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10-17 출생ㅣ미국에드워드 몽고메리 클리프트는 1920년 미국 네브라스카 출생이며, 헐리우드 50,60년대 대표적인 남자 배우로서 혈기왕성하고 핸섬하지만 약간은 냉소적인 스타일로 인기를 누렸었다. 13세가 되던 해에 <플라이 어웨이 홈: Fly Away Home>으로 브로드웨이에 데뷔한 후, 10년이 넘게 뉴욕 극단 소속으로 연기 경험을 쌓았다. 헐리우드로 간 몽티는 데뷔작인 <붉은 강: Red River>(1948) 이후의 작품들 <젊은이의 양지: A Place in the Sun>(1951), <지상에서 영원으로: From Here to Eternity>(1953), <뉘른버그의 재판: Judgment at Nuremberg>(1961)등으로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 되는 등 배우로서의 인정을 받으며 순탄한 연기생활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선천적인 약골에 알콜 중독, 동성연애적인 성향 등이 그를 가쉽거리로 몰아넣곤 하였다. <레인트리 카운티: Raintree County>(1957)의 촬영이 한창이던 1956년에는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연 파티에서 술에 취해 차를 몰고 나가다가 나무에 추돌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목에 박힌 이빨 두 개를 테일러가 직접 빼내어 그의 목숨을 구해줬다고 한다. 사고후 클리프트는 망가진 얼굴을 수술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정신과 진료에 매우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야 했다. 1962년에는 절친한 사이인 존 휴스톤 감독의 <프레우드: Freud>에 출연하지만 영화가 엉망으로 실패하자, 유니버셜 측에서는 모든 원인이 클리프트의 방탕한 생활에 있다고 주장하며, 70만달러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걸어왔다. 다행히 소송은 잘 해결되었지만 이 일을 계기로 몽티의 건강을 극도로 악화되었고 그후 꼬박 몇 년간을 쉬어야 했다.
뉴욕으로 돌아와 자중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던 1966년엔 < Lautlose Waffen>의 주인공역으로 열연을 하였지만, 1966년 7월의 어느날, 자신의 침실에서 심장의 멎은 채 발견되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추천으로 < Reflections of a Golden Eye>이란 작품의 출연이 결정된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난 갑작스런 죽음이었다. 그가 젊은 시절에 좀더 성실한 생활을 했었더라면 45세라는 아까운 나이의 대배우를 잃지는 않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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