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우리, 둘’ 함께이기 위한 에덴 동산으로 날아가는 법

2021-07-16 17:46 위성주 기자
    여느 퀴어 영화와 다른 긴장감에 깜짝
    영리하게 비튼 클리셰가 선사하는 신선함

[맥스무비= 위성주 기자] 아파트 복도를 사이에 둔 이웃이자, 20년간 비밀스러운 사랑을 유지해온 연인의 이야기 ‘우리, 둘’이 개봉 소식을 알렸다. 노년에 접어든 두 여인의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여느 퀴어 영화와는 다른 독특한 리듬감과 연출로 시종일관 눈길을 사로잡는다.

영화 '우리, 둘' 포스터.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영화 '우리, 둘' 포스터.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아파트 복도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살고 있는 니나(바바라 수코바)와 마도(마틴 슈발리에). 마냥 가까운 이웃처럼 보이지만, 사실 두 사람은 20년째 사랑을 이어온 연인이다. 은퇴도 했으니 여생은 로마에서 편하게 살자는 니나의 제안에 마도는 가족에게 숨겨왔던 비밀을 털어놓기로 결심한다. 허나 생각만큼 쉽지 않은 고백에 마도는 결국 비밀을 말하지 못하고, 이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쓰러진다. 뇌졸중이 와 걷는 것은 물론 말하기조차 쉽지 않은 마도. 그런 그의 모습을 본 니나는 가족으로부터 마도를 되찾기 위한 계획을 짜기 시작한다.

영화 ‘우리, 둘’(감독 필리포 메네게티)은 온 세상을 떠나보내도 함께하고 싶은 니나와 마도, 두 여인이 만든 세상에 단 하나뿐인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제46회 세자르 영화제에서 총 4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상을 수상하며, 단숨에 프랑스를 대표하는 로맨스 영화로 자리매김한 작품이다. 제78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으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부문 프랑스 엔트리로 출품돼 전 세계 평단의 찬사를 이끌어냈다.

영화 '우리, 둘' 스틸.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영화 '우리, 둘' 스틸.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참으로 새로운 퀴어 영화다. 흔히 ‘퀴어 영화’에 기대하게 되는 연출을 영리하게 비틀어나가며 강력한 흡입력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음악과 독특한 리듬감을 빚어내는 효과음, 얼핏 서늘하고 긴장감까지 형성하는 미장센이 보는 이의 시각과 청각을 매혹시킨다. 시각적 장치보단 이야기와 드라마로 밀고 나가는 경우가 대다수인 여느 퀴어 영화와는 다른 결이다.

물론 레즈비언 커플이 마주하는 현실적 한계나 따가운 주변의 시선은 여지없이 그려지지만, 그마저도 남다른 방식으로 구성돼 흥미를 돋운다. 분명 멜로 장르를 표방하지만 스릴러 장르 영화를 찍은 듯 비범한 시선 처리로 사건을 바라본다. 티 스푼과 시계, 세차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 등으로 각 캐릭터 사이 형성된 기류를 감각화하고, 그로부터 두 여인의 사랑과 단절, 불안과 슬픔, 희망과 환희를 단계적으로 쌓아 올린다.

영화 '우리, 둘' 스틸.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영화 '우리, 둘' 스틸.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얼핏 다분히 감정에 치우친 인물들의 이야기인 만큼, 다소 즉흥적인 전개와 연출이 그려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내 하나부터 열까지 치밀한 계획 하에 짜인 구성임을 알 수 있다. 화면에 놓인 소품 하나, 배우가 내뱉은 숨소리 하나가 ‘우리, 둘’이라는 정교한 작품의 세밀한 부품들이다. 하나라도 오류가 있다면 조금씩 어긋나고, 결국 지리멸렬 했을 터지만, 필리포 메네게티 감독은 충분히 감정적이면서도, 담백한 이야기로 영화를 깔끔히 완성시켰다.

영화의 미학적 부분을 차치하고서라도 ‘우리, 둘’은 깊은 울림을 남기는 아름다운 로맨스다. 바바라 수코바와 마틴 슈발리에라는 장인들의 연기 내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영화가 환상에 불과한 것임을 쉽사리 깨닫지 못하게 한다. 자칫 과장되게 느껴질 수 있을 법한 장면과 대사마저 여유와 능청스러움으로 부드럽게 휘감는다. 아름다운 음악이 준비된 무대 위에서 자유롭게 노니는 발레리나들을 보는 듯 하다.

영화 '우리, 둘' 스틸.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영화 '우리, 둘' 스틸.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함께 이탈리아로 떠나 여생을 마무리하고 싶었던 니나와 마도지만 끝내 두 사람의 아파트에서 벗어나는 것은 실패한다. 그러나 영화는 만면에 미소를 띄고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춤을 추는 두 사람의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특별한 곳이 아니어도 함께이기에, ‘우리’가 될 수 있었던 니나와 마도의 에덴 동산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전하며 깊은 감동을 자아낸다.

올해 만날 수 있었던 예술 영화 중 단연 손에 꼽힌다. 그 어떤 로맨스보다 위험하지만, 사랑스럽고, 달콤쌉싸름하다. 한 편의 드라마를 넘어 인생의 비밀을 엿보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개봉: 7월 28일/관람등급: 12세 관람가/감독: 필리포 메네게티/출연: 바바라 수코바, 마틴 슈발리에, 레아 드루케, 제롬 바랑프랭/수입·배급: 그린나래미디어㈜/러닝타임: 95분/별점: ★★★★

위성주 기자 / whi9319@maxmov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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