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무비= 조현주 기자]
영화 '비닐하우스'로 뉴욕아시안영화제의 초청을 받아 전날 뉴욕에서 돌아온 이솔희 감독을 영화 개봉 하루 전날인 25일 만났다.
뉴욕 자체도 처음이었고, 보통 한인들이 오는 GV(관객과의 대화) 때 대부분의 자리를 채운 외국 관객들이 영화에 대해 다양한 표현을 해줘서 재밌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2년 전 촬영을 끝낸 '비닐하우스'(제작 한국영화아카데미)를 드디어 관객들에게 보여줄 날이 다가왔기에 긴장한 신예 감독의 복잡 미묘한 감정도 느낄 수 있었다.

"'비닐하우스'와 계속 이별하고 싶었어요. 싫어서가 아니라 제가 더 이상 완성할 것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끝난다는 기분이 들어요. 관객들이 어떻게 봐줄지 두렵기도 하네요."
● "거친 세상"이었던 영화계에 발 디딘 이유
이솔희 감독은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으로, 26일 첫 장편 데뷔작인 '비닐하우스'를 세상에 내놓는다. 이 감독은 중학교 1학년까지만 공교육을 받았고, 이후 외국 생활과 대안학교에 다닌 뒤 대학교에 입학했다.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관찰하는 일상이 익숙한 10대와 20대를 보낸 것을 "영화를 붙잡고 할 수 있는 이유"라고 꼽았다.
이솔희 감독의 아버지는 영화과를 나와 다큐멘터리 작업을 했다. 그런 아버지를 통해 바라본 영화계는 "거친 세상"이었지만 "정신 차려보니까 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미소 지었다. 대학 졸업 후 합류한 '경관의 피' 연출부 생활을 통해 영화를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준비 끝에 한국영화아카데미에 입학하게 됐다.
고령화 사회의 필수로 여겨지는 '돌봄'을 둘러싼 현실 기반의 스릴러인 '비닐하우스'는 2022년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CGV상, 왓챠상, 오로라미디어상까지 3관왕을 수상하며 일찌감치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 '비닐하우스'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나를 위해 살아가자"
영화는 이솔희 감독의 관찰에서 출발했다.
"어머니가 치매가 온 외할머니를 돌보는 과정을 지켜봤다"는 감독은 "어머니는 나를 (영화와)연관시키지 말아 달라고 이야기한다"고 웃었다.
그의 영화는 비닐하우스에 사는 문정(김서형)이 주인공이다. 문정은 아들과 함께 살 제대로 된 집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치매에 걸린 자신의 노모는 병원에 맡기고, 노부부의 간병인으로 일하면서 말이다. 어느 날 불의의 사고가 발생한다. 문정은 이를 감추기 위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면서 파국으로 치닫지만, 아이러니하게 이것은 문정의 해방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솔희 감독은 파멸 속에서 희망을 찾는 영화를 통해 "그럼에도 살아낼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저도 마찬가지지만, 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은 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누군가의 기대가 중요하고 보호하는 게 중요하죠. 어쩔 수 없지만, 나 자신이 배제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슬펐어요. 영화를 통해 오로지 나만을 위해 사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 "미친 척"하며 현장을 끌고 가야 했던 이유
아직 앳된 얼굴의 이솔희 감독은 '비닐하우스' 연출 당시, 20대 후반의 나이로 현장을 이끄는 총지휘자 역할을 해내야 했다.
"처음이자 마지막 영화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지만 "마지막일 수도 있으니까 진짜 열심히 했다"던 이 감독은 "중견배우들도 많고 스태프들의 신뢰를 얻는 것도 두려웠지만 끌고 가야 했다. 미친 척하면서 했다. 다행히 소통이 잘 됐고, 분위기도 좋았다. (김)서형 선배님이 분위기를 이끌어 주기도 했다"며 고마움을 드러냈다.
"개인적으로 (김)서형 선배님과 성격이 잘 맞았어요. 문정 캐릭터를 함께 연구한 것도 아닌데, 몇 마디 하면 통하는 것들이 있어서 전체적으로 자연스럽게 만들어 나갔어요. 사실 처음 만났을 때 소녀 같은 부분을 발견했죠."
이 감독은 영화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예비 관객들에게 당부했다.
그렇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영화가 끝나고도 (관객의 마음을)붙잡아 놓는 것"이라며 "불쾌함이 될 수도 있고 긴장감이 될 수도 있다. 붙잡아만 둔다면 성공이다. 불쾌하셨다면 죄송하지만, 영화 속 문제가 완전히 가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에게 닥칠 이야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가 끝나고 새로운 작품을 함께할 PD를 만나 차기작을 논의 중이다.
"무기를 제대로 보여주자"는 PD의 말에 이 감독은 차기작에서도 자신의 장점을 살릴 예정이지만, 거기서만 머무를 수 없다는 의지도 보여줬다. "내 얘기에 갇혀 있고 싶지 않고, 넘어서고 싶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