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알 포인트> 감우성 - 귀신과의 전쟁, 자신과의 싸움

2004-08-28 13:11 맥스무비취재팀 기자

[맥스무비= 맥스무비취재팀 기자]

두 번째다. 그것도 한 달 만이다. 지난 7월, <거미숲>의 개봉을 앞두고 대대적인 감우성 인터뷰가 진행 되었더랬다. 맥스무비도 그때 회원기자 3분과 함께 감우성을 만났었다. 그리고 <알 포인트>로 다시 만난 감우성은 할말이 많은 남자였다.

“요즘 올림픽을 하니까 자꾸 얘길 하게 되는데, 선수들이 금메달 따는 모습 보면 신나고 흥분되잖아요. 보는 사람이 그럴 때 선수들은 얼마나 좋겠어요. 근데 그 선수들이 하루 이틀 준비해서 그렇게 된 게 아니거든요. 몇 년씩 준비하는데 마지막 한 순간 때문에 메달 색깔이 틀려지고 운명이 달라지기도 하잖아요.

영화도 오랜 시간동안 수많은 준비과정을 거쳐서 탄생하고 냉정한 평가를 받는다는 점에서 비슷해요. <알 포인트>는 2년 걸렸어요. 게다가 영화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만드는 거잖아요. 서로가 생각을 맞춰가며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가기가 굉장히 힘들죠. 그렇게 어렵게 완성한 다음에는 상상 이상의 어려운 시험대를 겪어야 해요.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죠.

<알 포인트> 괜찮은 영화에요. 근데 20% 부족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좋다는 평이 나오니까 솔직히 조금 아쉽죠. 원래는 훨씬 더 좋은 영화일 수 있었는데...”

최선을 다한 결과로써 <알 포인트>가 아쉬운 작품이라는 뜻이다. 감우성은 지금 영화의 실패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완벽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미술을 전공한 영향으로 시나리오 한 줄 한 줄을 가상의 도화지에 일일이 그려가며 완벽한 한 컷을 찾아내는 감우성에게 100% 꽉 찬 <알 포인트>는 아마도 존재하기 힘들 것 같다.

영화는 시간의 제약을 받는다. 몇 시간, 몇 년 때로는 수백 년의 시간을 두 시간 남짓으로 압축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영화에는 늘 못다한 얘기가 남기 마련이다. <알 포인트>에도 그런 얘기가 있다. 시간상, 그리고 또 다른 여러가지 이유로 영화로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감우성에게 물었다.

“알 포인트로 파견되기 전, 대규모 전투가 있었어요. 누군가의 동공에 화염이 비치고 눈동자에서 카메라가 뒤로 빠지면 죽은 병사들의 시체가 즐비한 전쟁터가 보여요. 한국군이 전멸한거죠. 혼자 살아남은 최태인 중위가 자살을 하려고 권총을 꺼내드는 찰나, 진지를 점령한 베트공이랑 마주치게 되요. 여자였는데 최태인을 죽이지 않고 그냥 지나쳐버리죠. 다음번에는 한국군이 베트공을 제압하는데 거기서는 반대로 우리가 베트공을 살려두게 되고 그 때 살아남은 베트공이 또 여자에요. 영화 중후반에 등장하는 혼령 이미지의 소녀와 맥을 같이 하는 부분인데, 전쟁이 벌어진다는 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동시에 우리들에게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이야기하기 위한 그런 상징적인 장면이 있었어요.병원으로 호송된 최태인은 알 포인트에서 살아남은 강대위랑 한 병실을 쓰게 되요. 두 사람은 소대원을 잃고 혼자 살아남은 고통과 아픔을 나누게 되죠. 그 와중에 괴로워하던 최태인이 병원을 몰래 뛰쳐나가 창녀촌에 가게 되고 거기서 영화가 시작되는 거에요.”

그런 거였다. 전쟁영화라기엔 정적이다 싶은 <알 포인트>의 근원에는 총과 대포가 난무하는 대규모 전투가 존재했던 거였다. 그 장면이 영화로 찍어졌더라면 감우성의 말처럼 <알 포인트>는 좀 더 힘있고 선굵은 전쟁영화가 되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우리는, 비록 전투를 목격하지 않았어도 이 영화에서 분명 전쟁을 느꼈다. 운이 좋았거나 기존의 방법과 달랐거나 간에.

<알 포인트>는 알 포인트에 파견된 9명의 병사들 전체가 함께 움직이는 영화다. 영화는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시달리는 각기 다른 공포를 비슷한 비중으로 담아내고 있다. 9인의 수색대를 이끄는 최태인 중위의 공포는 어떤 거였을까? 그리고, <알 포인트>를 통해 관객이 느끼는 공포는 무엇일까?

