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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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01-17 출생
이영하는 1950년 1월 17일생으로 연기와 인연을 맺은 사연은 좀 특이하다. 그는 1969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동안 그룹사운드에서 기타를 치며 미8군 무대를 돌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울며 대학 다니는 아들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는 바람에 서라벌예술대학 음대를 지원하러 갔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영화과 이웅우 교수가 그에게 연기를 해보라고 했고 덕분에 연극과에 들어가게 됐다.
1977년 국립극장에서 했던 연극 <그날 밤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를 보러 온 유현목 감독이 영화 <문>에 캐스팅하면서 그는 영화배우가 됐고 같은 해 출연한 KBS 드라마 <행복의 문>이 폭발적 인기를 끌면서 스타의 대열에 올랐다.

사실 사람들은 아직도 그를 멜로영화의 주인공으로 기억하는 편이다. 그의 상대역이었던 여자배우 목록은 그대로 지난 20년 은막을 장악해온 정상급 여배우의 계보이다. 왕년의 여자배우 트로이카 유지인, 장미희, 정윤희를 비롯, 강수연, 최명길, 이미숙, 금보라, 원미경, 나영희, 김혜수, 이영옥, 김지미 등.
그러나 그가 연기자로 본격적인 주목받은 건 스스로 멜로영화의 틀을 깰 무렵이다. 그가 처음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탄 영화 <안개기둥>(1986)에서 그는 아내 위에 군림하려 드는 폭력적인 남편역을 맡았고 두번째 남우주연상을 받은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1987)에선 베트남전 참전의 후유증으로 가정과 사회로부터 도피하려는 인물로 등장했다. 세번째 남우주연상을 탄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1990)에서도 그는 성폭행의 피해자가 된 아내를 보호하는 남편역을 맡아 전형적인 멜로영화 배우와는 좀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그 무렵 TV에서도 그는 변신을 시도한다. <제5열>(1988)에선 산전수전 겪은 형사로 나왔고 <억새바람>(1992)에선 방황하는 미국이민자로 등장한다. 그리고 작품 수도 줄였다. 그의 영화 출연작은 무려 68편이다. 이 가운데 46편이 1977년에서 1985년 사이에 찍은 영화인데 비해 1986년부터 1994년까지 출연작은 그 절반도 안 되는 22편이다. 그가 이처럼 다작을 한 데는 당시 한국영화 제작환경이 큰 영향을 미쳤다. 영화사마다 의무제작편수가 있던 시절 영화사들은 외화 수입쿼터를 따기 위해 많은 한국영화를 졸속으로 제작했다. 이영하처럼 인기있는 배우는 일년 내내 촬영장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영하는 그 시절 자신이 스타라는 사실을 별로 실감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는 1994년 <우리시대의 사랑>을 끝으로 영화에서 자취를 감췄다. 영화계가 젊어지면서 이영하와 같이 일했던 감독들 대부분이 현장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지적하는 장점은 그가 실제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는 점이다. 실제 그는 50년생이다. 우리 나이로 결코 적은 나이는 아니다. 그는 연기자로 오래 남는 비결은 무엇보다 자기 관리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기본은 체력이다. 그리고 그가 믿는 연기의 철학은 진실함과 성실성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그는 1982년 동료 연기자 선우은숙과 결혼, 지금 두 아이의 아버지기도 하다. 그의 가정생활은 모범적인 걸로 소문났다. 그는 행복이란 이런 사소한 것에서 느껴진다며 평범한 가장의 모습도 내비치기도 한다. 제29회(1991) 대종상 영화제 남우주연상 -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제25회(1989) 백상예술대상 인기상 - 밀월 제26회(1987) 대종상 영화제 남우주연상 -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제22회(1986) 백상예술대상 남자최우수연기상_영화 - 화녀촌 제25회(1986) 대종상 영화제 남우주연상 - 안개 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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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01-17 출생
이영하는 1950년 1월 17일생으로 연기와 인연을 맺은 사연은 좀 특이하다. 그는 1969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동안 그룹사운드에서 기타를 치며 미8군 무대를 돌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울며 대학 다니는 아들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는 바람에 서라벌예술대학 음대를 지원하러 갔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영화과 이웅우 교수가 그에게 연기를 해보라고 했고 덕분에 연극과에 들어가게 됐다.
1977년 국립극장에서 했던 연극 <그날 밤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를 보러 온 유현목 감독이 영화 <문>에 캐스팅하면서 그는 영화배우가 됐고 같은 해 출연한 KBS 드라마 <행복의 문>이 폭발적 인기를 끌면서 스타의 대열에 올랐다.

사실 사람들은 아직도 그를 멜로영화의 주인공으로 기억하는 편이다. 그의 상대역이었던 여자배우 목록은 그대로 지난 20년 은막을 장악해온 정상급 여배우의 계보이다. 왕년의 여자배우 트로이카 유지인, 장미희, 정윤희를 비롯, 강수연, 최명길, 이미숙, 금보라, 원미경, 나영희, 김혜수, 이영옥, 김지미 등.
그러나 그가 연기자로 본격적인 주목받은 건 스스로 멜로영화의 틀을 깰 무렵이다. 그가 처음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탄 영화 <안개기둥>(1986)에서 그는 아내 위에 군림하려 드는 폭력적인 남편역을 맡았고 두번째 남우주연상을 받은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1987)에선 베트남전 참전의 후유증으로 가정과 사회로부터 도피하려는 인물로 등장했다. 세번째 남우주연상을 탄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1990)에서도 그는 성폭행의 피해자가 된 아내를 보호하는 남편역을 맡아 전형적인 멜로영화 배우와는 좀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그 무렵 TV에서도 그는 변신을 시도한다. <제5열>(1988)에선 산전수전 겪은 형사로 나왔고 <억새바람>(1992)에선 방황하는 미국이민자로 등장한다. 그리고 작품 수도 줄였다. 그의 영화 출연작은 무려 68편이다. 이 가운데 46편이 1977년에서 1985년 사이에 찍은 영화인데 비해 1986년부터 1994년까지 출연작은 그 절반도 안 되는 22편이다. 그가 이처럼 다작을 한 데는 당시 한국영화 제작환경이 큰 영향을 미쳤다. 영화사마다 의무제작편수가 있던 시절 영화사들은 외화 수입쿼터를 따기 위해 많은 한국영화를 졸속으로 제작했다. 이영하처럼 인기있는 배우는 일년 내내 촬영장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영하는 그 시절 자신이 스타라는 사실을 별로 실감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는 1994년 <우리시대의 사랑>을 끝으로 영화에서 자취를 감췄다. 영화계가 젊어지면서 이영하와 같이 일했던 감독들 대부분이 현장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지적하는 장점은 그가 실제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는 점이다. 실제 그는 50년생이다. 우리 나이로 결코 적은 나이는 아니다. 그는 연기자로 오래 남는 비결은 무엇보다 자기 관리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기본은 체력이다. 그리고 그가 믿는 연기의 철학은 진실함과 성실성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그는 1982년 동료 연기자 선우은숙과 결혼, 지금 두 아이의 아버지기도 하다. 그의 가정생활은 모범적인 걸로 소문났다. 그는 행복이란 이런 사소한 것에서 느껴진다며 평범한 가장의 모습도 내비치기도 한다. 제29회(1991) 대종상 영화제 남우주연상 -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제25회(1989) 백상예술대상 인기상 - 밀월 제26회(1987) 대종상 영화제 남우주연상 -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제22회(1986) 백상예술대상 남자최우수연기상_영화 - 화녀촌 제25회(1986) 대종상 영화제 남우주연상 - 안개 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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