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육혈포 강도단> 김혜옥, 국민엄마 따윈 필요 없어

2010-03-17 10:02 맥스무비취재팀 기자

[맥스무비= 맥스무비취재팀 기자]

도르륵. 카페 한켠에 자리한 작은 별실의 미닫이문을 열었다. 배우 김혜옥이 화사한 미소로 맞아준다. 푹신한 소파와 탁자 위에 차려진 빵과 커피. 그의 자태는 하오의 티타임을 주재하는 품새로 딱이었다.

한데, 이날 만남은 이틀 후 개봉하는 <육혈포 강도단> 때문에 성사된 인터뷰 자리였다. 영화 홍보란 참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중견 배우라고 예외일 수 없다. 마지막 순간까지 힘을 보태고 손을 거들어야 한다. 점심은 급한대로 빵으로 떼웠다고 했다.

<육혈포 강도단>은 세 할머니가 우여곡절 끝에 은행을 터는 이야기를 그렸다. 은행에서 빼앗긴 하와이 여행 경비를 되찾기 위해 대범하게도 역시 같은 방법을 공모한다. 김혜옥은 이번 영화에서 나문희, 김수미와 함께 주연을 맡았다. 노익장을 과시하는 두 배우 틈바구니에서 웃기고도 짠한, ‘평균 나이 65세 최고령 할머니들의 은행 강탈극’을 완성했다.

김혜옥이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할머니 역을 자청한 것은 작품이 너무 좋았기 때문. 특히 ‘김혜옥’을 많이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잇단 작품에서 보여준 탁월한 코미디 연기는 “계산 못하고 빈틈 많은” 자신의 성격 탓으로 공을 돌렸다.

한편, 김혜옥은 모성 연기의 ‘이단아’로 불릴 만 하다. ‘자아 강한 엄마’ ‘주책 맞은 엄마’ ‘성격 있는 엄마’ 등 보통 엄마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해 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국민엄마’ 타이틀을 얻기 보다는 계속 새로운 엄마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고 했다. ‘김혜옥’이 있고 또 보이는, 그런 엄마 말이다.

<육혈포 강도단> 인터뷰는 지금이 처음이시죠?그렇죠. (나문희, 김수미와) 같이 하는 건 몇번 했는데, 혼자 하는 건 오늘이 처음! 이것을 빨리 했어야 홍보가 더 잘 됐을 텐데.(웃음)

이번에 맡으신 역할이 ‘신자’에요. 할머니 강도단 멤버들 중 막내이고 예쁘고, 귀엽고, 엉뚱한 캐릭터잖아요. 어찌 보면 예전에 <올드미스 다이어리>에서 맡으셨던 것과 비슷한 캐릭터인데요.좀 비슷한 부분이 있죠. 배우가, 내가 하는 역할이 아무리 변신을 한다고 해도 내 안에서 나오는 연기인데 얼마나 큰 변화가 있겠어요. 나름 조금 다르게 한다고 했지만.

<올드미스 다이어리>보다는 현실감이 더 있는 캐릭터 같은데요. 그때는 약간 철부지셨잖아요. 약간 푼수였죠.(웃음) 이번 작품에서는 푼수는 아니에요. 나름 지각도 있고, 아픔도 있고.

실제 나이도 그러시고, 외모도 그러시고. 아직 할머니 역할을 맡으시기엔 이른 것 같은데요. 아직 좀 이른 감은 있어요. 주위나 선생님들께서 그러시더라고요. “얼마든지 나중에도 할 수 있는 역할을 지금 가장 좋은 시기에 앞서서 하냐. 배우는 이미지가 중요한데.” 라면서, 하지 말라시던 선배님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하시게 된 이유는요. 그럼에도 작품이 좋으니까 그냥 욕심이 나더라고요. TV나 영화에서 ‘내’가 보이는 역할을 맡기가 힘들잖아요. 어른 위주로, 어른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이 워낙 없으니까. 이렇게 귀하게 이런 작품이 나왔다는데, 그래서 어려운 상황인데도 욕심을 부렸죠. 그 때 당시 제가 작품이 많이 겹쳤어요. 그래도 그냥 하고 싶은 욕심에 용기를 낸 거죠.

‘신자’ 캐릭터의 어떤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나요.그냥 나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나의 어떤 면을 솔직하게 여과 없이 보여줄 수 있는 성격인 것 같아서 마음에 들었어요.

그렇다면 ‘신자’와 비슷한 부분이 많으신가요?있죠. 제 안에는 그런 부분이 많아요. 귀엽고 예쁜 것 좋아하고, 그러면서도 용감한 것도 있고. 사람은 자신 안에 많은 것들이 있잖아요. 대본을 읽었을 때 ‘내가 하면 참 적합하겠다’는 생각을 바로 했어요.

