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06-03 출생 1925년 6월 3일 미국 뉴욕 브롱크스에서 태어난 토니 커티스의 본명은 버나드 슈바르츠(Bernard Schwartz)이다.
헝가리에서 이주해온 커티스의 아버지는 재단사로 일하면서 가족들을 먹여살렸다. 브롱크스의 뒷골목에서 열한살때까지 악명높은 갱단의 뒤를 쫓아다녔던 커티스는 2차대전에 해군으로 괌전투에 참가하여 부상을 입고 제대했다.
뉴욕으로 돌아와 배우가 되기 위해 극단의 순회공연을 쫓아다니기도 했다. 유니버설과 7년간의 계약을 맺은 후 <크리스 크로스: Criss Cross>(1948)로 데뷔하게 된다. <캔사스 라이더스: Kansas Raiders>(1950)에서도 그는 조연이었지만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도둑인 왕자: The Prince Who Was a Thief>(1951)에 파이퍼 로리와 출연해 인기절정을 누렸지만 그는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커티스는 제작사 유니버설의 정책에 따라서 철저하게 전형적인 캐릭터들에 머무름으로써 진정한 연기자로 인정받을만한 역을 맡지 못했다. 유나이티드 아티스츠측의 영화 <그네: Trapeze>(1956)에서 버트 랭카스터와 호흡을 맞춘 그는 깊이있는 연기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유니버설은 여전히 그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하고 싸구려영화들에 출연시켰다. <성공의 달콤한 향기: The Sweet Smell of Success>(1957)로 다시 한번 버트 랭카스터와 공연한 커티스는 비평계로부터 호평을 끌어냈고, 박갈채를 받은 사회참여적 드라마 <도전적인 사람들: The Defiant Ones>(1958)에서 시드니 포이티에와 열연해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었다.
연이어 흥행작에 출연한 토니 커티스는 <야성과 아름다움: Wild and Wonderful>(1964)을 마지막으로 유니버설을 떠나 <위대한 레이스: The Great Race>와 같은 코미디물에 주력했지만 하강곡선을 그렸다.
TV영화 <왼편에 있는 세 소녀: The Third Girl on the Left>(1973) 이후 영화계 은퇴를 선언했었지만 <레피크: Lepke>(1975)로 컴백했다.
소설 "Kid Cody and Julie Sparrow"를 발표해 작가라는 호칭도 얻었다.
첫 번째 아내 자넷 리(Janet Leigh)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제이미 리 커티스가 영화배우로 활약중이다. 두 번째 아내 크리스틴 카우프만과는 얼마 못갔고, 레슬리 앨런(Leslie Allen)과는 15년정도 함께 살면서 아들 둘을 두었다. 리사 두취(Lisa Deutsch)와 일년도 못가 헤어졌고, 45년 연하의 질 반덴버그(Jill Vandenberg)와 1998년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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