프라인' 촬영 현장. 사진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리틀빅픽처스
영화 '파이프라인' 촬영 현장. 사진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리틀빅픽처스

영화 감독으로 데뷔한지 어언 30년도 더 지났으나, 처음으로 스스로가 아닌 다른 이가 집필한 시나리오로 영화를 연출했다는 유하 감독. 그는 영화의 메가폰을 잡게 된 계기를 밝히며 “단순히 도유 소재만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기에는 내게도 어려운 작업이었다”며 속내를 털어놨다.

“아무래도 내가 시나리오를 쓸 때는, 재미있을 것 같다는 흥미가 아닌,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를 생각하며 시작하곤 했다. 문인 출신이라 어쩔 수 없나 보다(웃음). 하지만 이 시나리오는 그런 메시지나 의미를 생각하면서 접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도유라는 새로운 소재가 끌렸다.

하지만 사실 이 이야기는 정상적으로 진행됐다면 2016년에 나와야 했다. 오랫동안 개발 단계에 머문 시나리오로 알고 있었고, 내가 연출을 맡기로 결정한 이후로도 캐스팅이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꽤 오래 포기했다가 서인국 배우를 만나 다시 시작했다. 서인국 배우 덕에 핀돌이라는 캐릭터가 떠올랐고, 김경찬 작가와 함께 다시 한번 블랙코미디 장르의 톤으로 시나리오를 고쳤다.”

영화 '파이프라인' 스틸. 사진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리틀빅픽처스
영화 '파이프라인' 스틸. 사진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리틀빅픽처스

그렇게 본인의 장기였던 느와르가 아닌 블랙코미디 장르의 케이퍼 무비를 선보인 유하 감독. 그렇다면 ‘파이프라인’은 유하 감독의 새로운 행보에 대한 예고가 된 것일까. 혹은 오랜 베테랑 감독의 잠시간 일탈일까.

“사실 나는 느와르도 처음부터 주된 장르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은 한 적 없었다. 시를 쓸 때 그랬지만, 항상 대중의 예상이나 기대를 배반하는 것이 창작자라고 생각하는데, 영화는 돈과 결부된 것이라, 조금 성격이 다른 것 같다. 잘하는 것에 매달리는 것도 감독으로서의 전략일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뭔가 정주민이 되기 보다, 노매드(유목민)처럼 돌아다니고 싶다. 여러 장르에 도전하고 싶다.

하지만 최근 들어 창작자의 역할이 한계에 달한 것 같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영화만의 아우라가 있다고 믿었고, 그래서 지금까지 영화를 해 왔다. 과거에는 창작자들이 자신의 생각을 대중에게 던지거나, 선도하고, 공유하곤 했는데, 이제는 관객의 취향에만 맞춰 영화가 재탄생 되는 일이 많아지는 것 같다. 모니터링 시사를 참 많이 하더라.”

영화 '파이프라인' 스틸. 사진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리틀빅픽처스
영화 '파이프라인' 스틸. 사진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리틀빅픽처스

무언가 안타까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차분히 설명을 계속하던 유하 감독. “창자들의 역할이 한계에 달했다”는 유하 감독의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묻자 그는 “영화란 아름다움과 추함이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하나의 생물로서, 예술로서 기능한다고 믿었는데, 지금은 관객이 조금만 불편해해도 걸러진다”며 최근 영화 시장의 흐름에 대한 솔직한 심경을 밝혔다.

“영화라는 것이 한 장면에도 공들여서, 목숨을 걸고 찍곤 했는데, 지금은 그런 행태와 문화가 전부 해체됐다. 감독으로서 갑질을 하거나 추앙 받겠다는 것이 아니라,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 불리기에 책임감을 더 갖게 되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저 스피디하게 제 시간 내로 찍는 것만이 중요한 것 같다. 드라마와 별반 다른 것이 없다.

이처럼 창작자로서의 매리트도 사라진 상황에 영화 감독을 계속 해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대안 매체로서 OTT로의 이동은 자연스러운 것 같기도 하다. 또 다른 창작의 대안이랄까. 오래 전 롤랑 바르트의 이야기처럼 어둠을 공유하며 스크린을 바라보던 고전적인 시대는 슬프게도 막을 내리고 있는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이야기다. 하나의 콘텐츠를 여러 플랫폼으로 계산하며 찍는 시대도 곧 오지 않을까 싶다.”

영화 '파이프라인' 유하 감독. 사진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리틀빅픽처스
영화 '파이프라인' 유하 감독. 사진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리틀빅픽처스

OTT 시장의 급격한 성장에 맞물려 코로나 19로 극장가가 완전히 얼어붙은 상황. 예전과는 다른 영화 시장의 현실에 씁쓸함을 표현한 유하 감독은 자신의 향후 계획을 전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의 연출을 맡았다. 영화는 아직 구상하고 있지 않다. 오래 영화를 하다 보니 리프레시를 하고 싶기도 하고, 드라마에 도전하고 싶기도 했다. 애초에 영화를 하면서 블록버스터에는 관심이 없었다. 전성기에는 100억 이상 영화를 찍을 기회가 있었음에도 되레 더 줄이면서 촬영했다. 붐 마이크가 나와도 그냥 밀고 나가는 B급, 저항정신을 좋아한다.

좀 더 저 예산으로,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를 발굴해 더 좋은 배우를 만들어보고 싶다. 유명 배우를 쓰고, 큰 영화를 해보고 싶은 생각은 거의 없다. 앞으로 영화를 얼마나 더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기회를 갖고 싶다. 저 예산 영화로, 기회를 잡지 못했던 배우들의 잠재력을 폭발시켜보고 싶다.”

영화 ‘파이프라인’은 26일 극장 개봉했다.

위성주 기자 / whi9319@maxmov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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