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인터뷰 ①] ‘십개월의 미래’ 남궁선 감독이 그려낸 따뜻한 내일

2021-10-20 14:51 위성주 기자
    “임신 당사자 이야기 없어…얘기해야 한다는 의무감 있었다”
    “흑∙백 강요하는 세상이 혼란 만들어”

[맥스무비= 위성주 기자] 우리 사회를 향한 신랄한 비판과 사랑스러운 위트가 함께 담긴 영화 한편이 개봉 소식을 알렸다. 최근 다양성 영화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며, 코로나 19 여파로 어려운 상황에도 1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영화 ‘십개월의 미래’가 그것. 영화는 귀여운 캐릭터와 터져 나오는 웃음 사이로 관객의 허를 찌르며 남다른 감상을 안겼다.

영화 '십개월의 미래' 남궁선 감독. 사진 그리나래미디어
영화 '십개월의 미래' 남궁선 감독. 사진 그리나래미디어

영화 ‘십개월의 미래’(감독 남궁선)는 정신 차려 보니 임신 10주, 인생 최대 혼돈과 맞닥뜨린 29살 프로그램 개발자 미래(최성은)의 십개월을 그렸다.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제46회 서울독립영화제를 비롯해 ‘제20회 뉴욕아시안영화제, 제41회 하와이 국제영화제 등 국내외 유수 영화제에 초청받아 호평 세례를 이어오고 있는 작품으로, 신예 남궁선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신예라고 하지만 남궁선 감독은 영화 매니아 사이에서 일찍부터 이름이 알려졌던 이다. 2007년 배우 박정민이 주연을 맡았던 단편 ‘세상의 끝’을 내놓으며 연출을 시작했던 그는, 2009년 ‘최악의 친구들’로 제8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비정성시부문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며 평단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그렇게 일찍부터 충무로의 기대를 받았던 남궁선 감독은 2012년 단편 ‘남자들’ 이후 10년 가까이 지나서야 장편을 내놓았다. 오래 전부터 감독을 향한 기대와 바람이 충분했음에도 그가 데뷔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사연은 무엇이었을까. 서울 서초구 잠원동 그린나래미디어 본사에서 영화 ‘십개월의 미래’를 연출한 남궁선 감독을 만나 영화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물었다.

영화 '십개월의 미래' 스틸. 사진 그리나래미디어
영화 '십개월의 미래' 스틸. 사진 그리나래미디어

미쟝센 최우수작품상 이후 곧장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장편 데뷔가 꽤 오래 걸렸다. 어떤 사연이 있었나

= 사실 임신의 경험을 거쳤다는 것이 가장 큰 사건이었다. 물론 그만으로 그간의 공백을 이야기하는 것은 완전하지 않다. 독립영화라 더 오래 걸린 것도 있다. 이 작품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시나리오를 쓸 때는 금방 될 줄 알았다. 돌이켜보니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다(웃음). 2015년에 처음 구상한 작품인데, 여러 지원사업을 모색했었지만 잘 안됐다. 그러다 2018년에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시기가 닥쳤고, 졸업작품을 해야 해서 제작과정에 지원했다가 본격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영화로 풀기에 워낙 길고, 복잡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다가, 너무 오래 이것만 붙잡고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다른 작품을 하려 준비 중이었다. 상황이 그러하니 제작지원을 받을 수 있던 것 만으로 참 감사했다. 물론 학교 프로젝트다 보니 예산도 적고, 스케줄도 자유롭지 못하고, 외부투자도 받기 어려웠지만, 그럼에도 할 수 있다는 것이, 하는 것이 맞는 선택 같더라.

영화 '십개월의 미래' 스틸. 사진 그리나래미디어
영화 '십개월의 미래' 스틸. 사진 그리나래미디어

임신이라는 소재를 꺼낸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 첫 장편으로 임신 소재를 다룰 줄은 나도 전혀 생각지 못했다. 다른 작품을 하다가 임신을 하게 됐었는데, 삶에 있어서 변화의 정도가 정말 강하더라. 여성에게 있어서 큰 변화의 순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었는데, 이전에는 영화에서 잘 다뤄지지 않은 부분인 것 같더라. 물론 임신이라는 아이템이 들어간 작품은 꽤 있었다. 아이를 앞둔 커플의 이야기도 있고, 미혼모의 이야기도 있고,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임산부 당사자의 성장담, 임산부에 대한 온전한 이야기가 없더라.