‘신자’의 캐릭터 콘셉트를 보니까 ‘자비 없는 스나이퍼’던데요.(웃음) 총은 이번에 처음 접하셨나요? 처음이에요. 쉽지 않던데요. 볼 땐 되게 쉽더니 일단 무겁고, 제가 또 영화 <멋진 하루>에서 골프 씬을 찍으면서 ‘이 기회에 좀 다져 놓자’라는 생각에 골프를 열심히 쳤어요. 그러다 인대를 좀 다쳤는데, 하필 이번 영화에서 제가 총을 드는 역할이더라고요. 부산에서 병원 옆에 있는 은행에서 찍었는데, 인대 때문에 아파서 병원을 왔다 갔다 하면서 찍었죠. 팔 때문에 정말 괴로웠어요.(웃음)

본인한테 정말 육혈포 한 자루가 쥐어지면 사용하고 싶은 곳이 있나요.(손사래를 치며) 없어요. 전 사람 해치는 물건 싫어해요.(웃음)이제는 현장에서 왠만 해서는 대선배님이시고 선생님으로 통하실텐데, 이번 영화에선 김수미 선생님과 나문희 선생님이 계셨잖아요.그것 때문에 사실 부담스러워서 안하려고 했어요.(웃음) 많이 우려가 됐어요. 다른 파트너들과 다르게 가끔 만나는 역할도 아니고, 단독으로 하는 씬이 많은 것도 아니고, 항상 트리오로 붙어 다녀야 하는 역할이잖아요. 그런 부분이 겁이 나서 ‘이 분들을 모시고 어떻게 내가 주눅들지 않고 해낼 수 있을까?’라는 우려가 많아서 주저한 부분이 있었어요.

결국 주눅은 안들으신 거죠?몇번 들었죠.(웃음) 그런데 두 분이 제 마음을 헤아리시고 정말 잘해 주셨어요. 제가 주눅 안들게 배려를 많이 해 주셨죠.

나문희 선생님과 김수미 선생님의 장점을 꼽아 주신다면요.장점? 너무, 무수히 많아요. 김수미 선배님의 순발력, 그리고 평소 성격은 그렇게 개방되시지 않으셨어요. 어떻게 보면 소극적이고, 내성적이고, 보수적이신데 연기는 그렇게 안하시거든요. 가슴에 맺힌 게 많은 배우일수록 그렇게 폭발력 있는 연기를 하게 되는 거예요. 나문희 선배님은 넓은 우주를 보는 것 같은 광활함이 있어요. 그런 부분은 제겐 결여돼 있어요. 정말 연기라는 게 자기 산 만큼 보여지는 거예요. 전 요만큼만 살았으니까 요만큼 밖에 안 보여지는 거고, 욕심낼 수 없는 경지가 있어요. 나문희 선배님은 정말 너무 광활해요. 무엇을 딱히 하셔서가 아니고 존재만으로 그래요. 그게 배우잖아요. 그런 느낌이 너무 좋아요. 언감생심 전 꿈도 못꿔요. 전 그렇게 안살았으니까, 산 만큼 보여주는 거니까. 부럽지만 어쩔 수 없는 거죠.

<올드미스 다이어리>의 ‘푼수 할머니’, <킬 미>의 ‘술주정 엄마’, 그리고 이번 영화까지 최근에 코미디 연기를 많이 해 오셨어요. 부쩍 코미디 쪽에서 선생님을 찾는 이유가 뭘까요? 저는 설정을 해서 남을 웃기는 재주가 없어요. 그냥 약간 생각 없어 보이는 게 좋은가 봐요. 동정심이 가나 봐요. 제가 뭐든지 계산을 많이 안하거든요. 사는 것도 그렇고, 연기도 계산 안해요, 저는. 그냥 대본만 열심히 읽을 뿐이고, 따로 ‘여기서 이렇게 해야지’라는 설정은 안하는 편이거든요. 그런 빈틈이 좋아 보이나 봐요.

어느 순간부터 선생님이 여기저기 많이 나오시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오래 전부터 꾸준히 활동해 오셨지만, 최근 몇년 사이에 이곳 저곳에 많이 출연하시는데 그 계기가 궁금해요.어느 순간 나이가 들었잖아요. 젊은 역할은 하기가 어렵고, 그래서 엄마 역할을 하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가 바라는 엄마의 상도 많이 바뀌잖아요. 그러면서 저 같은 엄마도 필요해진 거예요. 현모양처나 무조건 희생만 하는 엄마 보다는, 저는 ‘내가 보이는 엄마’도 많이 했고, 성격적으로 ‘주책 맞은 엄마’도 많이 했고, 이제 ‘성격 있는 엄마’를 필요로 하는 시대가 온 거죠. 그것도 유행이라고 생각해요. 운이 많이 좋았죠. 시기도 잘 맞았고. 덕분에 일을 좀 많이 했죠. 다양한 엄마를 표현하면서.