“최태인은 전쟁의 공포 보다는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알 포인트 작전 자체에 회의를 느끼고 있죠. 작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겉돌고, 진중사와 대립해요. 임무야 완수 하거나 말거나 야구나 하고 앉아 있는 그를 소대원들은 똘아이라고 부르죠. 그렇지만 위기의 순간이 닥치게 되면서 이곳이 전쟁터이고 자신이 한 소대의 대장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죠. 소대원들을 살려야 한다는 의지가 모든 것을 뛰어넘는 거에요. 결국 자기 손으로 소대원들을 죽여야 하는 비극을 겪는 인물이에요.

<알 포인트>가 가지고 있는 공포의 정서는 심리적 압박, 긴장감, 강박 같은 거에요. 전쟁터에서 가장 무서운 건 총이잖아요. 마음만 먹으면 상대방을 죽일 수 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서로가 서로를 못믿는다는 거. 내가 죽을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고. 바로 그게 엄청난 공포죠. 보통의 공포영화들은 공포를 유발하는 요소들을 의도적으로 배치해 두고 단순히 시각적으로 놀래키지만, <알 포인트>는 내부 분열을 통해 심리적인 압박감을 주는 거에요.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아주 훌륭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SF 영화 <이벤트 호라이즌>를 보면, 구조요청을 받고 정체불명의 우주선에 출동한 사람들이 이유도 알 수 없고 도대체 뭐 때문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기가 제일 공포를 느끼는 어떤 것을 눈앞에서 맞닥뜨리게 되요. 개개인이 생각하고 보는 공포가 다 틀린 거죠. 얼추 우리 영화와 비슷한 코드가 이 영화에 있어요. 그런 공포에요 <알 포인트>는.”

이 영화에는 공포영화의 전형인 ‘여자의 비명’ 대신 미스테리한 느낌의 착시현상이 여러 번 등장한다. 앞서 가던 사람들이 갑자기 휙 하고 사라진다든가, 없던 건물이 갑자기 우뚝 서있다던가, 광활한 벌판이 무덤으로 가득찬다던가... “보는 것이 믿는 것”일진데 눈으로 보는 걸 믿을 수 없는 <알 포인트>는 당연하다고 괜찮다고 안심하던 모든 것을 불신하게 만든다. <알 포인트>는 확실히 색다른 공포다.

감우성과 얘기를 해보면 그가 시나리오를 한 장 한 장 씹어 삼킨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캐릭터 분석력이나 영화에 대하 이해는 집요하고 철저하다. 도대체 시나리오를 몇 번이나 읽으면 그렇게 되는 거냐고 농담처럼 물었다.

“상당히 어려운 질문이네요. (웃음) 금메달 딴 운동선수가 “열심히 훈련했다” 그 이상 어떻게 설명을 하겠어요. 몇 시에 일어나서 몇 시부터 몇 시까지 훈련하고 몇 시부터 몇 시까지는 머하고 하는 식으로 나열한다 해도 설명되는 부분이 아니잖아요. 연기도 마찬가지에요. 기본적인 표현의 방법과 나름의 해석의 문제는 모든 배우가 각자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을 거에요. 중요한 것은 작품에서 요구하는 느낌을 정확히 찾아낼 수 있느냐 혹은 시나리오가 실제 영상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필요한 디테일들을 찾아낼 수 있느냐 하는 거죠. 시나리오는 상상으로만 만들어진 거니까 실전에 뛰어들었을 때 그거보다 더 나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작업, 시나리오에 대한 플러스 알파를 찾아내는 작업이 필요해요.

바둑은 한 수 두면 무를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한수를 두기 위해 한 시간 두 시간 고민하잖아요. 연기도 똑같아요. 한수를 위해서 사전에 여러가지로 고민하고, 엄청난 상상과 계산을 하죠. 때로는 실패하기도 하고 때로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은 수가 나오기도 하고. 전반적으로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게 되는데, 잘못 놓을 확률을 줄여가고 더 좋은 수를 찾아내는 게 배우가 할 일이에요. 그런 작업은 시나리오를 받는 순간부터 촬영이 끝나는 순간까지 계속되요.”

감우성은 “영화는 영화로 말한다”는 주의다. 그는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열심히 찍었는지 하는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좀 더 냉정하게, 극장에 앉아 눈앞에서 펼쳐지는 영화만이 관객에게 의미 있다고 말하는 감우성에게 촬영 중 힘들었던 일을 묻고 대답을 듣기란 생각보다 힘들었다.

