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마지막 영화음악 DJ 신지혜" - 브레이크 뉴스 8월 18일

2004-08-20 11:48 맥스무비취재팀 기자

[맥스무비= 맥스무비취재팀 기자] “안녕하세요. 신지혜의 영화음악입니다.” CBS FM 93.9MHz, 매일 오전 11시면 우리는 한결같은 목소리로 영화와 음악을 이야기하는 아나운서 신지혜씨를 만날 수 있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 경도되어 있고, 엔리오 모리코네의 음악을 좋아하며, 일본 애니메이션에 심취해 있다는 신지혜씨는 정말 욕심이 많은 여자이다. 혼자서 PD의 역할, 아나운서의 역할, 엔지니어의 역할을 아우르는 ‘1인 제작 시스템’으로 신지혜의 영화음악을 7년 이상 최고의 영화음악 방송으로 지켜왔다. 그리고 지금, 그녀가 오랜 동안 꿈 꿔왔던 영화제를 현실에서 만들어가고 있다. 누구보다도 신지혜의 영화음악을 아껴왔던 애청자들은 직접 영화제의 스텝으로 참여해서 그녀의 지친 어깨를 달래주고 있다.

그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결코 영화제를 만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그녀를 CBS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생방송을 앞두고 감정을 고르고 있는 그녀에게서 순간 짙은 고독이 느껴졌다. 여전히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그녀가 방송하는 모습을 보면서 알 수 없는 그리움이 느껴졌다. 지금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는 기자도 오랫동안 신지혜의 영화음악을 들어왔던 애청자의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김용호) 스튜디오에서 홀로 방송을 하는 모습이 고독해 보였다. 얼굴도 많이 피곤해 보인다.

(신지혜) 원래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고독하다. 지금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더욱 고독해졌다. 영화제를 앞두고 많이 걱정이 된다. 아주 소규모로 하는 영화제라 간단해 보일 수도 있는데, 그래도 영화제라는 타이틀을 붙여놓고나니 세부적으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내가 욕심이 많아서 몸이 힘들다.

(김용호) 언제부터 영화제를 꿈꾸었나?

(신지혜) 영화제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머리 속에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은 예산 문제도 있고 엄두가 안 났다. 계속 미루어오다가 지난 4월 전주 영화제 중에 좋은 친구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던 중에 바로 결정하게 되었다. 회사(CBS)에 이야기했더니 "영화제 좋긴 한데, 되겠냐? 이슈가 없잖아? 컨셉이 뭐야? 기자들이 보기에 맛있는 먹이가 아니다."여러 가지 이유로 난색을 표현했다. 그래서 회사의 지원 없이 혼자 추진했다. 방송 프로그램에서 영화제를 만드는 것은 사상 최초의 일이다.(김용호) 왜 영화제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나?

(신지혜) 신지혜의 영화음악(이하 신영음)이 98년 2월에 시작해서 지금 만 7년째 이어오고 있다. 장수 프로그램으로서 장점이 있다면 한결같을 수 있다는 것과 고정 청취자들이 생긴다는 것이다. 애청자들이 프로그램과 함께 나이를 먹으면서 추억거리가 생긴다. 대신 너무 똑같은 느낌을 준다. 개편할 때마다 코너를 달리하고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그래서 큰 기폭제가 있었으면 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영화제이다. 큰 영화제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작고 알찬 영화제를 보여주고 싶었다.

(김용호) 영화제에서 <공각기동대>, <인랑>, <이노센스>, 오시이 마모루의 애니메이션만 3편 상영한다. 왜 오시이 마모루인가?

(신지혜) 하고 싶은 것이야 많았지만,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딱 3편만 상영해야 했다. 신영음, 신영음지기의 색깔은 무엇일까? 많이 고민했다. 바로 애니메이션이었다. 신영음은 애니메이션 음악에 계속해서 애착을 가져왔다. 일본 애니메이션 음악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도 일본가는 친구들에게 부탁을 해서 어렵게 시디를 구해서 방송을 했었다. 그 정도로 일본 애니메이션, 애니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신지혜) <공각기동대>를 처음 봤을 때 충격을 잊을 수 없다. 자막도 없는 것을 구해서 봤는데 오프닝씬에서부터 너무 인상적이었다. 새벽까지 비디오를 보는데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후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각기동대>가 상영되었다. 일이 바빠서 못 갈 줄 알았는데 딱 하루 시간이 났다. 운명인 것 같았다. 망설임 없이 부산으로 갔다. 나 혼자 여행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부산극장에서 영화를 보는데 "바로 이것이다!"했다. 지금도 <공각기동대>를 생각하면 감동에 피가 솟구친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각기동대>를 와이드 스크린에서 보고 싶었다. 다행히도 <공각기동대>의 판권을 가지고 있는 대원에서 많이 도움을 주셔서 <인랑>과 <이노센스>와 묶어서 함께 상영할 수 있었다. <아바론>도 상영되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래도 환상적인 라인업이라고 생각한다.

