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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트뤼포

Francois Truffaut 

101,329관객 동원
 1932-02-06 출생ㅣ프랑스 파리
누벨바그의 주역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평균 몇편 정도의 영화를 보게 될까? 1백편? 1천편? 생애 2만편이 넘는 영화를 본 것으로 알려진 프랑소와 트뤼포는 세계 최고의 영화광이며, 누벨바그 운동의 주역이었던 위대한 영화감독이었으며, 당대 영화계를 평정한 영화평론가였다.

트뤼포는 1932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사생아라는 소문이 돌만큼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이미 추악한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영화 보는 것에 몰입했다. 15세때 "영화 중독자 클럽(Cercle Cinemane)"을 결성하는데, 이때 당시를 풍미하던 위대한 영화 평론가 앙드레 바쟁과의 운명적인 조우를 하게 된다.
영화에 중독된 그를 못마땅해하던 아빠에 의해 소년감화원에 수감되나 바쟁의 도움으로 풀려나게 되고, 이후 트뤼포는 정신적 아버지로서 바쟁을 섬기게 된다. 이때 바쟁의 주선으로 장 뤽 고다르, 자크 리베트, 끌로드 샤브롤 등의 영화인들과 교류하며 까이에 뒤 시네마(Cahiers du Cinema)에 평론을 기고하며 평론가로서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
54년 1월 까이에 뒤 시네마에 발표한 트뤼포의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은 기존의 프랑스 영화계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감독의 작가정신이 담긴 "작가의 영화(Cinema d"Auteur)"론을 주장한 글로 영화 역사상 손꼽히는 평론으로 평가받고 있다.

로베르토 롯셀리니 감독의 조감독 생활을 3년간 하다가 27세때인 59년에 <400번의 구타>로 데뷔하는데, 이 작품은 그해 칸느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세상을 놀래킨다.
또한 고다르와 함께 <네멋대로 해라>의 시나리오를 집필하기도 했다. 60년 <피아니스트를 쏴라>, 61년 <쥴 앤 짐> 등의 작품들이 연이어 발표되면서 프랑스 영화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된다. 영화를 보는 행위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힘이 그의 작품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영화감독의 길로 들어선 트뤼포는 평생에 걸친 영화작업을 단지 의무가 아니라 삶의 기쁨으로 또는 많은 사람과의 교감으로 임해 왔다. 생애 20여편의 영화를 완성한 후 1984년 뇌종양으로 사망했을 때, 그와 함께 프랑스 누벨바그 운동을 주도했던 고다르는 이렇게 회고했다.
"프랑소와는 죽었을지도 모르고, 나는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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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02-06 출생프랑스 파리
누벨바그의 주역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평균 몇편 정도의 영화를 보게 될까? 1백편? 1천편? 생애 2만편이 넘는 영화를 본 것으로 알려진 프랑소와 트뤼포는 세계 최고의 영화광이며, 누벨바그 운동의 주역이었던 위대한 영화감독이었으며, 당대 영화계를 평정한 영화평론가였다.

트뤼포는 1932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사생아라는 소문이 돌만큼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이미 추악한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영화 보는 것에 몰입했다. 15세때 "영화 중독자 클럽(Cercle Cinemane)"을 결성하는데, 이때 당시를 풍미하던 위대한 영화 평론가 앙드레 바쟁과의 운명적인 조우를 하게 된다.
영화에 중독된 그를 못마땅해하던 아빠에 의해 소년감화원에 수감되나 바쟁의 도움으로 풀려나게 되고, 이후 트뤼포는 정신적 아버지로서 바쟁을 섬기게 된다. 이때 바쟁의 주선으로 장 뤽 고다르, 자크 리베트, 끌로드 샤브롤 등의 영화인들과 교류하며 까이에 뒤 시네마(Cahiers du Cinema)에 평론을 기고하며 평론가로서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
54년 1월 까이에 뒤 시네마에 발표한 트뤼포의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은 기존의 프랑스 영화계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감독의 작가정신이 담긴 "작가의 영화(Cinema d"Auteur)"론을 주장한 글로 영화 역사상 손꼽히는 평론으로 평가받고 있다.

로베르토 롯셀리니 감독의 조감독 생활을 3년간 하다가 27세때인 59년에 <400번의 구타>로 데뷔하는데, 이 작품은 그해 칸느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세상을 놀래킨다.
또한 고다르와 함께 <네멋대로 해라>의 시나리오를 집필하기도 했다. 60년 <피아니스트를 쏴라>, 61년 <쥴 앤 짐> 등의 작품들이 연이어 발표되면서 프랑스 영화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된다. 영화를 보는 행위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힘이 그의 작품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영화감독의 길로 들어선 트뤼포는 평생에 걸친 영화작업을 단지 의무가 아니라 삶의 기쁨으로 또는 많은 사람과의 교감으로 임해 왔다. 생애 20여편의 영화를 완성한 후 1984년 뇌종양으로 사망했을 때, 그와 함께 프랑스 누벨바그 운동을 주도했던 고다르는 이렇게 회고했다.
"프랑소와는 죽었을지도 모르고, 나는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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