“영화 종반부에 미국 무전실을 박차고 들어가는 장면 있잖아요. 그거 찍을 때 캄보디아에 우기가 시작됐어요. 태풍 온 것처럼 난리가 났었어요. 그냥 서있는 것도 힘들 정도였죠. 낮에는 너무 덥고 밤에는 너무 추워서 도저히 촬영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대단히 힘들고 어렵게 찍었어요. 심지어, 가장 디테일한 연기를 해야 하는 그 장면에서, 동시녹음을 포기해야 했죠. 촬영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상황이어서 우선 찍고 한국에서 더빙을 하기로 한거죠. 그렇게까지 찍은 장면을 결국에는 한국에 와서 다시 재촬영 해야 했어요. 이미 한번 에너지를 다 쏟아 촬영한 장면을 다시 촬영한다는 것이 심적으로도 힘들었고, 캄보디아에서 돌아온 후 체력적으로도 탈진한 상태였어요. 힘들었지만 그래도 영화가 살아난 것은 다행이죠.함께 연기한 배우들에게 고맙죠. 다들 영화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촬영지 캄보디아의 상황을 포함해서 모든 여건이 좋지 않았어요. 그래서 모두가 적어도 자기 몫은 확실히 해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었죠. 아주 절박한 심정으로 본인의 문제는 본인이 책임지자고 의기투합 했죠. 결과적으로 다들 훌륭하게 견뎌냈고 너무 잘 했어요.”

<결혼은 미친 짓이다> 이후 3년 만이다. 작품 고르는 눈이 까다롭다는 감우성이 선택한 두 편의 영화는 완성까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많은 시간과 또다른 기회와 맞바꾼 영화 두 편의 개봉을 앞둔 감우성에게 지난 3년 동안 얻은 것과 잃은 것을 물었다.

“일단 하기로 마음 먹었으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얼마나 힘들든 중요하지 않아요. 내가 생각했던 영화로 만들어졌는가 아닌가가 중요하죠. <알 포인트> 촬영 과정에서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부분들이 상처로 남아 있어요. 그게 제일 괴롭죠. 그렇지만 이번 일을 통해 어쨌든 해봐야 안다는 것을 배웠고, 새로운 성찰의 기회가 되기도 했어요. 안좋았던 부분들은 다음에 또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겠고. 잘된 부분들에 대해서도 분석을 해봐야겠죠. 그냥 단순히 운이 좋았을 수도 있고, 잘될 수 밖에 없었던 요소가 있었다면 그런 것을 기억해놨다가 데이터로 입력해 놔야죠. 어느 쪽이든 이후 작업에 자료로 남고 재산이 되니까요. 현재도 중요하지만 앞으로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 측면에서 많은 걸 배운 시간들이었어요.”

<거미숲>의 강민도 그렇지만 <알 포인트>의 최태인 중위는 얼핏, 보조개가 살짝 들어가는 착하고 순해보이는 감우성의 얼굴과 잘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다.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해야 하는 배우로써는 단점이 될 수도 있지 않냐”는 질문에 감우성은 살짝 웃는다. 부드럽고 멋진 그의 미소. 그러나 그 눈은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거미숲>, <알 포인트> 모두 영화가 강한 거지 제 역할이 강한게 아니에요. 그 영화에 등장하는 두 사람이 순탄하지 못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인 거죠. <거미숲> 강민의 경우는 평범한 방송국 피디에요. 평범하게 연애하고 결혼해서 살다가 사고로 부인을 잃었고 그 아픈 시절을 겪으면서 새로운 여자를 만나고 또 다른 아픔을 겪으면서 이성을 잃게 되는 불쌍한 사람이죠. 강민의 역할은 성격이 나쁘다거나 건달이라거나 힘이 쎄다거나 이런 류의 강한 느낌이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니에요. 사회 속에서 평온하게 살아온 한 남자의 연약함과 내면에 억압되어 있는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부드러운 사람이 더 맞을 수 있는 거죠. <알 포인트> 경우는... 한국 남자는 누구나 군대에 가잖아요. 그리고 군복은 누가 입어도 군복이에요. <알 포인트>의 수색대는 전투를 잘하는 특수부대 출신이 아니에요. 오히려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죠. 최태인 역시 전투에서 소대원들을 다 잃고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이지 멋있게 총알을 피해 다닌다거나 전투력이 뛰어난 캐릭터가 아니에요. 국민의 의무로써 군인이 됐지만, 비참한 과거가 있고 임무를 수행할 의지가 없는. 그러나 살아서 고국으로 돌아가고는 싶은. 평범하고 어떤 면에서는 나약한 캐릭터인 거죠.

어쨌거나 배우는 어차피 남에게 평가를 받는 직업이에요. 그들의 평가에 의해서 이미지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고 바뀌기도 하죠. 본인이 아무리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떠들어봐야 다른 사람이 싫어하면 그만이죠. 근데 제가 생각하는 배우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든 그런거에 흔들림 없이 연기만 하면 되요. 내 인생에 의미를 둘 수 있을만한 작품을 만나서 연기하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저한테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지고 평가받는가 보다 중요해요.”

사실은 많이 지쳐있다고, <알 포인트> <거미숲>가 개봉하고 나면 멀리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는 감우성에게 하루 빨리 활력을 충전하여 우리에게 돌아오라고, 영화로 드라마로 좀 더 자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예의상 던진 인사치레가 아니다. 실력과 노력으로 무장한 감우성은 그만큼 좋은 배우다. 다음 주, 감우성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는 동영상 인터뷰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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