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쥐쉬토프 키에슬로프스키

Krzysztof Kieslows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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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1-06-27 출생ㅣ폴란드ㅣTramwaj (1966) 데뷔
1941년 폴란드에서 태어나 자란 동유럽을 대표하는 거장이며 20세기 마지막 예술영화감독이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1966년 단편영화 <전차>를 연출하며 영화에 데뷔했고, 동유럽 영화 중흥의 산실인 우쯔 영화학교를 졸업한 이후 다큐멘터리 작업에 몰두했다. 키에슬로프스키는 68년 3월 학생봉기, 70년 12월의 자유화운동, 76년 노동자 시위사태, 80년 바웬사가 이끄는 연대노조 운동, 그리고 81년 아루젤루스키 정권의 계엄령 선포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세월을 살았다. 70년대 중반 아그네츠카 홀란드, 안토니오 클라우즈, 리자드 부가예스키, 마르셀 로진스키등의 감독이 폴란드 영화의 르네상스를 열면서 "도덕적 불안의 영화세대"라는 독특한 명칭을 얻게 된다. 키에슬로프스키 역시 이 유파에 속했고, 이 시기에 <노동자들 71: Workers 1971 - Nothing About Us Without Us>(1971)을 찍었다. 1976년 첫 극영화는 <어느 당원의 이력서: Personel>(1975)로 50분분량의 중편에다 TV물로 제작된 것이었지만 독일 만하임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지하 폴란드 공산당원이 징계문제로 당 조사위원회에 호출되어 심문받는 과정을 기록영화형식으로 담았다. 50분 동안 심문관과 피의자의 얼굴 클로즈업만으로 긴장감을 이끌어간 작품이다. 본격적인 장편 극영화 데뷔작은 <상처: The Scar>(1976)로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대상을 탔다. 현실을 예리한 눈으로 관찰하는 키에슬로프스키의 재능을 높이 산 유럽영화계가 자본을 대게 되는데 계기가 된 것은 바르샤바 TV에서 방영한 <십계> 연작이다. <결말없음>(1984)라는 영화를 만들면서 같이 각본을 쓴 크쥐스토프 피시비츠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만든 이 연작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극장배급의 과정에서 서구자본이 유입되었다. 이 공동작업은 <베로니카의 이중생활>(1991), <세가지 색>연작으로까지 이어졌다. <살인하지 말라: Thou Shalt Not Kill>(1988)를 만들어 깐느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과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고 이어 1989년에는 <간음하지 말라: Thou Shalt Not Commit Adultery>(1989)를 만들면서 그해 칸느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1991년에는 바르샤바와 파리에 사는 베로니카라는 동명 두 여자의 삶을 통해서 사회주의의 붕괴와 동시에 통합을 앞둔 유럽의 상황을 묘사한 <베로니카의 이중생활>로 칸느 영화제 여우주연상, 국제비평가협회상, 카톨릭협회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93년 베니스영화제에서는 <세 가지의 색-블루: Bleu)>(1993)로 로버트 알트만 감독과 함께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자유를 상징하는 <블루>를 연출한 후 평등을 의미하는 <화이트>(1994), 박애를 드러내는 <레드>(1994)를 만들어냈다. 1996년 3월 13일 54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숨을 거둔 키에슬로프스키는 인간이 실존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역사의 기반위에서 이러한 성찰을 해나가고자 노력했다. 그는 누구보다 냉철한 도덕주의자로서 인간고 세계에 대한 세심한 관찰을 통해 인간 심리를 정확하게 분석하여 영화로 만들어낸 위대한 감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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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06-27 출생폴란드Tramwaj (1966) 데뷔
1941년 폴란드에서 태어나 자란 동유럽을 대표하는 거장이며 20세기 마지막 예술영화감독이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1966년 단편영화 <전차>를 연출하며 영화에 데뷔했고, 동유럽 영화 중흥의 산실인 우쯔 영화학교를 졸업한 이후 다큐멘터리 작업에 몰두했다. 키에슬로프스키는 68년 3월 학생봉기, 70년 12월의 자유화운동, 76년 노동자 시위사태, 80년 바웬사가 이끄는 연대노조 운동, 그리고 81년 아루젤루스키 정권의 계엄령 선포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세월을 살았다. 70년대 중반 아그네츠카 홀란드, 안토니오 클라우즈, 리자드 부가예스키, 마르셀 로진스키등의 감독이 폴란드 영화의 르네상스를 열면서 "도덕적 불안의 영화세대"라는 독특한 명칭을 얻게 된다. 키에슬로프스키 역시 이 유파에 속했고, 이 시기에 <노동자들 71: Workers 1971 - Nothing About Us Without Us>(1971)을 찍었다. 1976년 첫 극영화는 <어느 당원의 이력서: Personel>(1975)로 50분분량의 중편에다 TV물로 제작된 것이었지만 독일 만하임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지하 폴란드 공산당원이 징계문제로 당 조사위원회에 호출되어 심문받는 과정을 기록영화형식으로 담았다. 50분 동안 심문관과 피의자의 얼굴 클로즈업만으로 긴장감을 이끌어간 작품이다. 본격적인 장편 극영화 데뷔작은 <상처: The Scar>(1976)로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대상을 탔다. 현실을 예리한 눈으로 관찰하는 키에슬로프스키의 재능을 높이 산 유럽영화계가 자본을 대게 되는데 계기가 된 것은 바르샤바 TV에서 방영한 <십계> 연작이다. <결말없음>(1984)라는 영화를 만들면서 같이 각본을 쓴 크쥐스토프 피시비츠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만든 이 연작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극장배급의 과정에서 서구자본이 유입되었다. 이 공동작업은 <베로니카의 이중생활>(1991), <세가지 색>연작으로까지 이어졌다. <살인하지 말라: Thou Shalt Not Kill>(1988)를 만들어 깐느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과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고 이어 1989년에는 <간음하지 말라: Thou Shalt Not Commit Adultery>(1989)를 만들면서 그해 칸느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1991년에는 바르샤바와 파리에 사는 베로니카라는 동명 두 여자의 삶을 통해서 사회주의의 붕괴와 동시에 통합을 앞둔 유럽의 상황을 묘사한 <베로니카의 이중생활>로 칸느 영화제 여우주연상, 국제비평가협회상, 카톨릭협회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93년 베니스영화제에서는 <세 가지의 색-블루: Bleu)>(1993)로 로버트 알트만 감독과 함께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자유를 상징하는 <블루>를 연출한 후 평등을 의미하는 <화이트>(1994), 박애를 드러내는 <레드>(1994)를 만들어냈다. 1996년 3월 13일 54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숨을 거둔 키에슬로프스키는 인간이 실존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역사의 기반위에서 이러한 성찰을 해나가고자 노력했다. 그는 누구보다 냉철한 도덕주의자로서 인간고 세계에 대한 세심한 관찰을 통해 인간 심리를 정확하게 분석하여 영화로 만들어낸 위대한 감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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