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 행복과 현실 속 우리 모두를 발견할 수 있는 작품 “지금 내딛는 한 걸음이 중요하다는 것”
[맥스무비= 위성주 기자] 다큐멘터리 ‘행복의 속도’가 개봉했다. 일본 특별천연기념물 ‘오제’를 배경으로, 누구도 알아주지 않지만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이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으로, 현실의 파도에 휩쓸려 방향을 잃은 우리에게 잠시간의 여유와 포근함을 선사한다.

다큐멘터리 ‘행복의 속도’(감독 박혁지)는 오제 국립공원에서 산장까지 짐을 배달하는 봇카로 일하는 이가라시와 이시타카의 일상을 통해 각자의 길 위에 놓인 모든 사람들을 응원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봇카는 해발 1,500미터, 천상의 화원으로 불리는 오제에 위치한 산장까지 짐을 배달하는 짐꾼들이다. 매일 70~80kg의 짐을 지고, 그들은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과 달리 매일 같은 길을 걷는다.
영화를 연출한 박혁지 감독은 어떤 이유로 그들을 카메라에 담았을까. 조용하고 묵묵하게, 그러나 진중한 발걸음을 내딛는 봇카를 보며 어쩌면 다큐멘터리라는 지난한 작업을 계속하는 스스로를 발견했을 수도 있겠다. 허나 영화를 차분히 따라가다 보면 단순한 자아성찰 너머, 삶의 이상을 향한 기도가 들리는 듯 하다. 스스로의 모습을 반추하는 것뿐만 아니라, 봇카의 삶으로부터 특별한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박혁지 감독은 봇카로부터 무엇을 발견했을까. 그는 자신과 닮은 이들의 삶으로부터, 그들을 담은 영화로부터 우리에게 무엇을 전하고자 했을까. 숨가쁜 매일 속 어쩌면 누구나 바라는 인간다운 삶의 한 순간을 스크린에 수 놓은 박혁지 감독.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영화 ‘행복의 속도’를 연출한 그를 만나 영화에 담아낸 마음이 무엇인지 물었다.

영화를 연출한 박혁지 감독은 방송 다큐멘터리 작업을 오랫동안 해 온 베테랑이다. 극장 개봉을 위한 다큐멘터리는 2015년 ‘춘희막이’가 처음이었지만, 그간의 내공이 빛을 발해 곧장 전주국제영화제에서 CGV아트하우스상을 수상했다. ‘행복의 속도’ 역시 시작은 방송 다큐멘터리였다. EBS ‘다큐영화 길 위의 인생’이 이야기의 시발점이었다.
“2016년도에 ‘길 위의 인생’이라는 EBS 프로그램에서 50분짜리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적이 있다. 콘셉트는 오래되고 잊혀진 직업, 육체노동을 하시는 분들의 아련함이었다. 당시에 일주일에서 열흘 가량 이가라시씨를 찍었던 것 같다.
다행이 결과물은 나쁘지 않았고, 시청자 반응도 좋았지만, 나는 조금 더 그분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보고 싶었다. 오제는 일찍 겨울이 와 10월 중순에는 첫 눈이 온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일년 중 절반은 봇카가 아닌 다른 일을 해야한다. 그런데도 왜 이분들이 꾸준히 봇카를 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우리가 보기에는 그냥 무거운 것만 드는 일이지만, 무언가 있다고 느꼈다.”

‘행복의 속도’가 시작된 계기를 설명하던 박혁지 감독의 태도는 참으로 겸손하고 진솔했다. 봇카를 향한 그의 진심 어린 존중과 어쩌면 동경에 가까울지 모를 존경이 작은 단어 하나에서도 묻어났다. 박혁지 감독은 자신의 영화 속 “이가라시(봇카)의 아들이 잠자리를 잡아 풀어주는 장면이 가장 좋다”며 만면에 미소를 띄었다.
“이가라시의 아들이 처음에는 아빠에게 잠자리를 받고 바구니에 넣으려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모든 잠자리를 다 풀숲을 향해 던진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사실 나 역시 행복을 구체화시키고, 대상화 해서 ‘내가 저걸 취하면 좋을 것 같다’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참 부질없는 일이다. 행복은 우리 주변에 있다. 발견하지 못할 뿐이다. 저 장면을 찍는 날 역시 하늘에 잠자리가 정말 많았다.
이가라시씨는 내가 그 장면을 찍으면 깨달은 바를 이미 알고 있었다. 25년을 봇카 일을 했지만, 한 번도 똑 같은 날이 없다고 하더라. 인생을 바라볼 때 보통 출발과 끝이 있는 횡으로 본다면, 그는 하루 하루를 소중히 여기면서 수직적으로 삶을 대하더라. 언젠가 닿을 목표 지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내딛는 한 걸음이 중요한 것이다.”

이가라시의 진중한 발걸음을 통해 그 스스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박혁지 감독. 그는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 이시타카에 대해서는 “우리랑 비슷한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마따나 영화 속 이가라시는 이상의 존재라면, 이시타카는 마치 현실 속 우리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 같아 더욱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이시타카는 욕심이 꽤 있는 친구다. 야망도 있고, 목표도 있다. 일본 청년봇카대를 잘 되게 만들고 싶어하고, 잘 되면 오제를 떠날 수도 있겠더라. 다큐멘터리지만, 카메라에 보여지는 모습을 의식한 티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그게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되레 현실적이고, 인간적이다.
신경 쓸 것이 많아질수록 본인이 힘들어질 텐데도, 스스로 끈을 놓지 못하는 것이 모든 것을 잘해내고 싶어하는 우리의 모습을 비추는 듯 하다. ‘행복의 속도’의 메시지와 톤 앤 매너는 이가라시지만, 이시타카가 있었기 때문에 영화가 관객에게 닿을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이가라시랑 비교가 되는 듯 해서 보여주기 두려웠다. 그런데 막상 보여줬더니 잘 봤다며 부모님께도 보여줘도 되겠냐고 물어오더라. 참 다행이었고, 뿌듯했다(웃음).”
영화 ‘행복의 속도’는 지난 18일 극장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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