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말

Louis Malle 

8,751관객 동원
 1932-10-30 출생ㅣ프랑스ㅣCrazeologie (1953,단편) 데뷔
루이 말은 1932년 프랑스의 부유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IDHEC’(프랑스 국립 영화학교)에서 영화를 공부하기 이전에는 소르본느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였다. 말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자 아카데미에서 최고의 다큐멘터리로 선정된 <조용한 세계>(Le Monde du silence, 1956)를 자크 쿠스토와 함께 공동으로 연출하여 주목 받았다. 그리고 로베르 브레송의 <사형수 탈출하다>(Un Condamne A Mort S''est Echappe, 1956)의 조감독을 거쳐 자신의 첫 장편인 <사형대의 엘리베이터>(Ascenseur Pour L''echafaud, 1957)로 일약 세계적인 스타 감독이 되었다.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는 영화 음악으로 마일스 데이비스의 재즈를 사용하였는데 당시 영화 음악으로 재즈가 사용된 예가 없었기에 큰 화제가 됐었다. 또한 ‘코메디 프랑세즈’의 헤로인이었던 잔느 모로를 전격 주연으로 발탁, 이후 누벨 바그의 주역으로 성장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말이 이 작품으로 흥행과 작품성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나이가 24세였다. 역시 잔느 모로의 주연으로 완성된 말의 <연인들>(Les Amants, 1958)은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는 등 평단의 찬사를 받았지만 사회적으로는 큰 파장을 몰고 왔다. 불륜을 주제로 한 이 영화는 미국 등 몇몇 국가에서는 외설로 판정 받아 상영이 금지되기도 했었다. 루이 말은 종종 누벨 바그와 잘못 연결이 되기도 했다. 그의 작업은 엄밀하게 말하면 트뤼포, 샤브롤, 로메르 등의 누벨바그 기수들의 연출 스타일과는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지는 않을뿐더러 ‘까이에 뒤 시네마’와도 직접적인 연결이 없기에 누벨바그의 군단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일부 작품이 누벨 바그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트뤼포는 그의 영화 <지하철의 소녀>(Zazie dans le métro, 1963)를 보고 큰 영감을 받아 말에게 열정적인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말은 주로 사회의 도덕과 금기를 넘어서는 주제와 새롭게 시도되는 연출 스타일로 사회에 큰 충격을 던지는 감독이었다. <도깨비 불>(Le Feu follet, 1963)은 우울증에 빠진 남자의 짧은 외출과 자살의 과정을 그렸고, <마음의 속삭임>(Le Souffle Au Coeur, 1971)은 엄마와 아들의 근친상간을 소재로 하였으며 <라콤 루시앙>(Lacombe Lucien , 1974)은 2차 세계대전 중의 프랑스 비시 정부 하의 나치 정권의 몰락을 담아 냈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는 등 다양한 상을 휩쓸었다. 1978년에는 브룩 쉴즈가 주연한 <프리티 베이비>에서 10대의 성 매매춘을 다뤘고 92년작 <데미지>에서도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한 여성의 파격적인 사랑을 연출하여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그리고 <굿바이 칠드런>(Au revoir Les enfants, 1987)으로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과 세자르 상을 석권하며 그의 작품세계가 건재함을 세계에 드러냈다. 프랑스와 미국에서 불어와 영어 모두를 사용하여 영화를 연출한 루이 말은 사실적인 심리 묘사와 짜임새 있는 드라마 구조를 세우는 작품 경향을 보여 헐리우드 연출 기법에 가까웠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그의 카메라가 집중하는 곳은 부조리한 사회, 그리고 그 안에 뒤엉켜 있는 인간과 그들의 꿈틀거리는 욕망이었다. 1995년 사망까지 19편의 장편을 만들었으며 이외 단편과 다양한 다큐멘터리로 약 3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더보기
1932-10-30 출생프랑스Crazeologie (1953,단편) 데뷔
