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회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 공식 상영 호평 칸이 안기는 중압감, 이제 "설렘과 기대감"으로
[맥스무비= 윤여수 기자] "프랑스 엘리베이터는 왜 이리 좁은 걸까요?"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일상 속에서 느끼는 공포에 대해 묻자 "엘리베이터를 탈 때면 '혹시 멈추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면서 내놓은 너스레였다.

신작 '잠'(제작 루이스픽쳐스)을 들고 프랑스 칸을 찾은 배우 정유미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밝았다. 정유미는 지난 16일(이하 한국시간) 막을 올린 제76회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받은 영화를 21일 오후 공개했다.
이날 그 옆에서 연출자로 이번 영화를 첫 장편 데뷔작 삼은 유재선 감독이 설레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장편영화 데뷔작을 세계 최고 권위의 영화 축제에서 선보이게 됐다는 사실이 "꿈만 같다"며 상기된 목소리로 인터뷰를 이어갔다.
영화 '잠'은 두 사람과 함께 이선균이 손잡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퍼져나가는 공포를 그렸다. 어느날 악몽처럼 덮쳐온 공포와 그에 얽힌 비밀을 풀어가며 고통을 이겨내려는 신혼부부의 이야기이다.
정유미는 유재선 감독의 말을 인용해 "스릴러의 외피를 둘러싼 러브스토리"라고 설명했다. 마침 유 감독은 이날 결혼 1주년을 맞은 신혼의 남편. 부인과 함께 칸을 찾았다는 그는 실제로 자신의 지난 시절을 더듬어가며 영화를 연출했다고 돌이켰다.
# 정유미 "칸! 소풍 같다"

정유미는 2016년 '부산행' 이후 다시 한번 칸으로 날아왔다. 당시 해외 영화관계자들과 언론의 호평을 받았던 그는 이번 '잠'을 통해서도 "(관객이 영화가)좋다는 표현을 엄청 해주셔서 더 재미있다"며 웃었다.
실제로 이날 '잠'이 칸 미라마르 극장에서 공식 상영된 뒤 400석 규모를 채운 관객들은 환호와 박수로 주연들과 감독, 제작진을 찬사했다. 한 영화관계자는 "그런 분위기는 비평가주간 상영작으로서 상당히 호평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귀띔했다.
이에 정유미는 "시나리오에서 받은 느낌 그대로 (영화가) 잘 나온 것 같다"면서 "감독의 첫 영화를 칸에서 처음 소개할 수 있다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칸은 소풍 같은 느낌이다"며 자신이 받고 있는 시선을 짐짓 덤덤히 받아들였다.
이날 정유미는 2019년 '82년생 김지영' 이후 4년 만에 신작을 선보였다. '82년생 김지영'에서는 여성으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의 고단함과 아픔을 그려냈다면, 이번에는 "아픔을 극복하게 위해 무언가를 표출하는 캐릭터"로서 역할했다. 캐릭터에 대해 유 감독과 나눈 공감에서 영화를 출발했다는 그는 4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관객에게 새롭게 다가갈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그는 "코로나19로 인한 많은 변화 속에서도 재미있는 작품을 보여드리면 관객이 찾을 것"이라면서 "모두 거쳐가야 할 과정이다"고 말했다. 그런 선택이 쉽지만은 않을 터, 하지만 정유미는 "그런 선택을 결국 관객이 보는 것이다'며 뚜벅뚜벅 새로운 한 걸음을 또 다시 내딛고 있다.
# 유재선 감독 "이제 해방된 느낌!"

유재선 감독은 2018년 단편영화 '부탁'으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코리안 판타스틱 부문 단편 작품상, 대단한 단편영화제 KT&G 금관상과 관객상 등을 수상하며 영화계의 기대를 모았다. 그리고 5년 만에 '잠'을 통해 본격적인 장편영화 연출의 길로 들어섰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의 연출부 등을 거친 그는 "정신없겠다. 즐기고 오라"는 봉 감독의 격려를 받고 칸을 찾았다.
하지만 즐기기는커녕 그는 한동안 "악몽"에 시달렸음을 털어놓았다. 칸 초청작이라는 중압감이 컸다는 것이다. 그는 "영화를 공개한 뒤 투자배급사 관계자가 조심스레 '(관객)평가가 별로 좋지 않다'고 말하자 내가 '그럴 수 있다. 평가가 다 좋을 수 없다'고 스스로 위로하는 꿈이었다"면서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돌아봤다.
하지만 잘 짜인 한 편의 이야기를 통해 이날 칸에서 환호와 박수를 받고는 비로소 "(악몽에서)해방됐다"며 활짝 웃었다. 그만큼 칸에서 자신의 영화를 선보이게 된 데 대한 "기대와 설렘"이 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한 편의 이야기를 제대로 구성해낸다는 것의 어려움일 것이다.
유재선 감독은 이를 자신의 실제 생활에서 모티브를 찾으면서 풀어나갔다. 잠을 소재로 삼아 공포의 정서를 그려낸 데 관해 그는 "잠을 자면 어떤 위협이 도사리는 일상"에 관한 관심에서 이야기를 펼쳐갔다고 말했다. 이어 '잠' 시나리오를 쓸 당시 "결혼을 준비 중이었다. 인생의 화두가 결혼이었던 시기였다"면서 "결혼과 부부에 관한 이야기가 중심이 됐다"고 밝혔다. 특히 극중 아내 역 정유미가 남편 이선균과 함께 아픔과 고통에서 헤어나려 노력하는 설정을 떠올리며 "어려움을 부부가 함께 극복해가야 한다는 게 내 아내의 결혼에 관한 신조"라며 웃었다.
이처럼 현실의 고통을 이겨내려는 이들의 이야기를 미스터리 장르 속에 "러브스토리"의 감성으로 담아낸 유 감독은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바 없다지만,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다음 연출작으로 삼고 싶다는 희망을 드러낸 말에서도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살짝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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