(김용호) 신영음의 청취자들이 직접 영화제의 스텝으로 활약한다고 들었다.

(신지혜) 그저 감사할 뿐이다. 신영음 청취자들은 너무너무 열정이 있다. 이것이 신영음의 복인 것 같다. 스텝으로 활약하는 사람들은 신영음을 몇 년 이상 들었던 사람들이다. 6년, 7년을 들어왔다고 하는데 "질리지 않아?" 나도 궁금해서 가끔 물어본다. 뭐가 그렇게 매력적이었나 모르겠다. 애청자만으로도 감사한데 신경 써서 일까지 해주는 모습들이 고맙다. 신영음과 함께 나이를 먹고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가 된 사람들이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스텝 회의를 하고 매일매일 인터넷 커뮤니티에 모여서 진행사항을 공유한다. 그들이 없었으면 영화제 못했다.(김용호) 영화제가 이젠 일주일 남았다.

(신지혜) 아직도 할 일이 많다. 무료 상영으로 가게 되었다. 오늘 티켓 발송을 하는데 좌석이 정확하게 집계가 되어야 하니까 어렵다. 보고 싶은 사람들이 못 보는 경우를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영화제를 하면서 목적했던 바 중 하나가 신영음을 알리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체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방송을 들었다는 사람이 있다. 아직 CBS의 존재가 미약하다. 기독교 방송이니까 복음성가만 틀어줄 것이라는 선입관도 있다. 그것이 싫다. CBS에 이렇게 좋은 방송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더 좋은 음악들을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대외적인 홍보를 중요시한다. 포스터도 많이 보냈다. 지나가다 우연히 보고서 영화제를 많이들 찾아와 주셨으면 좋겠다.

(김용호) 이야기에서 신영음 방송에 대한 자신감이 내비쳐진다.

(신지혜) 내가 잘난 척을 잘 못하는 성격인데, 방송에 대해서만큼은 자신 있게 말을 할 수 있다. 처음에 맨땅에 헤딩하면서 일궈왔던 것이다. 나름대로 만족한다. 개편 때마다 새로운 마음으로 열심히 해야지 결심한다. 지금까지 계속 그런 태도를 가지고 왔다. 또 계속해서 신영음을 사랑해주는 청취자들이 있기에 자신이 있다. 프로그램의 질로써 자신이 있다.

(김용호) 다른 방송국의 영화음악 프로그램들이 거의 사라지고 있다. 그런 현실에 대한 위기감은 없나?

(신지혜) 위기감, 있다. 영화음악 방송이 폭발적인 관심을 얻었을 때 각 방송사에서 경쟁 프로그램들이 많이 생겼다. 영화음악 프로그램들은 같이 있어야 좋다. 같이 번성을 하고, 각자 나름대로의 취향이 있어서 같이 살아남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신지혜) 처음 정은임의 영화음악(이하 정영음)이 사라졌을 때 "정영음을 못 잊다가 신영음을 발견해서 위안을 삼아요."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번에 정영음이 부활했을 때 게시판에 가 보니 낯익은 이름들이 많았다. 부러움이 컸다. 그런 정영음이 반년만에 다시 사라졌다. 요즘 영화 소개 안 하는 프로그램이 없지만, 영화음악을 하나의 독자적인 장르로 봐주시지 않는 것 같다. CBS에서도 신영음은 많이 신경써주는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큰 방송국에서 영화음악 프로들이 다 내려가고 하니 내 존속도 위태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위기감을 느꼈다. 그래서 영화제라도 터뜨리자 라는 생각을 굳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김용호) 영화음악 시장 자체가 위기인 것 같다.