루이 말은 1932년 프랑스의 부유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IDHEC’(프랑스 국립 영화학교)에서 영화를 공부하기 이전에는 소르본느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였다. 말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자 아카데미에서 최고의 다큐멘터리로 선정된 <조용한 세계>(Le Monde du silence, 1956)를 자크 쿠스토와 함께 공동으로 연출하여 주목 받았다. 그리고 로베르 브레송의 <사형수 탈출하다>(Un Condamne A Mort S''est Echappe, 1956)의 조감독을 거쳐 자신의 첫 장편인 <사형대의 엘리베이터>(Ascenseur Pour L''echafaud, 1957)로 일약 세계적인 스타 감독이 되었다.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는 영화 음악으로 마일스 데이비스의 재즈를 사용하였는데 당시 영화 음악으로 재즈가 사용된 예가 없었기에 큰 화제가 됐었다. 또한 ‘코메디 프랑세즈’의 헤로인이었던 잔느 모로를 전격 주연으로 발탁, 이후 누벨 바그의 주역으로 성장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말이 이 작품으로 흥행과 작품성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나이가 24세였다. 역시 잔느 모로의 주연으로 완성된 말의 <연인들>(Les Amants, 1958)은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는 등 평단의 찬사를 받았지만 사회적으로는 큰 파장을 몰고 왔다. 불륜을 주제로 한 이 영화는 미국 등 몇몇 국가에서는 외설로 판정 받아 상영이 금지되기도 했었다. 루이 말은 종종 누벨 바그와 잘못 연결이 되기도 했다. 그의 작업은 엄밀하게 말하면 트뤼포, 샤브롤, 로메르 등의 누벨바그 기수들의 연출 스타일과는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지는 않을뿐더러 ‘까이에 뒤 시네마’와도 직접적인 연결이 없기에 누벨바그의 군단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일부 작품이 누벨 바그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트뤼포는 그의 영화 <지하철의 소녀>(Zazie dans le métro, 1963)를 보고 큰 영감을 받아 말에게 열정적인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말은 주로 사회의 도덕과 금기를 넘어서는 주제와 새롭게 시도되는 연출 스타일로 사회에 큰 충격을 던지는 감독이었다. <도깨비 불>(Le Feu follet, 1963)은 우울증에 빠진 남자의 짧은 외출과 자살의 과정을 그렸고, <마음의 속삭임>(Le Souffle Au Coeur, 1971)은 엄마와 아들의 근친상간을 소재로 하였으며 <라콤 루시앙>(Lacombe Lucien , 1974)은 2차 세계대전 중의 프랑스 비시 정부 하의 나치 정권의 몰락을 담아 냈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는 등 다양한 상을 휩쓸었다. 1978년에는 브룩 쉴즈가 주연한 <프리티 베이비>에서 10대의 성 매매춘을 다뤘고 92년작 <데미지>에서도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한 여성의 파격적인 사랑을 연출하여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그리고 <굿바이 칠드런>(Au revoir Les enfants, 1987)으로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과 세자르 상을 석권하며 그의 작품세계가 건재함을 세계에 드러냈다. 프랑스와 미국에서 불어와 영어 모두를 사용하여 영화를 연출한 루이 말은 사실적인 심리 묘사와 짜임새 있는 드라마 구조를 세우는 작품 경향을 보여 헐리우드 연출 기법에 가까웠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그의 카메라가 집중하는 곳은 부조리한 사회, 그리고 그 안에 뒤엉켜 있는 인간과 그들의 꿈틀거리는 욕망이었다. 1995년 사망까지 19편의 장편을 만들었으며 이외 단편과 다양한 다큐멘터리로 약 3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더보기
사업자등록번호 211-88-91225 l 통신판매업 신고번호 제2016-서울강남-02630호 l 대표이사 정이은
㈜맥스무비 l 06099 서울시 강남구 선릉로 125길 8, 301호(논현동, 유진빌딩)
인터넷신문등록번호 서울 아 02730 | 등록일자 2013년 7월 11일 | 제호 맥스무비 닷컴 | 발행인 : 정이은ㅣ편집인 : 이은지

Copyright ⓒ Asiatribune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