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무비= 위성주 기자] 맷 리브스 감독이 연출한 영화 ‘더 배트맨’이 개봉 소식을 알렸다. 영화는 일전에 그려졌던 여느 ‘배트맨’ 시리즈와 차별화된 면모를 보이며 ‘배트맨’ 실사화 시리즈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부터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시리즈를 거쳐 맷 리브스의 ‘더 배트맨’에 이르기까지. ‘배트맨’ 시리즈의 변천사를 되짚으며, 세 감독이 그린 ‘배트맨’들의 각기 다른 특징들을 정리해봤다.

마블 코믹스와 함께 미국 만화 산업계의 양대산맥인 DC 코믹스. 그리고 슈퍼맨과 함께 DC 코믹스를 이끈 캐릭터 배트맨. 1939년 최초 등장한 이후 배트맨은 DC 코믹스의 가장 상징적인 캐릭터로서 1943년부터 실사화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TV 시리즈 등으로 수 차례 그려졌던 ‘배트맨’. 그러나 역시 관객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겼고, ‘배트맨’의 이미지를 대중들에게 고정시켰던 작품을 꼽자면 팀 버튼 감독이 연출한 ‘배트맨’(1989)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당시 영화는 극장 개봉과 함께 관객들의 환호를 부르며 온갖 흥행 기록을 갈아치웠다. 북미에서만 2억 5천만 달러 이상 수익을 거뒀으며, 전 세계 누적 수익으로는 4억 1천만 달러에 달하는 수익을 거둬들였다. 기존 전 연령 대상의 어린이 특촬물 캐릭터 정도로 머물던 ‘배트맨’은 이를 기점으로 오늘날 팬들에게 익숙한 어둡고, 진중한 이미지의 히어로로서 대중들에게 각인되기 시작했다.
팀 버튼의 ‘배트맨’은 가히 독창적이었다. 기존 코믹스에서 그려졌던 탐정의 이미지도, 실사화된 작품들에서 만날 수 있었던 코믹적인 이미지도 아니었다. 팀 버튼 특유의 독특하면서도 강렬한 분장과 몽환적인 미장센, 한없이 우울한 정서를 풍기는 캐릭터들이 등장했고 이 이미지들이 대중의 뇌리에 뿌리 깊게 각인됐다. 모호해진 선악, 서로를 탄생시킨 히어로와 빌런, 과거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강박증을 앓고 있는 불안정한 주인공까지, 오늘날 ‘배트맨’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릴 때 그려지는 것들은 대부분 팀 버튼의 세계 안에서 확립됐다.

특히 앞서 짧게 언급한 몽환적이고 기괴한 세트 등 팀 버튼 감독의 독보적인 미장센은 1989년작 ‘배트맨’과 ‘배트맨 리턴즈’(1992)를 통해 꽃피우며 관객을 완벽히 사로잡았다. 단순히 우울한 분위기가 맴도는 것을 넘어 음침해 보이기까지 하는 고담시는 물론 거대한 근육질 동상, 거친 질감의 건물들, 20세기 초를 연상시키는 복장들. 영화는 기존 슈퍼 히어로 무비의 전형성을 탈피하고, 동화적이나 결코 아름답지 않은 이미지를 통해 미국 사회의 어두운 모습을 들춰내며 비판하기도 했다.
팀 버튼 이후 ‘배트맨’은 다시 한번 암흑기를 거치다 ‘배트맨 비긴즈(2005)로 시작해 ‘다크 나이트’(2008),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로 마무리되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로 다시 한번 화려하게 부활했다. 사실성을 중시하는 연출이 특징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인 만큼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는 팀 버튼의 그것과 상당히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팀 버튼이 몽환적이고 기괴한 이미지를 내세웠다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사실적인 액션과 연출, 보다 현실에 밀접한 캐릭터를 등장시키며 또 다른 영역의 ‘배트맨’을 완성시켰다.
‘다크 나이트’는 단순히 사실적인 연출을 강조했을 뿐만 아니라, 인간적 고민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 것 만 같던 히어로를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인격체로 끌어내려 진지한 고민과 성장 과정을 그리는데 집중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영화는 히어로를 개인의 영역에서 관찰하며 관객과의 더욱 깊은 유대를 형성케 했으며, 정의와 악에 대한 갈등과 성찰, 옳고 그름에 대한 의심과 증명까지 나아가 사회적으로 고민해야 할 화두를 던지는데 까지 발을 걸쳤다.

