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플레이셔

Richard Fleis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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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6-12-08 출생ㅣ미국ㅣ보디가드 (1946, 첫 장편 극영화) 데뷔
아버지가 애니메이터였던 리처드 플레이셔는 어려서부터 영화와 가까운 삶을 보냈다. 경력 역시 단편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시작했는데 실사영화 데뷔는 1942년 RKO스튜디오에서 이뤄졌다. 단편과 다큐멘터리 위주로 작업하던 플레이셔는 1946년 필름느와르 <보디가드>로 첫 번째 장편 극영화를 만들었다. 1954년 디즈니에서 <해저 2만리>를 연출하며 대작영화에 능한 감독으로 알려졌고 <바디 캡슐>(1966) <코난2-디스트로이어>(1984)처럼 특수효과가 필요한 영화에서 장기를 발휘했다. 하지만 그의 영화의 진면목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 삼은 <강박충동> <보스턴 교살자> 등과 같은 작품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다큐멘터리 경력을 살린 연출은 서구 사회의 도덕적 불안과 공포의 그늘을 지극히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평이다. 2006년 수면을 취하던 중 건강이 악화되어 89세 나이에 사망했다.

-<서울아트시네마 ‘B영화의 위대한 거장 3인전’> 보도자료 중에서-

1916년 12월 8일 미국 뉴욕의 브룩클린에서 태어난 리처드는 "뽀빠이"를 만든 유명한 애니메이터 막스 프레셔의 아들로 브라운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다가 예일대학으로 옮겨 드라마를 전공한다. 대학에서 연극 활동을 하던 플레이셔는 1942년 RKO에서 뉴스릴을 편집하며 자신의 단편영화들을 만들어 나갔다. 1946년 헐리우드로 간 플레이셔는 반전에 관한 다큐멘터리 필름 < Design for Death>(1948)로 아카데미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다. 용기 백배한 플레이셔는 < Follow Me Quietly>(1949), < The Narrow Margin>(1952)등의 극영화를 만들어 본격적인 극영화 감독으로서의 인정을 받기 시작했고 이후 디즈니로 영화사를 옮겨 < 20,000 Leagues Under the Sea>(1954), <바이킹: The Vikings>(1958)과 같은 가족용 어드벤처 영화를 주로 만들게 된다. 1970년 20세기 폭스사는 일본과 공동으로 대작 전쟁영화 <도라도라도라>의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이 영화의 감독으로 각각 동서양의 서사극 감독인 데이비드 린과 구로사와 아키라를 섭외했으나 이 두사람 모두 제작사와의 마찰로 영화에서 빠져나갔고 플레이셔는 이 영화의 미국 촬영본을 만들었다. 70mm로 촬영된 이 영화는 놀라운 사실성과 스펙타클로 플레이셔의 대표작으로 남는다. 플레이셔는 인종문제보다는 흑백간의 섹슈얼리티로 더 화제를 몰았던 <만딩고>(1975), 뮤지컬<재즈 싱어>(1980), 슈왈츠제네거의 액션물 <코난 2>(1984)등 다양한 영화 장르를 오가며 50여편의 극영화를 연출했다. 노년의 플레이셔는 1994년 < Betty Boop>이란 애니메이션 제작을 끝으로 영화계를 떠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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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12-08 출생미국보디가드 (1946, 첫 장편 극영화) 데뷔
아버지가 애니메이터였던 리처드 플레이셔는 어려서부터 영화와 가까운 삶을 보냈다. 경력 역시 단편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시작했는데 실사영화 데뷔는 1942년 RKO스튜디오에서 이뤄졌다. 단편과 다큐멘터리 위주로 작업하던 플레이셔는 1946년 필름느와르 <보디가드>로 첫 번째 장편 극영화를 만들었다. 1954년 디즈니에서 <해저 2만리>를 연출하며 대작영화에 능한 감독으로 알려졌고 <바디 캡슐>(1966) <코난2-디스트로이어>(1984)처럼 특수효과가 필요한 영화에서 장기를 발휘했다. 하지만 그의 영화의 진면목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 삼은 <강박충동> <보스턴 교살자> 등과 같은 작품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다큐멘터리 경력을 살린 연출은 서구 사회의 도덕적 불안과 공포의 그늘을 지극히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평이다. 2006년 수면을 취하던 중 건강이 악화되어 89세 나이에 사망했다.

-<서울아트시네마 ‘B영화의 위대한 거장 3인전’> 보도자료 중에서-

1916년 12월 8일 미국 뉴욕의 브룩클린에서 태어난 리처드는 "뽀빠이"를 만든 유명한 애니메이터 막스 프레셔의 아들로 브라운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다가 예일대학으로 옮겨 드라마를 전공한다. 대학에서 연극 활동을 하던 플레이셔는 1942년 RKO에서 뉴스릴을 편집하며 자신의 단편영화들을 만들어 나갔다. 1946년 헐리우드로 간 플레이셔는 반전에 관한 다큐멘터리 필름 < Design for Death>(1948)로 아카데미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다. 용기 백배한 플레이셔는 < Follow Me Quietly>(1949), < The Narrow Margin>(1952)등의 극영화를 만들어 본격적인 극영화 감독으로서의 인정을 받기 시작했고 이후 디즈니로 영화사를 옮겨 < 20,000 Leagues Under the Sea>(1954), <바이킹: The Vikings>(1958)과 같은 가족용 어드벤처 영화를 주로 만들게 된다. 1970년 20세기 폭스사는 일본과 공동으로 대작 전쟁영화 <도라도라도라>의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이 영화의 감독으로 각각 동서양의 서사극 감독인 데이비드 린과 구로사와 아키라를 섭외했으나 이 두사람 모두 제작사와의 마찰로 영화에서 빠져나갔고 플레이셔는 이 영화의 미국 촬영본을 만들었다. 70mm로 촬영된 이 영화는 놀라운 사실성과 스펙타클로 플레이셔의 대표작으로 남는다. 플레이셔는 인종문제보다는 흑백간의 섹슈얼리티로 더 화제를 몰았던 <만딩고>(1975), 뮤지컬<재즈 싱어>(1980), 슈왈츠제네거의 액션물 <코난 2>(1984)등 다양한 영화 장르를 오가며 50여편의 극영화를 연출했다. 노년의 플레이셔는 1994년 < Betty Boop>이란 애니메이션 제작을 끝으로 영화계를 떠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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