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카사베츠

John Cassave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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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9-12-09 출생
1929년 12월 9일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존 카사베츠는 1989년 지병이던 간경화증으로 사망할때까지 미국 독립영화사에서 보기 드물게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간 고독한 인물이었다.

그는 그리스계 이민자의 아들로 콜게이트 대학과 1950년 뉴욕 극예술아카데미를 졸업 후 일단 TV에서 연기자로서 활동했다. 1953년에서 1956년까지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조니 스타카토>라는 드라마로 연기자로 인정받았고, 1956년부터 맨하탄에 있는 메소드 액팅 스쿨에서 연기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영화 <한밤중의 테러>나 <거리의 살인>등의 각본을 쓰기도 했다.

뉴욕에 배우 워크샵을 개설하는 것을 도와주던 카사베츠는 첫 영화로 16mm 흑백영화 <그림자들>(1961)을 찍는다. 이 영화는 뉴욕 거리의 생생함과 현실감으로 넘치는 영화였고, 음악은 재즈연주가 찰스 밍구스(Charles Mingus)가 맡았다. 그는 이 영화로 베니스 영화제 비평가상을 수상하였다.
카사비츠는 이후로 20여편에 달하는 TV작품와 영화를 연출했는데 특징적인 것은 주로 저예산 영화들을 선호했고 아마도 미국내에서 저예산 영화를 시도한 최초의 부류에 들어갈 것이다.
카사베츠는 파라마운트영화사와 계약을 하고 <투 레이트 블루스: Too Late Blues>(1960), <기다리는 아이: A Child Is Waiting>(1962)등을 만들어내었지만 흥행과 비평은 모두 좋지 않았다.

헐리우드 제작시스템에서는 자신의 영화적 기량을 펼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후에는 독립적인 모금인 자신이 벌어들인 출연료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1968년 제작한 <얼굴들>로 베니스 영화제 5개 부문을 수상했는데 이 영화는 즉흥적이면서 시네마 베리떼 기법을 이용한 예전의 스타일로 돌아온 작품이다.
71년에 만든 < Minnie and Moskowitz>는 아내이자 배우인 지나 롤랜즈를 주연으로 기용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시키는 성과를 올린다. 70년대에 들어서 <남편들>, <미니와 모스코비츠 Minnie and Moskowitz>(1971), <술취한 여인>, <중국인 물주의 죽음 The Killing of a Chinese Bookie>(1976), <오프닝 나이트 Opening Night>(1977) 등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면서 연기활동도 계속하였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악마의 씨>(1968)에서 좋은 연기를 펼친 카사베츠는 80년 영화 < Gloria>로 베니스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했고 자신이 배우생활을 하면서 모은 돈은 반드시 독립 영화제작에 재투자했다. 80년대 이후 유럽에서 대가의 대접을 받으며 <글로리아>(1980), <사랑의 행로>(1984)를 만들어 베니스와 베를린영화제에서 대상을 받는다.

미국감독이면서도 철저하게 할리우드와 타협하지 않고 철저한 독립 영화 시스템을 고수한 카사베츠는 30년 동안 영화를 찍으면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다.
평생을 주류 배우와 비주류 영화 감독을 병행한 카사베츠는 89년 LA에서 병으로 사망했다.

존 카사베츠의 아들 닉 카사베츠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 배우와 감독 생활을 병행하고 있으며 아버지가 생전에 쓴 시나리오를 영화화한 <더 홀: She`s So Lovely>(1997) 등의 작품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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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12-09 출생
1929년 12월 9일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존 카사베츠는 1989년 지병이던 간경화증으로 사망할때까지 미국 독립영화사에서 보기 드물게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간 고독한 인물이었다.

그는 그리스계 이민자의 아들로 콜게이트 대학과 1950년 뉴욕 극예술아카데미를 졸업 후 일단 TV에서 연기자로서 활동했다. 1953년에서 1956년까지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조니 스타카토>라는 드라마로 연기자로 인정받았고, 1956년부터 맨하탄에 있는 메소드 액팅 스쿨에서 연기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영화 <한밤중의 테러>나 <거리의 살인>등의 각본을 쓰기도 했다.

뉴욕에 배우 워크샵을 개설하는 것을 도와주던 카사베츠는 첫 영화로 16mm 흑백영화 <그림자들>(1961)을 찍는다. 이 영화는 뉴욕 거리의 생생함과 현실감으로 넘치는 영화였고, 음악은 재즈연주가 찰스 밍구스(Charles Mingus)가 맡았다. 그는 이 영화로 베니스 영화제 비평가상을 수상하였다.
카사비츠는 이후로 20여편에 달하는 TV작품와 영화를 연출했는데 특징적인 것은 주로 저예산 영화들을 선호했고 아마도 미국내에서 저예산 영화를 시도한 최초의 부류에 들어갈 것이다.
카사베츠는 파라마운트영화사와 계약을 하고 <투 레이트 블루스: Too Late Blues>(1960), <기다리는 아이: A Child Is Waiting>(1962)등을 만들어내었지만 흥행과 비평은 모두 좋지 않았다.

헐리우드 제작시스템에서는 자신의 영화적 기량을 펼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후에는 독립적인 모금인 자신이 벌어들인 출연료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1968년 제작한 <얼굴들>로 베니스 영화제 5개 부문을 수상했는데 이 영화는 즉흥적이면서 시네마 베리떼 기법을 이용한 예전의 스타일로 돌아온 작품이다.
71년에 만든 < Minnie and Moskowitz>는 아내이자 배우인 지나 롤랜즈를 주연으로 기용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시키는 성과를 올린다. 70년대에 들어서 <남편들>, <미니와 모스코비츠 Minnie and Moskowitz>(1971), <술취한 여인>, <중국인 물주의 죽음 The Killing of a Chinese Bookie>(1976), <오프닝 나이트 Opening Night>(1977) 등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면서 연기활동도 계속하였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악마의 씨>(1968)에서 좋은 연기를 펼친 카사베츠는 80년 영화 < Gloria>로 베니스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했고 자신이 배우생활을 하면서 모은 돈은 반드시 독립 영화제작에 재투자했다. 80년대 이후 유럽에서 대가의 대접을 받으며 <글로리아>(1980), <사랑의 행로>(1984)를 만들어 베니스와 베를린영화제에서 대상을 받는다.

미국감독이면서도 철저하게 할리우드와 타협하지 않고 철저한 독립 영화 시스템을 고수한 카사베츠는 30년 동안 영화를 찍으면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다.
평생을 주류 배우와 비주류 영화 감독을 병행한 카사베츠는 89년 LA에서 병으로 사망했다.

존 카사베츠의 아들 닉 카사베츠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 배우와 감독 생활을 병행하고 있으며 아버지가 생전에 쓴 시나리오를 영화화한 <더 홀: She`s So Lovely>(1997) 등의 작품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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