맞아요. <여자, 정혜>, <가족의 탄생>, 드라마 <며느리 전성시대> 등에서 맡으신 엄마 역을 보면 평범한 엄마가 아닌 ‘문제적 엄마’로 많이 나오셨어요. 선택하시는 분들의 성향이겠지만 ‘자아가 있는 엄마’라고 봤을 때, 저에게 그런 자아가 보이나 보죠?(웃음) 아무튼 순종적인 엄마보다는 그런 엄마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김혜자 선생님이나 나문희 선생님을 ‘국민 엄마’라고 부르잖아요. 인자하고, 자상하고, 희생을 하는 그런. 혹시 ‘국민 엄마’라는 타이틀에 대한 욕심은 없으신가요. 그런 생각은 없어요. 많은 분들이 “새로운 엄마의 상을 부각시켜서 너무 좋다.”고 말씀하세요. 자의식이 뚜렷한 ‘내’가 있는 엄마!

저는 <가족의 탄생>에서 엄마 연기가 특히 기억에 남아요. 그간 맡으신 작품 중에서 특히 애착이 가는 엄마 역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그렇죠? <가족의 탄생> 엄마 역 너무 좋았어요. 함축된 표현이긴 한데 ‘터질 것 같은 감정 상태’, 대본도 좋았고, 설정도 좋았고, 엄마의 성격도 좋았고. 맞아요. <가족의 탄생> 엄마 참 좋아요.

선생님을 떠올리면, ‘조증’과 ‘울증’을 넘나드는 연기라고나 할까요? 밝은 캐릭터와 어두운 캐릭터를 번갈아 가면서 하시기도 하지만, 한 캐릭터 안에서도 두 가지 면을 다 드러내시는 게 참 인상 깊어요. 그런 연기는 어디서 비롯되는지 궁금해요.인생을 그렇게 살아오다 보니까 그런 냄새가 저에게 베인 것 같아요. 이럭저럭 세월을 살다 보니까, 사실 그간 살아온 걸 볼 때 평범하게 살지는 않았어요. 예쁘게 가정적으로 애기 낳고, 신랑하고 오순도순하게 산 경우는 아닌 것 같아요. 인생이 파도의 굴곡을 타다 보니까 우여곡절이 많았던 만큼 저에게 많은 영향을 줬겠죠.

작품 선택의 기준은 어떻게 되시나요.따로 없어요. 느낌이 가면 해요. 제가 성격이 있는 역할을 잘 하거든요. 예를 들면 편집증 있는 역할 같은 것들이 제 안에도 잠재돼 있거든요. 그것을 해냈을 때의 카타르시스, 와~ 진짜!. 다른 사람들은 “그런 역은 하지 말지”라고 말해도 전 해요. 너무 재밌어요. 제 선배가 전해준 말인데, 예전에 봉준호 감독님이 그러셨대요. 어떤 세미나에서 인상 깊었던 일본 영화를 봤는데 ‘영화에 나온 굉장히 심한 악역 캐릭터를 할 만한 한국 배우가 누가 있느냐’는 질문에 저를 추천하셨대요. 굉장히 악하고 냉혈한 캐릭터였는데 저를 거론하셨더라고요. 사실 저한텐 그런 면이 있거든요.

혹시, 아직도 자신의 연기가 부족하고 모자라다고 느끼실 때가 있나요? 그럼요. 많이 부족해요. 작품 끝날 때마다 느끼죠. 특히 이번처럼 선배들과 함께 할 땐 어떤 분들이 제게 “연기 잘한다.” 할 때마다 창피할 정도에요. 연기라는 건 끝이 없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연기를 하게끔 만든 동기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순탄치 못한 나의 지나간 삶들이 저를 지금까지 있게 하는 것 같아요. 사실은 좀 어려웠어요. 삶에 고비고비가 많았어요. 일적으로도 연극에선 좋은 역할 많이 맡는 인정받는 배우였는데, TV에 와서 <전원일기> 할 때는 매일 빨래만 했잖아요. 하지만 그런 것들이 제겐 원동력이고 자양분이에요. 경제적으로나 가족들 문제도 마찬가지고요.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상황, 저를 힘들게 하지만 힘도 되는 아이러니인 거죠. 그런 것이 원망스럽지만 나에게 힘이 되고, 그리고 안 하면 안 되는, 돈을 벌어야 했고, 돈을 벌려면 열심히 해야 하는, 열심히 하면 연기 잘한다는 평가를 받게 되고, 그런 것 같아요. 역시 가난해야지 예술이 되는 것 같아요.(웃음)

지금은 가난하지 않으시잖아요.(웃음)지금은 열심히 하는 게 습관이 된 거죠. 전 열심히 하는 거 빼면 시체거든요. 저에게 무기라고는 죽어라고 하는 것 뿐이 없어요.

일하지 않는 시간엔 어떤 것들을 하며 보내시나요?사람들이 제게 “너무 재미없게 산다.”고 해요. 아무 것도 안해요. 시간 있으면 걷고, 책 읽고. 너무 바빠서 가족들과 영화도 한편 못 봤어요. 물론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이 있지만 이젠 여유를 찾고, 즐기고 싶어요.

내일 모레가 영화 개봉인데 예감은 어떠세요?좋아요. 만사 OK죠. 잘 될 것 같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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