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애의 씨네레터] '리바운드'의 양현에게

2023-04-11 10:25 박미애 기자
    2012년 전국 고교 농구대회 실화 소재
    신임 코치와 여섯 선수, 최약체 농구부가 써 낸 8일 간의 기적
영화 '리바운드'의 양강현(안재홍)
영화 '리바운드'의 양강현(안재홍)

[맥스무비= 박미애 기자]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부산중앙고 농구부 코치가 된 것을 축하한다.
너도 고교 시절에는 MVP까지 한 선수였는데
선수가 아닌 코치로 모교가 돌아간 기분은 어때.

당연히 좋겠지.
네가 그토록 바라던, 농구를 다시 할 수 있게 됐잖아.

조금 걱정인 건,
지금의 중앙고 농구부가 왕년에 잘나가던 그 농구부가 아니잖아.
아무도 관심 없고, 학교에서도 농구부 돈 든다고 해체시키고 싶어하잖아.
옛 명성 때문에 없애지 못하고 돈 아끼려고 공익근무요원인 널 코치로 채용했지.

너는 개의치 않는 것 같더라.
처음부터 다시 세팅해야 하고, 맨땅에 헤딩하는 것과 다름 없는데도 열심히 하더라.
전국에서도 탐을 내는 준영이를 영입하고,
그 덕에 중앙고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기범이를 불러들이고,
부상으로 농구 꿈을 접은 규혁이에, 축구 하던 힘좋은 순규와 길거리에서 얼떨결에 발견해낸 강호까지.
예상 밖 꽤 괜찮은 팀을 꾸렸지.

너희는 준영이의 큰 신장을 활용한 전술로 집중 훈련을 했어.
부원들은 한결같은 훈련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
너는 '약체팀인 우리가 이기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며 고집했어.
실제로 골 밑에서 2m 준영이의 공격을 막을 선수들은 많지 않을 거야. 눈앞에 승리가 보이는 듯했지.

언제나 그렇듯 좋은 일에는 꼭 탈이 생기나봐.
전국대회 경기 당일 준영이가 상대팀으로 가버린 거야. 준영이 위주로 훈련을 해온 너희로선 한 마디로 망한 거지.

경기는 불보듯 뻔했어. 경기 초반부터 점수 차가 크게 벌어졌어. 급조된 팀에게서 팀워크를 기대할 순 없었지. 기범이와 규혁이의 실랑이로 분위기도 험해졌어.
급기야 규혁이가 던진 공에 심판이 맞고 쓰러지는 참담한 상황이 발생했지. 결과는 농구부의 전국대회  6개월 출전 정지. 너희는 뿔뿔이 흩어졌고 정말로 농구부가 해체되는 것 같았어.

그때의 넌 이젠 정말 농구에 대한 마음을 접어야 겠다고 생각한 것 같더라. 나도 마음이 좋지 않았지.
마침 네가 MVP 인터뷰 영상을 본 건 정말 잘한 일이야.
영상에는 농구를 순수하게 좋아했던 고교선수 강양현이 있었지.

그 영상이 너를 일깨웠어. 옛 영광에 기대어 보란듯이 재기하고 싶었던 마음이 앞서,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지.
네가 농구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신나했는지, 미쳐있었는지를 말이야. 네 생각만 하느라 농구를 향한 아이들의 애정과 열정을 보지 못했던 걸 말이야.

이때부터 너희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돼. 해가 바뀌고 농구에 신입 재윤이와 진욱이도 들어오지. 재윤이는 경기 경험 전무하고, 진욱이는 농구 경험이 없지만 농구에 푹 빠져있는 '농구바보'들이더라.
너희는 다시 한번 전열을 가다듬고 전국대회를 준비해.

그리고 첫 경기. 기범이와 규혁이의 환상적인 콤비 플레이로 상대 팀을 가볍게 이겼어. 어느 누구도 신임 코치와 달랑 여섯 명의 선수로 이뤄진 농구부가 이길 줄은 몰랐지.

그런데 너희는 알았을까. 너희가 전국대회 대파란의 주인공이 될 것을.
최약체였던 농구부가 부상과 체력 고갈, 선수 부족 갖가지 악조건 속에서 연전연승으로 결승까지 올라가게 것을. 언더독의 반란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너희를 다시 보게 만들었지.

나는 너희의 뜨겁고 빛나는 여정을 함께하며 나도 모르게 흥분되고 어떤 에너지가 내 안에서 솟는 것을 느꼈어. 그러면서 이제라도 '나의 농구'에 대해 생각했지.

우리의 시간은 쏘아진 화살같고, 한번 쏜 화살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 무엇 하나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에서, 미래의 불확실한 행복을 담보로 오늘의 확실한 행복을 외면하는 건 지금이 가장 젊은 내 청춘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군. 좋아하는 일로 새출발을 앞둔 내 상황이 너희의 여정을 그렇게 받아들인 듯도 해.

물론 좋아하는 것을 해도 잘하지 못하고, 실패할 수도 있어. 좋아하는 것을 실패하면 더 아프겠지. 그럼 좀 어때.

네 말처럼, 공은 다시 튀어올라 새 기회를 만들고, 농구는 끝나도 인생은 계속되잖아. '리바운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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