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지옥’ 유아인 “배우로서 한계 느껴…일보다 삶이 중요”

2021-12-06 10:52 위성주 기자
    “정진수는 미스터리 담당하는 캐릭터…노골적 표현 지양해”
    “나는 대중의 폭력 중심에 서 있던 사람”

[맥스무비= 위성주 기자]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은 공포스러운 초자연적 현상 아래 빚어지는 인간의 광기와 폭력이 그려진 작품이다. 드라마 속 대중은 공포에 짓눌려 법과 양심이 아닌 화살촉과 새진리회, 무차별적 지옥행 선고를 두려워한다. 신의 의도를 해석한다는 사제들을 향해 언론과 경찰 모두 허리를 굽힌다. 어쩌면 그저 드라마기에, 판타지기에 만날 수 있는 허무맹랑한 장면들. 허나 시리즈 주연을 맡았던 배우 유아인은 ‘지옥’에서 현실이 엿보인다고 말한다.

드라마 '지옥' 배우 유아인. 사진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 배우 유아인.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연출 연상호)은 예고 없이 등장한 지옥의 사자들에게 사람들이 지옥행 선고를 받는 초자연적 현상이 발생하고, 혼란을 틈타 부흥한 새진리회와 사건의 실체를 밝히려는 이들이 얽히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사회를 향한 연상호 감독의 날카로운 통찰과 메시지로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으로, 배우 유아인이 자신이 정의라 굳게 믿는 광인 정진수 의장을 연기했다. 그는 지옥행 선고라는 초자연적 현상을 무기로 기존 사회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세운다.

정진수 의장이 만들어낸 사회는 참으로 어지럽다. 그가 꿈꾼 것은 지옥을 두려워하며 모두가 더 정의로워지는 사회였지만, 믿음과 두려움은 광기로, 망종으로, 폭력으로 화하며 지옥을 현실에 위치시킨다.

인간의 지성과 자유, 신뢰와 행복은 어느새 사라진 끔찍한 디스토피아 세계 ‘지옥’. 어쩌면 판타지고, 드라마기에 만날 수 있던 장면이지만 되레 유아인은 바로 그런 지점에서 현실이 엿보인다고 말한다.

그가 ‘지옥’ 속에서 바라본 현실은 무엇이고, 우리는 왜 그런 ‘지옥’에 열광하고 있을까.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의 정진수 의장을 연기한 배우 유아인을 만나 작품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물었다.

드라마 '지옥' 촬영 현장. 배우 유아인. 사진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 촬영 현장. 배우 유아인. 사진 넷플릭스

공개된 이후 ‘지옥’이 전 세계 넷플릭스 TV쇼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소감이 어떤가

= 놀랍고 신기한 경험이다. 전 세계 사람들이 저마다의 해석과 반응을 내놓는 지금 상황이 작품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굉장히 반갑고 감사하다. 내 감상을 정확히 파악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시즌 2에 대한 기대를 많은 분들이 가져준다는 것에서, ‘다음을 기대하는 작품이구나’, ‘연상호 감독이 대단한 떡밥을 던졌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연기한 정진수 의장의 면면이 강렬하다. 1~3화의 주인공이자, ‘지옥’의 세계관을 실질적으로 만들어낸 인물이다. 연기자의 입장에서 정진수 의장은 어떤 정신세계를 갖고 있는 캐릭터던가

= 정진수는 나약함의 발현 같은 인물이다. 그에게 있어서 선과 악은 자기합리화의 영역일 뿐이다. 내뱉는 단어는 정의롭고, 신념덩어리고, 논리적인 척 하지만, 사실 다 궤변이다. 선을 따지고, 정의와 대중을 위한 선동을 하지만, 정작 스스로는 구제하지 못하는 상태에 놓였다. 그걸 외적으로 아주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사실 내면은 누구보다 연약하고, 나약한 셈이다. 정진수처럼 자신이 선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말은 누구도 믿으면 안 되는 것 같다. 어떤 선도 자신이 절대적인 선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정진수를 연기하기 위한 접근방향은 무엇이었나. 자신만의 가치관과 신념이 뚜렷한 캐릭터인 만큼, 많은 고민을 해야 했겠다.

= 일반적이지 않은 인물이지만, 나의 과거나 현재를 들여다보면서 그를 연기하기 위해 고민했다. 인간의 고뇌와 절망이 파괴적으로 표현됐을 뿐, 어쨌든 우리의 마음을 외부로 투영하고자 했던 인물이라 생각했다. 내가 정진수만큼 극단적인 상황에 놓여본 적은 없지만, 인간으로서 고독과 절망, 외로움이 어떻게 발현될 수 있을지 생각해봤다. 우리 모두 도달해본 감정들이지 않나. 특히 나는 예전에 썼던 짧은 글을 생각하기도 했다. ‘내가 지금 이 순간 느끼는 것을 누군가 조금만이라도 알아준다면 조금 덜 외로울 텐데’라는 내용이었다.

