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안티크라이스트> 걸작일까? 범작일까?

2011-04-12 17:41 맥스무비취재팀 기자

[맥스무비= 맥스무비취재팀 기자]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사이코 스릴러 <안티크라이스트>는 감상평을 믿어서는 안 될 영화다. 직접 보고 판단해야 하는 영화다. 관객과 언론의 평가 사이에는 늘 간극이 존재하고 그 간극에서 오는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운 영화는 많지 않다. 하지만 이 영화의 경우는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렸다. 어떤 이의 눈에는 최고의 영화일 수 있지만 어떤 이의 눈에는 최악의 영화일 수 있다. 비위가 약한 사람이라면 영화를 보는 도중 뛰쳐나가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극심한 우울증을 경험하면서 <안티크라이스트>를 만든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옭고 그름을 재단하는 어떠한 코드도 집어넣지 않았다. 과연 국내 관객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2009년 칸 영화제에서 공개된 후 2년 만에 한국 땅을 밟게 된 <안티크라이스트>가 보여주는 잔혹한 영상은 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국내 관객들의 평가가 나오기 전, <안티크라이스트>를 만든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작품 특징을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보기 전, 함부로 예측하지 말 것

러닝타임이 107분밖에 안 된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내놓는 작품마다 극단적 평가를 받아온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야심이 담긴 문제작 <안티크라이스트>는 관객의 인내심을 실험한다. 가학적이고 피학적인 장면은 영화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기도 전에 고개를 돌리게 만든다.

부부가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는 사이, 어린 아들이 쏟아지는 눈을 바라보다 창 밖으로 추락하고 만다. 아내는 아들을 잃은 슬픔과 자책감으로 병들어가고, 남편은 아내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숲 속에 마련된 둘만의 공간으로 향한다. 짧은 시놉시스와 이미 공개된 몇몇 이미지만으로 <안티크라이스트>를 예측하는 건 무리다. 라스 폰 트리에는 ‘안티크라이스트’라는 제목으로부터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영화를 만들어냈다.제목에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종교적인 이미지는 잊는 것이 좋다. <안티크라이스트>는 인본주의적 세계관을 통해 바라보는 인간 본성에 관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극작가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의 소설에서 이번 영화의 영감을 얻은 그는 극중 인물들이 느낄 법한 고통을 그대로 관객에게 안겨준다.

<안티크라이스트>는 인간의 근원적인 악마성, 지독한 폭력을 그린다. 기존의 영화문법에 늘 도전장을 던졌던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자신이 겪었던 어둠에 관한 두려움에서 기안한 죽음에 대한 공포를 스크린에 완벽하게 불려왔다.

영화가 선사하는 불편함을 견딜 수 있다면?

아이를 잃은 부모는 고통스럽다. 태어난 것도, 살아간다는 것도 견디기 어렵다. 인간이란 존재를 부정하고 되돌리고 싶다. 영화는 생매장당한 남성의 이미지와 정신적으로 병든 여성이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장면을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극도의 공포를 느끼게 한다.

<안티크라이스트>는 분명 불쾌한 영화다. 아니 다수가 불쾌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영화다. 여성 혐오적인 관점을 드러내며 감독은 의도적으로 관객을 몸서리치게 만든다. 이는 라스 폰 트리에가 만든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그는 <오! 마이보스> <킹덤> 1, 2편(배우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3편은 만들어지지 못했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영화에서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관객이 고통을 느끼도록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가해행위 즉 폭력을 육체적으로 보여주면 된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모든 작품에 자기만의 영화적 인장을 새겼다. 잔혹한 폭력을 배제했다면, <안티크라이스트>는 전혀 다른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그는 아이를 잃은 부모가 왜 그런 행동까지 하게 되었는지 그 부분에 대한 해석은 관객의 몫을 남겨두었다.영화적 문법을 늘 파괴한 감독

고난과 희생은 라스 폰 트리에 영화의 일관된 주제였다. 인간 본성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하는 인물들을 그의 영화에서 우리는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자신을 세계적인 명감독으로 급부상시켰던 <범죄의 요소>(1984년) 이후 늘 새로운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그의 실험적 영상은 <전염병>(1987년)과 <유로파>(1991년)로 이어졌다. 영화 학교에서 배운 것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다닌 그는 1995년 일체의 인공조명이나 세트, 음악을 쓰지 않고 자연적 조건에만 의존해 영화를 촬영하는 도그마 선언을 발표해 충격을 주었다. 도그마 선언의 원칙에 따라 그가 만든 <백치들>(1998년)은 실제 배우들의 집단 섹스 장면을 담아 또 한 번 논란의 중심에 섰다.

2000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어둠속의 댄서>는 음악과 춤이 작품의 주제를 어떻게 담아 낼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음울한 뮤지컬 영화였다. 시력을 잃어가는 아들의 수술비를 구하기 위해 죽음까지 감수하는 모성애가 관객의 마음을 울렸다. 미국 사회의 이중성을 비판하는 <도그빌>(2003년)은 연극 무대의 형식을 빌려 이야기를 풀어갔다. 배우들이 6주 동안 연극무대 위에서 연기한 것을 가지고 영화를 만든 그의 시도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영화의 스토리와 전혀 상관없는 특정 장면을 만나는 것도 그의 영화에서는 예삿일이었다. 전혀 새롭지 않은 스토리도 그의 손을 거치면 강렬하게 변했다. 관객과 적극적인 대화를 시도하기 위해 폭력적인 소재를 끊임없이 불러온 그는 영화적 문법을 차용해 그것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용했다.

폭력의 묘사를 넘어서 영화 매체가 가진 가능성을 늘 실험했던 라스 폰 트리에가 만든 영화를 한 편이라도 본 사람은 인정하겠지만, 그의 영화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기존의 관습과 관행을 과감하게 탈피하기 때문이다.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작업방식을 선호하는 그는 이번 영화에서도 장르 파괴의 정점을 선보인다. 인물의 정적인 슬픔과 두려움 그리고 편집증을 강조하기 위해 그는 마치 스틸 컷을 보는 듯한 느낌으로 장면을 연출했다.

세상에 대한 냉소로 가득한 라스 폰 트리에는 비판도 많이 받는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 사이에는 분명히 넘을 수 없는 선이 있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에는 분명한 가치관이 있다. 어떠한 논리나 구조에도 집착하지 않고 이번 영화를 만든 라스 폰 트리에는 이미지를 직감에 따라 배치했다. 칸 영화제에서 공개된 이후 2년 만에 국내 개봉하게 된 <안티크라이스트>를 보게 된다면 그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지지를 하거나 비판을 할지는 전적으로 당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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