처음 이야기를 꺼낼 당시에 어떤 분들은 내게 왜 이렇게 상투적인 영화를 만드느냐고 묻기도 했다. 상투적인 영화라니! 나는 본 적도 없었다. 그런 상황이 내 마음속 어떤 의무감을 촉발시켰다. 얘기를 안 하면 ‘사람들이 모르고 살 수도 있겠다’ 싶었다. 특히 2015년 당시에는 페미니즘 영역에서조차 여성 혼자 결혼 안하고 사는 것, 낙태를 하는 것 등 당연한 권리에 대해 이야기할 여유가 없었다. 지금은 지형이 바뀌면서 비슷한 생각이 나오는 것 같다.

영화 '십개월의 미래' 스틸. 사진 그리나래미디어
영화 '십개월의 미래' 스틸. 사진 그리나래미디어

임신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그려지면서 위트를 잃지 않는 연출이 인상적이더라. 이 같은 연출에 담긴 의도는 무엇인가

= 임신이라는 것이 사실 ‘좋다’, ‘싫다’로 분명히 나뉠 리가 없다. 걱정도 되고, 고민도 되겠지만 동시에 기대도 되고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에겐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분명히 나누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 그 복잡한 마음은 당사자들만 알 수 있는 것임에도 온 세상이 좋고 싫음을 깔끔히 결정하라는 듯 강요한다. 좋다고 하면 한쪽에선 위험하고 나쁘다고 하고, 나쁘다고 하면 또 다른 쪽에선 좋아야 한다는 듯 말한다.

예컨대 모성애나, 낙태를 둘러싼 의견도 첨예하게 대립하는데, 한가지 색으로만 이야기들을 한다. ‘십개월의 미래’에 대해서도 젊은 세대는 중절, 출산 비장려 영화라면서 공감을 하는데, 또 다른 분들은 미래의 모성애와 웃음을 높게 평가하더라. 둘 다 미래를 응원한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너무나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이렇게 강요하는 것 자체가 개인에게도, 사회에도 혼란을 만든다고 생각하고, 그런 모습들이 영화를 통해 보여졌으면 했다.

영화 '십개월의 미래' 남궁선 감독. 사진 그리나래미디어
영화 '십개월의 미래' 남궁선 감독. 사진 그리나래미디어

이 영화가 여성들에게 어떻게 비춰졌으면 하는지

= 여성도, 엄마도 수많은 평가와 판단의 잣대 앞에 놓여있다고 생각한다. 여성에게, 엄마에게 요구되는 완벽함이 있지 않나. 독립적인 여성, 패기 있는 젊은이, 모성애 넘치는 어머니, 이런 것들을 벗어나면 큰일날 것 같고, 못난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그런 기준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런 평가로부터 여성 스스로가 조금 관대해지길 바란다. 다른 여성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많은 여성들이 힐을 벗었다. 탈 코르셋을 지향하고, 꾸밈 노동을 지양한다. 하지만 20년 전 이상적인 여성상은 ‘섹스 앤 더 시티’였다. ‘남자처럼’ 놀고, 바람피고, 술 마시고, 즐기는 것이었다. 모두가 그런걸 바랐다. 결국 여성상이라는 것은 계속해서 변화하는데, 그런 이미지조차 맹목적으로 만들어서 소비하고, 그에 갇히고, 따라잡지 못해서 괴로워하고 있는 셈이다.

'여성에게 요구되는 모든 신화에 다 맞출 필요 없다', '맞추지 못한다고 해서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는 것을 여성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이런 저런 노이즈 속에서 세상을 명료하게 바라보고, 스스로 힘을 내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영화 ‘십개월의 미래’는 전국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위성주 기자 / whi9319@maxmov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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