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해론

MARY HARR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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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나다
캐나다의 유명한 배우이자 코미디언 돈 해론의 딸인 메리 해론은 영국 옥스포드 대학을 졸업하고, 한동안 록 저널리스트로 활동하였다. 그녀는 <펑크> <더 가디언> <디 옵저버>등의 잡지에 "섹스 피스톨" "벨벳 언더그라운드" 등 전설적인 록 밴드의 일대기나 인터뷰 기사, 음악비평 등을 기고했는데, 그 당시 <멜로디 메이커>지에 팝 아트의 기수 "앤디 워홀"의 일대기를 쓴 것이 나중에 <나는 앤디 워홀을 쐈다(1996)>의 영화작업으로 이어져, 그녀에게 감독으로서의 명성을 안겨 주었다. 영국 BBC와 채널 4 등의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 및 다수의 단편 영화를 제작하며 영화경력을 쌓은 메리 해론의 첫 감독작품 <나는 앤디 워홀을 쐈다(1996)>는 비평가들의 대단한 호평을 얻었고, 96년 깐느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선정되었다. 주연을 맡았던 릴리 테일러는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그녀가 두 번 째 작품으로 선택한 것은 바로 지난 10년간 가장 뜨거운 논쟁의 불길에 휘말린 브렛 이스턴 엘리스의 베스트셀러 소설 <아메리칸 사이코>였다.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여성 감독 메리 해론이 피에 굶주린 잔혹 소설을 ''남자의 허영''에 관한 영화로 멋지게 탈바꿈시켰다고 평한다. "남성 감독이었다면 <아메리칸 사이코>의 히어로인 패트릭 베이트만을 단순히 정신이상 연쇄살인범 정도로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메리 해론은 그를 남성 우월주의와 본능적 충동의 희생양으로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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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캐나다의 유명한 배우이자 코미디언 돈 해론의 딸인 메리 해론은 영국 옥스포드 대학을 졸업하고, 한동안 록 저널리스트로 활동하였다. 그녀는 <펑크> <더 가디언> <디 옵저버>등의 잡지에 "섹스 피스톨" "벨벳 언더그라운드" 등 전설적인 록 밴드의 일대기나 인터뷰 기사, 음악비평 등을 기고했는데, 그 당시 <멜로디 메이커>지에 팝 아트의 기수 "앤디 워홀"의 일대기를 쓴 것이 나중에 <나는 앤디 워홀을 쐈다(1996)>의 영화작업으로 이어져, 그녀에게 감독으로서의 명성을 안겨 주었다. 영국 BBC와 채널 4 등의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 및 다수의 단편 영화를 제작하며 영화경력을 쌓은 메리 해론의 첫 감독작품 <나는 앤디 워홀을 쐈다(1996)>는 비평가들의 대단한 호평을 얻었고, 96년 깐느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선정되었다. 주연을 맡았던 릴리 테일러는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그녀가 두 번 째 작품으로 선택한 것은 바로 지난 10년간 가장 뜨거운 논쟁의 불길에 휘말린 브렛 이스턴 엘리스의 베스트셀러 소설 <아메리칸 사이코>였다.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여성 감독 메리 해론이 피에 굶주린 잔혹 소설을 ''남자의 허영''에 관한 영화로 멋지게 탈바꿈시켰다고 평한다. "남성 감독이었다면 <아메리칸 사이코>의 히어로인 패트릭 베이트만을 단순히 정신이상 연쇄살인범 정도로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메리 해론은 그를 남성 우월주의와 본능적 충동의 희생양으로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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