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PIFF] 회원기자 리뷰, 곱씹어 볼만한 여운 <된장>

2010-10-11 17:21 맥스무비취재팀 기자

[맥스무비= 맥스무비취재팀 기자]

이번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된 우리 영화 <된장>은 생소한 조합으로 가득찬 영화다. '살인마'와 '된장찌개'가 연결되어 있고, 마법과 같은 신통한 효과를 발휘하는 재료가 흔히 만날 수 있는 '된장'이며, 전설과 같은 미스터리를 쫓는 듯 하다가 헐렁한 코미디가 되고 결국은 아련한 러브스토리로 탈바꿈한다. 장진 감독이 기획, 제작을 맡고 각본에도 참여해 아이러니로 가득한 유머가 주가 되는 코미디처럼 생각했었지만, 이 영화는 구수한 제목과는 사뭇 다른 인상으로 보고 난 뒤 뜸을 들여 곱씹어 볼 만한 여운을 남겼다. 흡사 단지 후각 뿐 아니라 마음 깊은 곳까지 자리하게 되는 된장찌개의 향취처럼.

운이 좋게도 이 영화의 첫 스크리닝 티켓을 얻게 되었다. 내가 이 영화를 기대했던 것은 우선 장진 감독식의 유머를 매우 좋아하는 취향에 기인한 바가 크다. 얕은 말장난이나 과장된 몸짓이 아닌, 어렵지 않으면서 무릎을 치게 되는 대사와 헐렁한 듯 꼼꼼하게 계산된 상황 속에서 발생하는 코믹한 상황은 식상하지 않은 웃음을 안겨준다. 그리고 이러한 장진식 유머는 때로 예상치 못한 감흥을 안기기도 한다. <아는 여자>가 보여준 공감백배의 멜로 감성과 <웰컴 투 동막골>이나 <아들>이 던져준 애틋한 휴머니즘이 그 예다. 개인적으로 웃음은 기본이요, 깊은 감흥도 때에 따라 덤으로 얻을 수 있는 영화가 장진 감독이 감독 또는 제작한 영화라는 생각을 해왔기 때문에 <된장>도 몹시 기대를 했다. 게다가 이 영화는 ''살인마'와 '된장'이라는 소재가 얽혀드는 미스터리'라는 설명부터가 비범하지 않은가.

사건은 이렇게 시작된다. 탈옥 후 전국을 누비며 전대미문의 범죄를 저지르고 다닌 살인마 김종구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너무도 순순히 체포된다. 다큐멘터리와 같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전담하는 최유진 PD(류승룡 분)는 이 사건의 뒤에 '된장찌개'라는 생뚱맞은 열쇠가 숨어 있음을 알게 되고 이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도대체 어떤 맛을 지니고 있기에 된장찌개가 급기야 살인마를 무장 해제시키기까지 했으며, 그런 된장찌개는 과연 어떤 사람의 손에서 만들어진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러던 중, 유진은 이 문제의 된장찌개를 만든 이가 바로 장혜진(이요원 분)이라는 여인임을 알게 된다. 그런데 미스터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녀를 둘러싼 세 인물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 장혜진과 깊이 관련되어 있는 한 남자에 대한 비밀까지 더해지면서, 유진이 추적하는 사건의 전말은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여성감독인 이서군이 22세의 나이에 만든 <러브 러브> 이후 13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된장>은 그래서인지 대단히 섬세한 구석이 많이 보이는 듯 하다. 물론 장진 감독이 참여한 각본에서는 특유의 심드렁한 듯 톡톡 쏘는 유머가 살아 있지만, 그 와중에 영화가 펼쳐 보이는 정서는 다양하고 또 세밀하다. 영상도 꽤 공을 들인 듯한 흔적을 곳곳에서 보여주는데, 극 중 중요한 감정 전개가 일어나는 매화터 장면에서부터 메주가 잔뜩 매달린 창고 장면, 심지어는 살인마 김종구가 체포되는 순간 식당의 모습까지, 행여 여린 인물들의 정서에 흠집이라도 날까 영화의 비주얼은 꽤 부드럽고 아름답다. 된장이 익어가는 모습마저도 애틋하게 그려내는 이 영화는, 된장이 겉으로 풍기는 구수한 맛을 뛰어넘어 그 맛을 내기 위해 뿜어내야 하는 깊고 진득한 감정에 더 집중하는 듯 했다.

