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 보도자료 중에서-
트란 안 훙은 1964년 베트남 남부지방 다낭에서 태어났으나 라오스에서 8년 정도 산 뒤, 1975년에 프랑스에 정착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트란 안 훙은 영화로 진로를 바꾸고, 영화 기술자를 양성하는 루이 뤼미에르 학교에 입학한다. 루이 뤼미에르 학교에서 2 년을 공부하면서 단편영화 <망부석 La Pierre de L`attente>을 만든 뒤, 1993년에 그의 다섯번째 시나리오를 들고 <그린 파파야 향기>를 연출한다. 이 영화를 통해 트란 안 홍은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 세자르 신인감독상을 수상하고 1994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에 노미네이트되는 성공을 거둔다. 영화는 50년대 베트남을 배경으로 투명하고 아름다운 영상으로 베트남민의 삶을 그려낸다. 특히 베트남 정부의 허락을 받지 못해 프랑스에서 100% 세트작업을 통해 만들어낸 영상은, 오히려 시공간의 인위적 재구성의 아름다움이 눈부시게 돋보인다. 트란 안 훙은 이 영화로 주연배우 트란 누 옌케와 결혼한다. 1995년 트란 안 훙은 홍콩 배우 양조위와 부인인 트란 누 옌케를 캐스팅하여 <씨클로>를 연출한다. 자전거택시인 씨클로를 운전하며 생계를 꾸려가는 소년이 삶의 터전인 씨클로를 도둑맞고 어쩔 수 없이 폭력조직에 들어가게 되면서 겪게 되는 차가운 현실을, 강렬한 색체를 통하여 그러나 사실적으로 묘사해내는데 성공한다. 이 작품으로 트란 안 훙은 베니스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는다. 2000년에 트란 안 훙은 또 다시 현대 베트남 사회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통해 만들어진 <여름의 수직선에서 At the Height of Summer>를 발표하며, 흔들리는 가족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트란 안 훙은 `쁠랑 세캉스(하나의 쇼트가 하나의 시퀀스를 구성)`라는 영화적 기법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걸로 유명하다. 그것은 바로 그가 영화를 단지 현실을 모방하는 기술로만 파악하지 않고, 내밀한 리듬과 호홉이 살아숨쉬는 유기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 그만의 프랑스적인 감수성이 앞으로도 계속 그의 조국을 바라보는 마음과 결부해 좋은 빛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상실의 시대> 보도자료 중에서-
트란 안 훙은 1964년 베트남 남부지방 다낭에서 태어났으나 라오스에서 8년 정도 산 뒤, 1975년에 프랑스에 정착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트란 안 훙은 영화로 진로를 바꾸고, 영화 기술자를 양성하는 루이 뤼미에르 학교에 입학한다. 루이 뤼미에르 학교에서 2 년을 공부하면서 단편영화 <망부석 La Pierre de L`attente>을 만든 뒤, 1993년에 그의 다섯번째 시나리오를 들고 <그린 파파야 향기>를 연출한다. 이 영화를 통해 트란 안 홍은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 세자르 신인감독상을 수상하고 1994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에 노미네이트되는 성공을 거둔다. 영화는 50년대 베트남을 배경으로 투명하고 아름다운 영상으로 베트남민의 삶을 그려낸다. 특히 베트남 정부의 허락을 받지 못해 프랑스에서 100% 세트작업을 통해 만들어낸 영상은, 오히려 시공간의 인위적 재구성의 아름다움이 눈부시게 돋보인다. 트란 안 훙은 이 영화로 주연배우 트란 누 옌케와 결혼한다. 1995년 트란 안 훙은 홍콩 배우 양조위와 부인인 트란 누 옌케를 캐스팅하여 <씨클로>를 연출한다. 자전거택시인 씨클로를 운전하며 생계를 꾸려가는 소년이 삶의 터전인 씨클로를 도둑맞고 어쩔 수 없이 폭력조직에 들어가게 되면서 겪게 되는 차가운 현실을, 강렬한 색체를 통하여 그러나 사실적으로 묘사해내는데 성공한다. 이 작품으로 트란 안 훙은 베니스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는다. 2000년에 트란 안 훙은 또 다시 현대 베트남 사회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통해 만들어진 <여름의 수직선에서 At the Height of Summer>를 발표하며, 흔들리는 가족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트란 안 훙은 `쁠랑 세캉스(하나의 쇼트가 하나의 시퀀스를 구성)`라는 영화적 기법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걸로 유명하다. 그것은 바로 그가 영화를 단지 현실을 모방하는 기술로만 파악하지 않고, 내밀한 리듬과 호홉이 살아숨쉬는 유기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 그만의 프랑스적인 감수성이 앞으로도 계속 그의 조국을 바라보는 마음과 결부해 좋은 빛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