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오 마사유키

Suo Masayu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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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6-10-29 출생ㅣ일본ㅣ변태가족, 형의 신부 (1984) 데뷔
1965년 도쿄 출생. 릿쿄대학 문학부 불문과 졸업. 1989년, <팬시 댄스>로 감독 데뷔, 이후 <으랏차차 스모부>로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작품상 등 수많은 상을 휩쓸었다. 1996년 야쿠쇼 코지, 쿠사카리 타미요 주연의 <쉘 위 댄스>를 감독, 사교댄스 붐을 일으켰으며, 제 20회 일본 아카데미상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더불어 13개 부문에서 수상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쉘 위 댄스>의 전세계적 흥행과 함께, 2005년에는 리처드 기어 주연의 리메이크 영화가 미국에서 개봉되어 해외에서도 주목 받게 되었다. 2007년, 10년 간의 침묵을 깨고 카세 료 주연의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를 선보인다. 치한 재판이라는 센세이션한 소재로 화제를 모았으며, 키네마준보상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 주요 부문 모두를 석권했다.

-<댄싱 채플린> 보도자료 중에서-

수오 마사유키(周防正行)는 핑크 영화로 출발, 일본 국민감독의 위치까지 오른 작가성과 상업성을 고른 감독이다. 오스 야스지로의 작품에 매료되어 영화계에 뛰어든 그는 릿교대학 문학부 불문과 4학년 때 다카하시 한메이 감독을 만나 5년간 30여편에 가까운 핑크영화 조감독으로 현장경험을 쌓았다. 1982년 `유니트 5`란 조직을 결성해 극작가 겸 감독으로 독자적인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84년 <변태 가족·형의 신부>의 각본으로 감독데뷔했다. 오스 야스지로감독의 영화를 그래도 재현한 듯한 카메라 기법과 장면구도, 오즈의 대사가 메아리로 남아있는 각본 구성으로 유명한 이 작품은 핑크영화라는 장르와 완고한 오즈의 영화라는 극히 판이한 두가지를 하나의 틀 안에 조화롭게 융화시켜 그 해 아사히신문이 뽑은 일본 영화 베스트5에 오르며, 핑크영화의 고전이 되었다. 1987년 이타미 주조 감독으로부터 <미루사의여자>의 메이킹 비디오인<미루사의 여자를 마루사하다>의 연출을 의뢰받으면서 핑크영화라는 소규모 제작에서 경험하지 못한 일본 메이저 영화의 환경을 익히게 되고, 또 이타미 감독으로부터 영화의 재미에 대한 테크닉들을 배우게 된다. 1989년 첫 35미리 극장용 장편 영화 <팬시 댄스>의 각본, 감독을 거쳐 1992년 그의 출세작이라 할 수 있는 <으랏차차 스모부>의 각본, 각본을 맡아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다. 이영화는 키네마 준뽀의 베스트 원,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등 영화상도 받아 평단으로도 인정을 받게 된다. 1993년에는 영화기획 제작사인 `알타미라 픽쳐스`를 설립해 1996년 알타미라 픽쳐스의 극장용 영화 제 1회 작품인 <셀 위 댄스>를 만들어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 등 해외에서도 작품성과 오락성을 모두 인정 받았다. 이 작품이후 작품활동이 뜸한데 아소무라 이츠미치의 <열심히 합시다>(1998)를 프로듀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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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10-29 출생일본변태가족, 형의 신부 (1984) 데뷔
1965년 도쿄 출생. 릿쿄대학 문학부 불문과 졸업. 1989년, <팬시 댄스>로 감독 데뷔, 이후 <으랏차차 스모부>로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작품상 등 수많은 상을 휩쓸었다. 1996년 야쿠쇼 코지, 쿠사카리 타미요 주연의 <쉘 위 댄스>를 감독, 사교댄스 붐을 일으켰으며, 제 20회 일본 아카데미상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더불어 13개 부문에서 수상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쉘 위 댄스>의 전세계적 흥행과 함께, 2005년에는 리처드 기어 주연의 리메이크 영화가 미국에서 개봉되어 해외에서도 주목 받게 되었다. 2007년, 10년 간의 침묵을 깨고 카세 료 주연의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를 선보인다. 치한 재판이라는 센세이션한 소재로 화제를 모았으며, 키네마준보상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 주요 부문 모두를 석권했다.

-<댄싱 채플린> 보도자료 중에서-

수오 마사유키(周防正行)는 핑크 영화로 출발, 일본 국민감독의 위치까지 오른 작가성과 상업성을 고른 감독이다. 오스 야스지로의 작품에 매료되어 영화계에 뛰어든 그는 릿교대학 문학부 불문과 4학년 때 다카하시 한메이 감독을 만나 5년간 30여편에 가까운 핑크영화 조감독으로 현장경험을 쌓았다. 1982년 `유니트 5`란 조직을 결성해 극작가 겸 감독으로 독자적인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84년 <변태 가족·형의 신부>의 각본으로 감독데뷔했다. 오스 야스지로감독의 영화를 그래도 재현한 듯한 카메라 기법과 장면구도, 오즈의 대사가 메아리로 남아있는 각본 구성으로 유명한 이 작품은 핑크영화라는 장르와 완고한 오즈의 영화라는 극히 판이한 두가지를 하나의 틀 안에 조화롭게 융화시켜 그 해 아사히신문이 뽑은 일본 영화 베스트5에 오르며, 핑크영화의 고전이 되었다. 1987년 이타미 주조 감독으로부터 <미루사의여자>의 메이킹 비디오인<미루사의 여자를 마루사하다>의 연출을 의뢰받으면서 핑크영화라는 소규모 제작에서 경험하지 못한 일본 메이저 영화의 환경을 익히게 되고, 또 이타미 감독으로부터 영화의 재미에 대한 테크닉들을 배우게 된다. 1989년 첫 35미리 극장용 장편 영화 <팬시 댄스>의 각본, 감독을 거쳐 1992년 그의 출세작이라 할 수 있는 <으랏차차 스모부>의 각본, 각본을 맡아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다. 이영화는 키네마 준뽀의 베스트 원,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등 영화상도 받아 평단으로도 인정을 받게 된다. 1993년에는 영화기획 제작사인 `알타미라 픽쳐스`를 설립해 1996년 알타미라 픽쳐스의 극장용 영화 제 1회 작품인 <셀 위 댄스>를 만들어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 등 해외에서도 작품성과 오락성을 모두 인정 받았다. 이 작품이후 작품활동이 뜸한데 아소무라 이츠미치의 <열심히 합시다>(1998)를 프로듀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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