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무비= 박미애 기자]
과도한 'PC' 주의의 대한 반감일까. 흑인 배우의 인어공주 캐스팅에 대한 거부감일까.
디즈니 실사영화 '인어공주'가 작품 자체보다 캐스팅 등 제작 방향을 둘러싼 이슈에 휘말렸다. 핵심은 디즈니가 최근 'PC'(Political Correctness) 즉, 정치적 올바름을 지나치게 강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편의 영화에 부여되는 다양한 의견으로 치부하기엔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나타나는 일부의 반응은 공격적이기도 하다.
그 여파 탓일까. '인어공주'는 5월24일 개봉해 2일까지 가까스로 50만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다. 그렇다고 '인어공주'의 선택을 '실패'로 치부할 수는 없다. 맥스무비가 '인어공주' 논쟁을 찬, 반 양론으로 짚었다. '다양성의 확장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는 분석 VS '원작의 정체성을 훼손한 선택은 부정적'이라는 의견을 각각 소개한다.

●원작 훼손 간과한 ‘정치적 올바름’
‘인어공주’를 둘러싼 논쟁은 원작 훼손에서 비롯됐다. '흑인 에리얼' 캐스팅에 대한 논쟁이 그 중심에 있다. ‘인어공주’는 1837년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를 재해석한 1989년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원작(애니메이션)의 에리얼은 빨간 머리의 백인인데 실사의 에리얼은 빨간 머리의 흑인으로 바뀌면서 ‘뜨거운 감자’가 됐다.
흑인 에리얼은, 디즈니의 지금까지 행보를 고려하면 충분히 예상되는 캐스팅이다. 디즈니는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명분 아래 그간 작품에 문화 다양성을 적용해왔다. 인간이 아닌 에리얼이 소수자를, 에리얼의 목소리가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보면 흑인 에리얼은 디즈니로서는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그러나, 디즈니의 르네상스를 열어젖힌 원작의 존재를 간과한 것이 디즈니의 오판이었다. 흑인 에리얼에 대한 거부감은 ‘#NotMyAriel(나의 에리얼이 아니야)’이라는 SNS 해시태그 활동으로 이어졌다. 백인 에리엘로 이미지가 각인된 이들에게 흑인 에리얼은 낯설고 불편하게 다가갔다. 종종 시대극이 알려진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역사 왜곡 문제에 휩싸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인어공주’가 아닌, 다시 말해 원작이 없는 새로운 창작물로 접근했다면 흑인 공주든 동양인 공주든 이 같은 논란을 피할 수 있었을 터다. 디즈니의 정치적 올바름이 지나치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또한 '인어공주'에는 다인종의 인어공주와 여왕 등 원작에 없는 얼굴들이 나오는데, 이들을 등장시킨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무의미한 설정들로 정치적 올바름을 오도하는 안이함이, ‘디즈니식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반감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PC에 대한 거부감? 진짜 문제는…
사실 이러한 논쟁은, 문제의 핵심을 가린다. ‘인어공주’에 부정적 견해를 밝히면, 일각에서 정치적 올바름을 반대하는 사람, 내지는 인종차별주의자로 몰아가는 분위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담론 형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인어공주’의 진짜 문제는 영화를 둘러싼 논란이 아니라 부족한 작품의 완성도에 있다.
‘인어공주’는 원작보다 50여분 가량 분량을 늘린 135분으로 제작됐다. 분량을 늘렸는데 원작과 거의 차이 없는 구성을 가지면서 이야기가 늘어진다. “지루하다” “재미없다”는 후기가 많은 이유다.
영화 성패의 키를 퀸 주인공의 매력이 부족한 점도 실책이다. 주인공의 연기력이 2시간 넘는 분량을 리드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지 못해서다. '알라딘'의 지니를 연기한 윌 스미스 사례도 있듯이, 캐스팅을 둘러싼 논란은 배우의 연기가 좋거나 영화가 좋으면 잠잠해지기 마련인데 개봉 이후 할리 베일리의 ‘발연기’가 도마에 올랐다. ‘파트 오브 유어 월드’의 파워풀한 가창력도 부족한 연기에 가려 빛을 발하지 못했다. 한 관객은 에리얼이 바위에 몸을 숨기고 인간 세상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동경하는 눈빛인지 노려보는 눈빛인지 헷갈린다고 연기력을 꼬집었다. 특히 할리 베일리의 단조로운 표정 연기가 목소리를 잃은 이후 에리얼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고 지적하는 의견이 다수다.

에릭 왕자의 캐릭터도 존재감이 없는 건 마찬가지다. 원작에서 울슐라를 해치우는 막중한 역할을 에리얼에 넘겨주는 바람에, ‘인어공주’에서는 병풍 같은 캐릭터로 전락했다. 오히려 울슐라 역의 멜리사 매카시의 존재감이 적은 출연 분량에도 풍부한 표현력과 카리스마로 남녀 주인공을 압도한다.
‘인어공주’는 에리얼이 에릭 왕자와 맺어져 인간과 인어들의 축복을 받으며 행복해하는 모습으로 끝난다. 이같은 결말은 에리얼이 개척한 운명이라는 것이 결국 사랑 때문이었다는, 원작의 한계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이야기로 아쉬움을 남긴다.
●‘인어공주’ 온도차…실사 프로젝트 계속
‘인어공주’는 북미 개봉 1주일 만에 전 세계에서 2억3000만 달러를 벌어들여 원작의 흥행을 넘어섰다. 이 가운데 글로벌 수익의 65%에 해당하는 1억5000만 달러를 북미 지역에서 벌어들이며, 흥행 순항 중이다. ‘인어공주’는 또한 미국의 영화 평점 사이트인 로튼토마토에서 95%의 팝콘점수로 일반 관객 사이에서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
국내는 이와 상반된다. '인어공주'의 평점은 CGV골든에그지수 76%, 네이버 평점 6.56점 등으로 저조한 편이다. 일일 관객 수도 1만~2만명대로 떨어졌고, 관객들이 지난 달 31일 개봉한 ‘범죄도시3’에 쏠리면서 국내에서는 초라한 성적을 거둘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올해 설립 100주년을 맞은 디즈니의 실사화 프로젝트는 계속된다. 내년에는 라틴계 배우 레이첼 지글러가 주연한 '백설공주'가 공개된다. 이미 팬들 사이에서는 디즈니가 정치적 올바름을 실천하느라 개연성을 무시한다는 비판을 일고 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에서 벗어나자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시대의 흐름을 무시할 수는 없다. 다만 그것이 누군가의 추억을 훼손하면서 몇몇 설정을 바꾸는 '인어공주'와 같은 방식으로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남는다.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