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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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3-05-16 출생ㅣ한국ㅣ꼬방동네 사람들 (1982) 데뷔
80년대 최고의 흥행감독 & 스타일리스트 배창호 감독은 90년대 작가주의 감독과는 달리 대중과의 접촉 면적이 넓었기 때문에 당시에 한국영화의 흐름을 주도하였다. 80년대 개연성이 없는 반전이나 지나친 극단적인 감정을 강조하던 당시의 신파적인 흐름을 극복한 감독이 바로 배창호 감독이었다. 특히 배창호 감독은 <황진이>에서 롱테이크를 한국영화사상 처음으로 시도하면서 자신만의 영화스타일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당시 ‘스타일리스트’라는 수식어를 받을 정도로 평론계에서 극찬을 받기도 했지만 정작 자신은 ‘영화소재에 따라 변하는 것이지 자신은 특별히 추구하는 스타일이 없다’라고 말한다. 그의 대표작들의 대부분dl 80년대에 만들어 졌다. 억압받는 시대적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영화인들은 비타협과 비합법을 오가며 영화를 만들었는데, 배창호감독의 작품 역시 이 범주안에 묶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직선적인 화법을 피하고 방황하는 청춘이나 빗나간 아메리칸 드림등을 통해 억압받는 현실을 바라보았다. 1953년 대구태생이지만 어렸을 때 서울로 이주, 서울교대 부속국민학교, 서울중학교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영화를 좋아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 부터 영화의 꿈을 키웠는데 77년 현대상사에 취직하여 이장호감독을 만나면서 꿈을 구체화 시켰다. 80년 이장호감독이 <바람불어 좋은 날>의 조감독으로 영화현장일을 익히기 시작하여 81년 <어둠의 자식들>에 이른다. 82년 <꼬방동네 사람들>을 시작으로 <적도의 꽃>,<고래사냥>,<그해 겨울은 따뜻했네>,<깊고 푸른밤>등 80년대 대표적인 작품들을 만들었다. 80년대 배창호감독의 작품은 작품성과 흥행성을 고루 갖추면서 한국영화는 재미없다는 인식을 깨고 대표적인 감독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하지만 배창호감독의 작품은 <황진이>를 분기점으로 내용이나 형식면에서 많은 변화를 겪는다. 90년대, 배창호 감독은 자신의 이름을 내건 프로덕션을 설립해 <젊은 남자>, <러브스토리>, <정>을 제작했다. <젊은남자>는 대기업 자본으로 <러브스토리>와 <정>은 독립영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배창호 감독은 자신의 내면에서 샘솟듯 솟는, ‘생활에서 체화된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긴 롱테이크와 미장센을 도입했던 그의 90년대 영화들은 그러나 관객과의 대화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또한, 어렵게 제작하고 개봉했던 <정>이 해외에서 주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영화계에선 그리 주목을 받지 못하게되는 위치임을 자각하면서 다시 한 번 제도권 틀 속으로 들어올 것에 대해 고민했다. 이후 2000년대 그는 액션 블록버스터 <흑수선>에 도전한다. <이력> 1977 현대 종합상사에 취직 1977 이장호 감독과의 만남 1980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날>의 조감독. 1981 <어둠의 자식들>의 조감독. 1981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에서 <정오의 Mr.Lee> 당선 <수상경력> 2000 이탈리아 우디네이 아시아영화제 최우수 관객상 <정> 2000 프랑스 베노데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최우수 관객상 <정> 1986 대종상 감독상 <깊고 푸는 밤> 1985 한국연극영화예술상 감독상 <깊고 푸른 밤> 1984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감독상 <적도의 꽃> 1984 영평상 감독상 <고래사냥> 1983 한국연극영화예술상 감독상 <꼬방동네사람들> 1983 대종상 감독상 <꼬방동네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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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05-16 출생한국꼬방동네 사람들 (1982) 데뷔
80년대 최고의 흥행감독 & 스타일리스트 배창호 감독은 90년대 작가주의 감독과는 달리 대중과의 접촉 면적이 넓었기 때문에 당시에 한국영화의 흐름을 주도하였다. 80년대 개연성이 없는 반전이나 지나친 극단적인 감정을 강조하던 당시의 신파적인 흐름을 극복한 감독이 바로 배창호 감독이었다. 특히 배창호 감독은 <황진이>에서 롱테이크를 한국영화사상 처음으로 시도하면서 자신만의 영화스타일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당시 ‘스타일리스트’라는 수식어를 받을 정도로 평론계에서 극찬을 받기도 했지만 정작 자신은 ‘영화소재에 따라 변하는 것이지 자신은 특별히 추구하는 스타일이 없다’라고 말한다. 그의 대표작들의 대부분dl 80년대에 만들어 졌다. 억압받는 시대적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영화인들은 비타협과 비합법을 오가며 영화를 만들었는데, 배창호감독의 작품 역시 이 범주안에 묶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직선적인 화법을 피하고 방황하는 청춘이나 빗나간 아메리칸 드림등을 통해 억압받는 현실을 바라보았다. 1953년 대구태생이지만 어렸을 때 서울로 이주, 서울교대 부속국민학교, 서울중학교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영화를 좋아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 부터 영화의 꿈을 키웠는데 77년 현대상사에 취직하여 이장호감독을 만나면서 꿈을 구체화 시켰다. 80년 이장호감독이 <바람불어 좋은 날>의 조감독으로 영화현장일을 익히기 시작하여 81년 <어둠의 자식들>에 이른다. 82년 <꼬방동네 사람들>을 시작으로 <적도의 꽃>,<고래사냥>,<그해 겨울은 따뜻했네>,<깊고 푸른밤>등 80년대 대표적인 작품들을 만들었다. 80년대 배창호감독의 작품은 작품성과 흥행성을 고루 갖추면서 한국영화는 재미없다는 인식을 깨고 대표적인 감독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하지만 배창호감독의 작품은 <황진이>를 분기점으로 내용이나 형식면에서 많은 변화를 겪는다. 90년대, 배창호 감독은 자신의 이름을 내건 프로덕션을 설립해 <젊은 남자>, <러브스토리>, <정>을 제작했다. <젊은남자>는 대기업 자본으로 <러브스토리>와 <정>은 독립영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배창호 감독은 자신의 내면에서 샘솟듯 솟는, ‘생활에서 체화된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긴 롱테이크와 미장센을 도입했던 그의 90년대 영화들은 그러나 관객과의 대화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또한, 어렵게 제작하고 개봉했던 <정>이 해외에서 주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영화계에선 그리 주목을 받지 못하게되는 위치임을 자각하면서 다시 한 번 제도권 틀 속으로 들어올 것에 대해 고민했다. 이후 2000년대 그는 액션 블록버스터 <흑수선>에 도전한다. <이력> 1977 현대 종합상사에 취직 1977 이장호 감독과의 만남 1980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날>의 조감독. 1981 <어둠의 자식들>의 조감독. 1981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에서 <정오의 Mr.Lee> 당선 <수상경력> 2000 이탈리아 우디네이 아시아영화제 최우수 관객상 <정> 2000 프랑스 베노데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최우수 관객상 <정> 1986 대종상 감독상 <깊고 푸는 밤> 1985 한국연극영화예술상 감독상 <깊고 푸른 밤> 1984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감독상 <적도의 꽃> 1984 영평상 감독상 <고래사냥> 1983 한국연극영화예술상 감독상 <꼬방동네사람들> 1983 대종상 감독상 <꼬방동네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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