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히치콕

Alfred Hitch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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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9-09-13 출생ㅣ영국 런던ㅣ프리주어 가든(1925) 데뷔
히치콕감독의 대표작은 단순히 그만의 대표작이 아니라, 할리우드영화의 대표작이자, 현대영화의 대표작이라 말할 수 있다. 1899년 영국 레이턴스톤(Leytonstone) 출생. 본명은 알프레드 조셉 히치콕(Alfred Joseph Hitchcock). 스릴러 영화를 일관해 만들어 이 장르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연출로 말미암아 서스펜스의 천재로 불린다. 그에겐 "스릴러의 최고 거장(The Greatest Director Of Thriller)", "서스펜스 영화의 대가(The Master Of Suspense)"라는 수식어가 항상 붙는다. 1922년부터 영화 감독일을 시작하여 1925년에 <프리주어 가든>이라는 장편영화로 첫 데뷔를 한 이래, 화면과 화면을 결합하는 편집 기교면에서 다른 사람이 흉내낼 수 없는 실험을 끊임없이 시도하면서 영국 무성영화의 시각적 어휘를 늘렸는데, 러시아의 몽타주 미학과 독일의 표현주의 미학을 절충한 청년 감독 히치콕의 실험 정신은 꽤 높은 평가를 받았다. 히치콕 최초의 유성영화이자 영국 최초의 유성영화였던 <협박>(1929) 이후 히치콕은 멜로드라마와 코미디, 뮤지컬을 오가며 다양한 장르를 찍었으며 34년부터 서스펜스 스릴러 장르에 집중해서 영화를 찍었다. 이때부터 원죄 의식, 성에 대한 강박감, 위협받는 무고한 개인 등의 주제를 서스펜스 스릴러 장르의 틀에서 추구하는 히치콕의 명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로렌스 올리비에와 조앤 폰테인이 출연한 1940년작 <레베카>(1940)로 히치콕은 할리우드에 무사히 입성했다. 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 <의심의 그림자>(43), <오명>(46), <올가미>(48), <이창>(54), <현기증>(58), <싸이코>(60), <새>(63) 등은 히치콕의 대표작일 뿐만 아니라 할리우드 영화의 대표작이고 현대 영화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히치콕은 제임스 스튜어트, 캐리 그랜트, 그레이스 켈리, 잉그리드 버그만, 티피 헤드렌 등 그의 영화와 더불어 기억되는 스타 배우들과 함께 영화사상 처음으로 극장 간판에 얼굴이 걸리는 스타급 감독으로 떠올랐다. 50년대 후반 이후 히치콕은 <현기증>, <사이코>, <새>로 이어지는 걸작을 발표하면서 감독으로서의 전성기를 맞았다. 특히 로빈 우드는 <현기증>이 "영화 역사상 가장 뛰어난 다섯편에 속하는 영화"이며 히치콕은 "현대의 셰익스피어"라고 극찬했다. 마지막 작품 <가족 음모>(1975) 이후 은둔 상태에 있던 히치콕은 78년 이후에 공식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74년 링컨센터 필름소사이어티가 주최한 히치콕을 위한 파티에서 건강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 히치콕은 미리 준비한 답사 장면을 필름으로 보내왔다. 그것은 곧 공식석상에서 히치콕이 남긴 마지막 인사가 됐다. 알프레드 히치콕은 1980년 4월 28일 LA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수상경력 제29회(1972) 골든 글로브 시상식 미스 골든 글로브 제20회(1968) 미국 감독 조합상 공로상 제40회(1968)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어빙 탤버그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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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09-13 출생영국 런던프리주어 가든(1925) 데뷔
히치콕감독의 대표작은 단순히 그만의 대표작이 아니라, 할리우드영화의 대표작이자, 현대영화의 대표작이라 말할 수 있다. 1899년 영국 레이턴스톤(Leytonstone) 출생. 본명은 알프레드 조셉 히치콕(Alfred Joseph Hitchcock). 스릴러 영화를 일관해 만들어 이 장르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연출로 말미암아 서스펜스의 천재로 불린다. 그에겐 "스릴러의 최고 거장(The Greatest Director Of Thriller)", "서스펜스 영화의 대가(The Master Of Suspense)"라는 수식어가 항상 붙는다. 1922년부터 영화 감독일을 시작하여 1925년에 <프리주어 가든>이라는 장편영화로 첫 데뷔를 한 이래, 화면과 화면을 결합하는 편집 기교면에서 다른 사람이 흉내낼 수 없는 실험을 끊임없이 시도하면서 영국 무성영화의 시각적 어휘를 늘렸는데, 러시아의 몽타주 미학과 독일의 표현주의 미학을 절충한 청년 감독 히치콕의 실험 정신은 꽤 높은 평가를 받았다. 히치콕 최초의 유성영화이자 영국 최초의 유성영화였던 <협박>(1929) 이후 히치콕은 멜로드라마와 코미디, 뮤지컬을 오가며 다양한 장르를 찍었으며 34년부터 서스펜스 스릴러 장르에 집중해서 영화를 찍었다. 이때부터 원죄 의식, 성에 대한 강박감, 위협받는 무고한 개인 등의 주제를 서스펜스 스릴러 장르의 틀에서 추구하는 히치콕의 명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로렌스 올리비에와 조앤 폰테인이 출연한 1940년작 <레베카>(1940)로 히치콕은 할리우드에 무사히 입성했다. 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 <의심의 그림자>(43), <오명>(46), <올가미>(48), <이창>(54), <현기증>(58), <싸이코>(60), <새>(63) 등은 히치콕의 대표작일 뿐만 아니라 할리우드 영화의 대표작이고 현대 영화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히치콕은 제임스 스튜어트, 캐리 그랜트, 그레이스 켈리, 잉그리드 버그만, 티피 헤드렌 등 그의 영화와 더불어 기억되는 스타 배우들과 함께 영화사상 처음으로 극장 간판에 얼굴이 걸리는 스타급 감독으로 떠올랐다. 50년대 후반 이후 히치콕은 <현기증>, <사이코>, <새>로 이어지는 걸작을 발표하면서 감독으로서의 전성기를 맞았다. 특히 로빈 우드는 <현기증>이 "영화 역사상 가장 뛰어난 다섯편에 속하는 영화"이며 히치콕은 "현대의 셰익스피어"라고 극찬했다. 마지막 작품 <가족 음모>(1975) 이후 은둔 상태에 있던 히치콕은 78년 이후에 공식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74년 링컨센터 필름소사이어티가 주최한 히치콕을 위한 파티에서 건강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 히치콕은 미리 준비한 답사 장면을 필름으로 보내왔다. 그것은 곧 공식석상에서 히치콕이 남긴 마지막 인사가 됐다. 알프레드 히치콕은 1980년 4월 28일 LA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수상경력 제29회(1972) 골든 글로브 시상식 미스 골든 글로브 제20회(1968) 미국 감독 조합상 공로상 제40회(1968)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어빙 탤버그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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