영화제 관객과 대화 중 나온 의견 중에서도 '여러 정서를 바쁘게 오가서 오히려 한 감정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말이 있었던 것처럼, 취향에 따라서 처음부터 끝까지 변화무쌍한 감정과 분위기를 표출하는 이 영화가 쉽게 적응하기 힘들 수도 있다. 영화는 처음에 깨방정 스타일의 PD 유진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미스터리를 쫓는 과정에서도 깨알같은 웃음을 추구한다. 그러나 영화를 보다 보면 유진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라 관찰자에 가까움을 알 수 있다. 중반에 이르러 영화의 시선은 유진에서 혜진에게로 넘어가고, 혜진이 품고 있는 사연을 따라가기 시작하면서 분위기는 급전환된다. 마냥 코미디처럼 느껴졌던 영화는 어느 순간 여느 멜로영화와 견주어도 손색 없는, 아니 오히려 여느 멜로영화보다 더 복합적인 감회를 이끌어내는 한 편의 멜로로 완성된다. 그것도 '된장'이라는 소재와 맞닿아서. 영화는 '된장'이 오랜 세월을 따라 흘러가는 파란만장한 삶과 다를 바 없음을 보여준다. 아이러니한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재료로 생각되었던 '된장'은 어느덧 삶의 중요한 교훈을 일깨우는 보약이 된다.

무수한 양의 콩들이 모여 깊은 장맛을 우려내기까지 필요한 것이 비단 만드는 이의 기술이나 천혜의 재료들만은 아니다. 급하게 만들어낸 생산품에서는 느낄 수 없는 깊은 맛을 이루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을 버텨내기 위해서는 기다림이 필요한 법이다. <된장>은 이렇게 한 항아리의 된장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인간의 삶과 사랑에 절묘하게 대입시킨다. 그 어떤 고초도 버티고 오랜 시간을 기다린 자만이 원하는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 그 무언가란 삶에 있어서는 필생의 사랑이 될 수 있을 것이고, 음식에 있어서는 궁극의 맛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재료와 손길을 가장 성숙하고 깊이 있게 만드는 것은 온갖 눈물과 웃음을 머금은 '기다림'인 것이다. 우리가 집안에서 가장 기본적인 식사 메뉴로 여기던 된장이 삶의 진리를 전수하는 현명한 스승으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된장이 만들어지기 위해 더해지는 숱한 조건들을 삶에 대입하는 세밀한 시선은 미처 예상치 못했던 수확이었다.

<된장>은 순한 영화이면서도, 한국영화에서 좀처럼 느낄 수 없는 모양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대담한 영화이기도 하다. 미스터리 구조를 띠면서도 이성적 충격보다 정서적 파장을 도모하는 부분은 일본식 추리물 같은 인상을 풍기기도 한다. 모든 관객들이 좋아할 영화라고 쉽게 단언하기는 힘들지만 (완성도의 문제가 아니라 영화가 보여주는 형식이나 정서의 형태 때문에) 좋아한다면 만만치 않은 여운을 남길 영화임은 분명하다.

드라마 <개인의 취향>과 함께 근래 가장 발랄한 연기를 보여주는 류승룡과 혜진의 이미지를 섬세하게 구현해낸 이요원, 그리고 우수어린 청년으로서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음에도 만만치 않은 존재감을 보여주는 이동욱의 연기가 더해져 <된장>은 신비하고 아련한 미스터리 멜로가 되었다. 장진 감독의 재기어린 각본은 웃음과 더불어 예상치 못한 감정의 수확을 안겼고, 이서군 감독의 세심한 시선은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입체적인 감정의 흐름을 보여주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된장찌개가 급 땡기더라'와 같은 말은 식상할 것 같아서 다른 말을 하려고 한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된장을 담그고 싶어졌다. 우리는 얼마나 깊은 맛을 우려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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