‘다크 나이트’의 높은 완성도는 ‘배트맨’의 팬들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과 평단 모두를 사로잡았다. 2008년 개봉 당시 역대 박스오피스 성적 4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으며, BBC 선정 21세기 가장 위대한 영화 33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영화가 개봉한지 14년이 지난 현재지만, 여전히 비평 면에서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를 뛰어 넘는 슈퍼 히어로 무비는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덕분인지 이후 개봉한 ‘배트맨’ 영화들은 대부분 혹평을 피하지 못했다. 벤 애플렉이 배트맨을 연기한 ‘저스티스 리그’(2017) 등이 그랬다. 영화들은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의 영향을 받았음이 역력한 태도로 어두운 분위기를 뽐냈지만, 이야기 구조가 엉성하고 캐릭터는 진부하고 완성도가 덜어진다는 등의 평가를 받으며 ‘배트맨’이 다시 한번 역사 속으로 사라지진 않을지 팬들의 걱정을 불렀다.
다행히 맷 리브스 감독이 내놓은 새로운 배트맨 시리즈의 시작인 ‘더 배트맨’은 호불호가 나뉠지언정 나름의 분명한 매력을 각인시키는데 성공한 듯 하다. 영화는 원작의 매력을 살리는데 치중하고, 작가주의적 색채가 강하다는 평을 받았지만, 그만큼 원작 코믹스 속 배트맨의 매력을 가장 잘 구현한 작품이라고 평가 받고 있다. 비록 슈퍼 히어로 무비다운 대중성까지 챙기진 못했다는 것이 중론이지만, 일전의 명작들과 비견될 만큼의 차별화된 매력이 상당하는 것이다.

특히 ‘더 배트맨’은 당초 히어로 무비 사상 가장 사실적이면서 인정사정 없는 폭투 액션을 표방했던 만큼, 지극히 현실적인 액션으로 당혹감과 반가움을 동시에 자아냈다. 원작 코믹스에서와 같이 다양한 장비를 활용해 범죄자들과 싸우는 배트맨의 모습부터 동네 양아치들에게 조차 타격을 허용하는 현실성이 ‘더 배트맨’ 액션만의 특징이다. 동시에 작품의 하이라이트인 카체이싱은 영화 전반의 절제된 연출과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폭발적인 속도감을 자랑하며 관객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한편 ‘더 배트맨’은 히어로의 화려함보단 추리물로서의 지난하고 끈질긴 모습을 그렸다. 빌런 리들러(폴 다노)가 남긴 단서를 쫓아 사건을 풀어가는 배트맨의 모습에선 히어로 무비의 인상보다는 진정 탐정으로서의 이미지가 진하게 남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영화는 가장 어두운 새벽 속에서 희망을 찾아내는 배트맨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 애쓰기도 했다. 단순히 가면 쓴 자경단에 불과했던 배트맨은 두려움의 상징으로 범죄자들에게 공포를 심어주길 넘어 이야기의 끝에서 희망의 존재로 거듭난다.
다만 앞선 두 감독의 작품에 비교해서도 확연하게 느린 전개, 충분치 않은 볼거리 등은 일반 관객들의 ‘더 배트맨’을 향한 원성을 불렀다. 특히 극 중 2년차 배트맨으로 활약하는 브루스 웨인은 어쩌면 악당에게 휘둘리기만 하는 모습으로 등장해 답답함을 자아내기도 했다. 철저히 탐정으로서의 배트맨을 부각시키기 위해 영화는 액션의 비중을 극도로 줄이며 감각적인 재미를 상당부문 축소시켰다.

히어로의 전설 배트맨은 앞으로도 수많은 미디어에서 재생산될 것이 분명한 불멸의 캐릭터다. 당장 맷 리브스 감독의 ‘더 배트맨’도 3부작을 희망하고 있다. 중간마다 아쉬운 결과물을 내놓으며 팬과 관객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지만, 팀 버튼과 크리스토퍼 놀란, 맷 리브스라는 걸출한 감독들의 손에 화려한 부활을 알리기도 한 ‘배트맨’. 각각의 매력으로 영화사에 한 획을 그었던 앞선 작품들을 따라 ‘더 배트맨’과 향후 ‘배트맨’ 실사 영화 시리즈들 역시 새로운 역사를 그려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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