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와인의 깊은 풍미를 듣다 - 조수민의 영화 음악실

2010-10-11 19:43 맥스무비취재팀 기자

[맥스무비= 맥스무비취재팀 기자]

마침내 가을이 왔다. 유난히도 뜨거워 지루하기까지 했던 여름이 가는 것이 우리는 그저 다행이라 여길 뿐이다. 하지만 농부에게 폭염은 축복이었다. 그들이 꿈꾸는 풍작은 혹서의 통과의례를 견뎌내야 비로소 얻게 되는 자연의 보상이기 때문이다.

와인도 혹독한 여름날을 거칠수록 명품을 이룬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와인을 다룬 영화들은 힘겨운 포도수확 과정을 통해 나름 인생의 교훈을 전하고 있다. 화면이 너무 아름다워 잊을 수 없는 <구름 속의 산책>(A Walk in the Clouds, 1995)은 그 대표격으로, 우리에게 <달콤 쌉사름한 초콜릿>(1992)으로 잘 알려진 멕시코의 명감독 알폰소 아라우의 할리우드 진출작이다.

1945년 2차대전이 끝나자 전쟁영웅인 ‘폴 셔튼’(키아누 리브스)이 귀향한다. 전장에서 그토록 그리워하던 고향은 고아출신으로 빈털털이인 그에게 냉랭하다. 돈을 벌어오라는 아내의 성화에 폴은 초콜릿 샘플을 가방에 가득 채운 채 또다시 삶의 전쟁터로 나서고, 출장길에 우연히 ‘빅토리아’(아이타나 산체스-기욘)를 만난다.

혼전 임신상태로 남자에게 버림받은 그녀는 학업도 중단한 채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나 멕시코계 포도농장주인 완고한 아버지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녀의 딱한 사정에 폴은 하루만 남편 노릇을 해주기로 하는데, 부모 승낙 없이 미국인과 결혼한 딸을 보자 아버지는 얼음장처럼 차갑게 대한다. 그녀에 대한 안쓰러움이 사랑으로 변할 즈음 폴은 ‘구름 속의 산책’ 같던 가짜 부부생활을 접고 귀가하지만 이내 아내의 배신을 목격한다. 폴은 결국 빅토리아에게 돌아와 황폐화된 포도농장을 되살리면서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

감독은 우여곡절의 러브스토리를 통해 가족이라는 뿌리 속에서 고난을 극복할 희망을 찾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의 백미는 멕시코 전통방식에 따른 와인생산 과정을 담은 화면들에 있다. 아름다운 풍광의 캘리포니아 마야카마스 와이너리가 주무대인데, 기습적인 밤서리에 포도를 보호하기 위해 곳곳에 화톳불을 지피고는 온 가족이 어깨마다 나비날개를 달아 온기를 퍼뜨리는 장면은 마치 요정의 군무를 보는 듯하다.이 영화를 떠올릴 때면 멕시코 전통의상인 차로를 입고 챙넓은 솜브레로 모자를 쓴 멕시코 전통앙상블 마리아치의 음악이 귓가를 맴돈다. 특히 폴이 빅토리아의 할아버지(안소니 퀸)의 조언에 따라 마리아치 밴드와 함께 그녀의 불 꺼진 창을 보며 부르는 ‘마리아치 세레나데’는 다시 들어도 마음을 설레이게 만든다. 장면마다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빅토리아’ ‘나비날개’ ‘추수’ ‘첫 키스’ ‘구름 속의 산책’ 등도 주옥 같다. 미국 아카데미상 3회 수상을 비롯, 세계적인 영화음악상을 9차례나 수상한 프랑스의 천재 작곡가 모리스 자르가 음악을 맡았다. 이 영화로는 1996년 골든글로브 음악상을 수상했다.

와인 소재영화로 <글래디에이터> 제작팀이 다시 뭉친 <어느 멋진 순간>(2006)을 빼놓을 수 없다. 실제로 리들리 스콧 감독은 포도농장을 소유할 정도이고, 원작소설의 작가로 시나리오를 맡았던 피터 메일은 프랑스 프로방스 매력에 빠져 이 곳에 정착했을 정도로 와인 마니아들이다. 이 영화에서 감독은 마치 인상파 화가처럼 시간의 흐름을 따라 변하는 마법 같은 빛의 경관들을 화면에 담아냈다. 영화 속 프로방스는 여주인공 마리온 꼬띨라르의 푸른 눈 만큼이나 눈부시다. 원제목 ‘A Good Year’는 최고급 와인이 나온 해를 뜻한다.

음악은 배우 러셀 크로우와 함께 리들리 스콧의 드림팀으로 불리는 독일의 밴드맨 출신 마르크 스트라이튼펠드가 맡았다. 그의 오리지널 스코어인 메인테마 ‘Wisdom’을 비롯해 해리 닐슨, 패티 페이지 등 명가수들의 고전팝과 현대팝, 드뷔시의 아라베스크 등 고전음악에서부터 샤를르 트르네옹의 샹송과 룸바음악의 대가 에드몬드 로스의 ‘웨딩삼바’까지 총 30여곡이 적절히 삽입되어 관객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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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민 영화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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