팸 그리어

Pam Grier 

53,991관객 동원
 1949-05-26 출생ㅣ미국ㅣBeyond the Valley of the Dolls (1970) 데뷔
1949년 5월 26일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 윈스턴 살렘에서 태어난 팜 그리어는 오랜 세월 흑인여배우로서 당당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켜왔다. 아버지가 공군소속 기술자였던지라 여러 나라를 떠돌면서 군인가족들이 모여 1사는 곳에서 자랐다. 철이 들 무렵 덴버에 가족이 정착했고, 열여덟살에 미스 콜로라도로 뽑혀 야외행진에 참가했다. 헐리우드 관계자의 눈에 띄어 배우가 되기 위해 LA로 떠난다. 처음에는 로저 코먼이 만든 제작사에서 전화교환수로 일하던 중 코먼의 도움으로 < Beyond the Valley of the Dolls>(1970)으로 영화계에 데뷔하게 된다. 이후 몇 년간 싸구려 영화들에 출연하면서 별다른 작품없이 시들어가고 있었다. 그녀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작품은 < Coffy>(1973)이다. 여동생을 위해 마약밀매업자들을 상대로 복수를 하는 강한 캐릭터로 흑인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는다. 이후 흑인관객들을 위한 영화에 주로 출연했으며 < Foxy Brown>(1974)에서와 같이 독립적이고 진지한 흑인여성의 이미지는 인종차별과 여성차별에 반대하는 세력으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리어는 곧잘 남성관객들을 위한 섹스심벌이 되길 주저하지 않았다. 잡지 플레이어스에 누드로 나오기도 했다. < Greased Lightning>(1977)에 출연이후 4년간 공백기를 가진 그리어는 < Fort Apache, The Bronx>(1981)로 돌아오지만 후속작없이 TV쪽으로 출연하면서 몇 년을 흘려보낸다. 액션영화 < Above the Law>(1988)에서 옛동료들과 함께 다시 호흡을 맞추면서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컴백한 그리어는 꾸준히 활동을 펼쳤다. 그리어를 세계에 알린 것은 쿠엔틴 타란티노가 그녀에게 헌정한 작품인 <재키 브라운>(1997)이다. <펄프픽션>(1994)의 오디션에 참가했었지만 역할이 로산나 아퀘트에게 돌아가자 타란티노는 후일 그녀에게 꼭 배역을 맡길 것이라는 약속을 했고, 결국 주연으로 캐스팅했다. 그리어는 새로운 열정으로 제 2의 연기인생을 시작했고, <노 투모로우>(1998), < Jawbreaker>(1999), 제인 캠피온의 <홀리 스모크>(1999)등에 출연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언니가 암으로 사망했고, 그 아들도 자살하는 등 집안에 우환이 끊이질 않았다. 그리어도 1988년 암판정을 받고 18개월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얘길 들었었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건강을 되찾았지만 그 때 이후 그녀는 새로운 눈으로 인생을 바라보게 되었고 예전보다 더욱 활기차게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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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05-26 출생미국Beyond the Valley of the Dolls (1970) 데뷔
1949년 5월 26일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 윈스턴 살렘에서 태어난 팜 그리어는 오랜 세월 흑인여배우로서 당당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켜왔다. 아버지가 공군소속 기술자였던지라 여러 나라를 떠돌면서 군인가족들이 모여 1사는 곳에서 자랐다. 철이 들 무렵 덴버에 가족이 정착했고, 열여덟살에 미스 콜로라도로 뽑혀 야외행진에 참가했다. 헐리우드 관계자의 눈에 띄어 배우가 되기 위해 LA로 떠난다. 처음에는 로저 코먼이 만든 제작사에서 전화교환수로 일하던 중 코먼의 도움으로 < Beyond the Valley of the Dolls>(1970)으로 영화계에 데뷔하게 된다. 이후 몇 년간 싸구려 영화들에 출연하면서 별다른 작품없이 시들어가고 있었다. 그녀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작품은 < Coffy>(1973)이다. 여동생을 위해 마약밀매업자들을 상대로 복수를 하는 강한 캐릭터로 흑인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는다. 이후 흑인관객들을 위한 영화에 주로 출연했으며 < Foxy Brown>(1974)에서와 같이 독립적이고 진지한 흑인여성의 이미지는 인종차별과 여성차별에 반대하는 세력으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리어는 곧잘 남성관객들을 위한 섹스심벌이 되길 주저하지 않았다. 잡지 플레이어스에 누드로 나오기도 했다. < Greased Lightning>(1977)에 출연이후 4년간 공백기를 가진 그리어는 < Fort Apache, The Bronx>(1981)로 돌아오지만 후속작없이 TV쪽으로 출연하면서 몇 년을 흘려보낸다. 액션영화 < Above the Law>(1988)에서 옛동료들과 함께 다시 호흡을 맞추면서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컴백한 그리어는 꾸준히 활동을 펼쳤다. 그리어를 세계에 알린 것은 쿠엔틴 타란티노가 그녀에게 헌정한 작품인 <재키 브라운>(1997)이다. <펄프픽션>(1994)의 오디션에 참가했었지만 역할이 로산나 아퀘트에게 돌아가자 타란티노는 후일 그녀에게 꼭 배역을 맡길 것이라는 약속을 했고, 결국 주연으로 캐스팅했다. 그리어는 새로운 열정으로 제 2의 연기인생을 시작했고, <노 투모로우>(1998), < Jawbreaker>(1999), 제인 캠피온의 <홀리 스모크>(1999)등에 출연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언니가 암으로 사망했고, 그 아들도 자살하는 등 집안에 우환이 끊이질 않았다. 그리어도 1988년 암판정을 받고 18개월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얘길 들었었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건강을 되찾았지만 그 때 이후 그녀는 새로운 눈으로 인생을 바라보게 되었고 예전보다 더욱 활기차게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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