(신지혜) 음반 매니저들이 말하길 요즘 영화 사운드트랙 발매하면 잘 나가야 5천장이라고 한다. 영화음악 사운드트랙을 내는 것도 일종의 구색 맞추기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제대로 발매하는 영화들도 별로 없다. 요즘 새 영화 나와서 홍보사 사람들에게 사운드트랙 물어보면 대표곡 한두곡만 시디로 구워서 보내준다.(김용호) 예전에 라디오에서 영화음악을 많이 듣던 사람들도 시간이 흘러 지금은 거의 듣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저 추억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

(신지혜) 나는 청취자라는 것은 물이 흘러가듯이 흘러간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당연하다. 서운할 것도 없다. 서운해해서도 안 된다. 그래도 지금 새롭게 방송을 듣는 대학 1학년생이 있다면 반갑다. 새로운 것을 생각해야지 흘러간 것에 대해서 미련을 가져서는 안 된다.

(김용호) 요즘은 귀를 확 사로잡는 영화음악이 없는 것 같다. 몇 곡 추천해 주셨으면 좋겠다.

(신지혜) <그녀에게>의 사운드트랙이 발군이다. 한국 영화음악 중에서는 류승완 감독과 작업하는 한재권씨 음악이 좋다. <아라한 장풍대작전>이 좋은데 사운드트랙이 발매되지 않았고 <피도 눈물도 없이> 사운드트랙을 들어봤으면 좋겠다. 약간 경쾌하면서 재즈한 듯 탕탕 눌러대는 음악이다. 그리고 <캐치 미 이프 유 캔>, 프랭크 시나트라의 노래를 편곡한 느낌인데 보사노바의 스탠더드한 것들이 잘 어울려서 앨범이 기가 막히다.

(김용호) 요즘 청취자들이 가장 많이 신청하는 영화음악은?

(신지혜) <신부수업> '여자를 내려주세요?', 그리고 <인어공주>의 'Under The Sea', <러브 어페어>의 'Piano Solo' ....... 예전에 사랑받던 영화 음악들이 변함없이 많이 들어온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들을 보면서 아쉬운 생각도 든다. 새로운 좋은 영화음악들도 많이 사랑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김용호) PD에서 작가, 진행까지 오랜 동안 일인제작시스템으로 방송을 꾸려오셨다.

(신지혜) 일인제작시스템이 맞는 프로그램이 있다. 월드뮤직, 영화음악, 재즈 프로그램, 명상 프로그램 등은 일인제작이 충분히 가능하다. 일인제작을 해서 좋은 점은 순발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날 갑자기 생긴 일에 대해서 곧바로 분위기에 맞는 곡을 끌어다 쓸 수 있다. 재작년부터 함께 일하게 된 작가가 써주는 몇 개의 코너 원고를 제외하고, 기획과 선곡, 연출 등 프로그램 전체를 소화하고 있다. 혼자하다 보면 기획과 구성이 자유롭고 이야기가 주절주절 잘 나온다. 오프닝도 그냥 주절주절 한다. 순간순간 느껴지는 느낌들을 바로 소화할 수 있다. 아이디어가 생각이 날 때마다 바로 참조할 수 있다. 와이드 프로그램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후기) 남자들에게 그 무엇보다도 음악이 소중했던 시기가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군대'라는 체제에 갖혀 있었을 때인 것은 분명하다. 나의 음악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은 그 괴로운 현실에서 버틸 수 있다는 최후의 믿음과도 같은 희망이었다. 그래서 휴가 나가서 몰래 숨겨가지고 들어온 나의 작은 라디오는 군대시절 나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었다.

힘든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모두가 잠든 시간에 혼자 조용히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은 정말 행복했었다. 군대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낮에도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 여유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신지혜희 영화음악을 만났다. 부드럽고 우아한 목소리로 차분히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신지혜씨의 목소리는 여성의 다정함에 굶주렸던 한 군인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아 버리고 말았다. 그런 '동경'과 '그리움'을 뒤로하고 신지혜씨를 만났다.

영화제에 대해 이야기 하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열정이 있었다. 극장의 한개관을 빌려서 하루에 한 편씩 총 세 편의 영화가 조촐하게 상영되는 그녀의 작은 영화제가 앞으로 그녀의 열정만큼이나 크게 불타올랐으면 한다. 영화제는 서울 중앙시네마에서 8월 24일부터 26일까지 매일 오후 8시 30분에 상영된다. 지금 영화제 홈페이지(sciff.cbs.co.kr)을 찾아보시면 영화제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의 노력의 흔적들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영화제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원하며 영화제를 기대하고 있다는 영화평론가 정성일씨, 영화음악가 조성우씨의 목소리도 직접 들어볼 수 있다.

브레이크 뉴스 김용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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