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07-30 출생ㅣ한국ㅣ청춘극장 (1967) 데뷔1966년 당시 경이로운 1200:1의 경쟁률을 뚫고 신인배우 오디션에 합격하며 화려하게 등장한 배우. 1944년 7월 30일 태어난 윤정희의 본명은 손미자, 전 조선대 교수였던 손창기씨의 4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그녀는 1967년 강대진 감독의 <청춘극장>으로 그해 대종상 신인 여우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영화계에 데뷔했다. 이후 총 30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50여개의 크고 작은 영화상을 수상하면서, 1960년대에서 1970년대의 전성기 시절 남정임, 문희와 함께 트로이키 시대의 한 축을 이루며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여배우였다.
그녀는 정숙하며, 세련된 이미지로 당대에 최고의 인기를 누린 여배우였으며, 또한 중앙대 연극영화과에서 "한국여배우론"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결혼한 후, 함께 프랑스로 가서는 파리3대학 영화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졸업하는 등 남달리 공부에도 애착을 가진 여배우였다.
윤정희는 그녀의 나이 50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유권 원작의 <이역의 산장>(1960년 현대문학상 수상작)을 영화화한 <만무방>(1994)에서는 이데올로기보다 인간성의 중요성을 다룬 혼신의 연기로 그해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나이를 먹어서도 변하지 않은 연기에 대한 열정과 오히려 세월의 두께만큼이나 더욱 성숙된 연기로 대중에게 다가섰던 것이다.
남편과 딸의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던 윤정희는 1994년 <만무방> 이후 15년 만에 이창동 감독의 <시>를 통해 컴백했다. 그녀는 이 영화를 통해 간병인으로 일하며 홀로 남겨진 손자를 키우고 문화원의 시작 강의를 들으며 어린 시절부터 꿈이던 시 쓰기에 도전하는 생활력 강하지만 소녀의 순수함을 간직한 미자 역을 맡았다.
수상내역
2010 제31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시>
2010 제47회 대종상 영화제 여우주연상 <시>
1994 제32회 대종상 영화제 여우주연상 <만무방>
1975 제11회 백상예술대상 인기상
1974 제10회 백상예술대상 인기상
1973 제10회 청룡영화상 인기여우상
1973 제9회 백상예술대상 여자최우수연기상_영화 <석화촌>
1973 제9회 백상예술대상 인기상
1973 제10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효녀 심청>
1972 제8회 백상예술대상 인기상
1972 제9회 청룡영화상 인기여우상
1972 제9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석화촌>
1971 제8회 청룡영화상 인기여우상
1971 제10회 대종상 영화제 여우주연상 <분례기>
1971 제7회 백상예술대상 여자최우수연기상_영화 <해변의 정사>
1971 제7회 백상예술대상 인기상
1970 제7회 청룡영화상 인기여우상
1970 제6회 백상예술대상 여자최우수연기상_영화 <독짓는 늙은이>
1970 제6회 백상예술대상 인기상
1969 제6회 청룡영화상 인기여우상
1968 제4회 백상예술대상 신인상_영화 <안개>
1967 제5회 청룡영화상 인기여우상
1967 제6회 대종상 영화제 신인상 <청춘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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