드라마 '지옥' 제작기 영상 스틸. 배우 유아인, 원작 웹툰 속 정진수 의장. 사진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 제작기 영상 스틸. 배우 유아인, 원작 웹툰 속 정진수 의장. 사진 넷플릭스

그렇다면 외양적인 부분에서는 어땠나. 그만의 표현과 표정이 있었을 것이고, 가발 역시 써야 했다고 들었다.

= ‘지옥’은 미스터리한 이야기다. 그 중에서도 정진수는 미스터리 자체를 담당하는 캐릭터다. 그래서 그의 내면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했다. 내면을 끊임없이 추측하게 하는 것으로 이 극의 몰입감을 극대화해야 했다. 솔직한 표현이나 내면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표현은 최대한 지양하기 위해 노력했다. 흔히 생각하는 사이비 종교 수장의 이미지를 피하기 위한 노력도 있었다. 선입견을 한 끗 차이로 비켜가면서 캐릭터 성을 유지하고 신선해 보이려 했다.

가발은 연상호 감독의 강력한 요구였다. 비주얼적 측면에서 원작과 싱크로율을 요구했다. 물론 가발을 쓰게 됨으로 인해서 움직임이나, 연기에 있어 자율성에 제약이 걸리기도 했다. 그것에 매몰되거나 지지 않고, 되레 만들어진 딱딱함을 캐릭터의 성질로 치환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방식이어야 분장이 거추장스러운 부작용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살아날 것 같더라.

‘지옥’을 향해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대중이 계속해 열띤 반응을 보이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옥’의 어떤 점에 시청자가 매료됐다고 여기나

=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엿보게 하는 작품이라서가 아닐까. 이토록 디스토피아적인 세계에, 종말에 열광하는 상황이 시사하는 바는 우리의 현실과 사회가 상상 속 부정적인 세계와 닮아가서가 아닐까 한다. 슬픈 현실이다.

‘지옥’에서는 특히 맹신과 폭력에 대한 의문이 보인다. 불명확한 정보에 대한 맹신, 그로부터 빚어지는 폭력성. 작품에 대한 반응 중 화살촉에 대한 의구심을 많이들 드러내시더라. ‘어떻게 신의 의도를 따르며 저런 죄악을 저지르나’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런데 화살촉의 범죄는 결국 ‘자신의 행위는 폭력이 아닌 정의’라는 믿음에서 기인한 행위들이지 않나. 그런 공포스러운 현상이 우리 현실에서도 보인다. 범람하는 정보, 어떤 것도 명확하지 않음에도 맹신하는 대중들, 맹신을 통해 안정감을 느끼려는 인간의 마음. 이 모든 것이 ‘지옥’에서 발견할 수 있는 현실인 것 같다.

드라마 '지옥' 배우 유아인. 사진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 배우 유아인. 사진 넷플릭스

정진수에게서 벗어나 인간 유아인, 배우 유아인으로서 느끼는 집단의 광기, 폭력은 어떤가.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았던 때가 있었는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는지

= 나는 (집단의 폭력) 그 중심에 서 있던 사람이다(웃음). 하지만 누군가 나를 때릴 때, 핵심이 없고 논리가 없으면, 그저 스스로 그걸 수용하지 않음으로 괜찮았던 것 같다. 나를 때리는 힘이 내부가 텅 빈 솜 방망이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물론 그럼에도 그것을 떨치지 못하기도 했다. 개인으로서, 배우로서, 유명인으로서, 대중을 상대하는 입장으로서, 그 모든 과정이 싸우는 과정이라기보다 세상을 이해하고, 사람을 이해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 과정 속에 있다. 내가 무뎌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하지만, 이해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다.

최근 쉬지 않고 열일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사실 한국 영화계 가장 이름이 높은 배우고, 같은 나이 대 견줄 배우도 몇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쉼 없이 달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 배우가 일이긴 하지만, 나는 일 보다 삶이 더 중요하다. 하지만 잘 살고 싶어서 일을 잘하고 싶다. 노는 것이 전처럼 재미있지 않기도 하다. 자유가 그다지 자유로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한계에 도달했다고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를 펼치면서 나아갈 수 있을 때는 되레 천천히 해왔는데, 한계가 느껴지면서 그것을 부수려는 강박에 끊임없이 나를 못살게 구는 것 같다. 도전을 이어가기 위해 애써 노력하는 기분이랄까. 등 떠밀린 것이다(웃음). 그 한계를 조금도 넘어서지 못하는 순간도 있을 것이고, 한계라는 것을 아주 조금 넘어서는 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한계를 느끼기에 이런저런 시도를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위성주 기자 / whi9319@maxmov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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