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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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8-11-06 출생ㅣ한국ㅣ과부 (1960) 데뷔
1928년 11월 6일 서울에서 태어난 신영균은 서울대 치대를 졸업하고 조긍하 감독의 <과부>(1960)으로 데뷔했는데, 그의 배우 생활은 출발만큼 화려하고 당당하게 이십년 가까이 이어졌고, 우리 영화 배우사에 한 획을 남겼다.
그는 총 294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다양한 연기 세계를 구축했는데, 데뷔작 <과부>(1960)에서 과부를 사모하는 연정으로 속앓이를 하는 촌사람 역을 잘 어울리게 연기했다. 가진 재산 하나 없이 몸뚱어리 하나로 살아가는 우직한 시골 머슴형을 뛰어나게 소화해냈던것이다. 또한 <마부>(1961)나 <상록수>(1961)에서의 가장이나 맏아들의 듬직한 역할을 연기했으며, 그는 <남과 북>(1965), <빨간 마후라>(1971)을 비롯해 다수의 전쟁과 군대를 소재로 한 영화에 출연하며 특유의 의리있는 군인역을 연기해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연기 중에, 특별하게 강렬하게 인식되는 연기는 아무래도 연산군 역할일 것이다. 그는 <폭군 연산>과 <연산군>에서와 같이, 2번이나 그 역을 했는데, 이는 당시의 연기자 가운데에서도 풍채에 가장 잘 어울리고 폭발적 에너지가 느껴지는 그의 잠재된 연기 덕택으로 가능했을 것이다. 기막힌 영화적 삶을 살다간 연산군에 대한 영화화는 우리 영화사에서 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으며, 연기자라면 한번쯤 욕심을 내는 매력적인 역할이다. 이러한 연산군의 연기사에 있어, 신영균은 독특한 연기세계를 구성하며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그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또한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으로도 기억되고 있는데, 그것은 1968년에서 1971년에 이르러 대완결이 이루어지는 네편의 <미워도 다시 한번>이다. 여기서 신영균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 돈 많은 여자와 결혼하고, 나중에 옛 사랑과 아들이 나타남으로써 갈등을 겪는 삼각관계의 중심에 선 중년 남성 역을 멋지게 소화해낸다. 이 시리즈는 한국영화사에서 대단히 성공한 영화로 기억되며, 전국적인 흥행을 기록한 영화이다. 특히, 중년 여성 관객들이 극장가를 휩쓸며 눈물의 바다를 만들었다.
신영균은 오랫동안 함께 작업을 같이 했던 김수용 감독과 <화조>(1978)를 끝으로, 연기 일선에서 물러나 극장을 경영하고, 한국영화인협회 회장을 거쳤으며, 1981년에는 신영문화예술재단을 설립했는데, 이 재단에서는 단편을 상대로 하는 신영영화제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리고 1981년에 이어 1996년에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예총)의 회장으로 활동했다. 제15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현재 16대 현역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사회 활동에서도 굵직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데, 연기자로서의 신영균은 60, 70년대 투박하고 토속적이면서 힘있는 얼굴과 연기로 자신의 자리를 일정하게 지키면서 한국 남성상의 모습을 대변했다. 그는 김승호로 시작되는 한국적인 남성상의 연기자 계보에 무게를 실을 수 배우였다. 1987년 신영균은 대통령 동백훈장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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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11-06 출생한국과부 (1960) 데뷔
1928년 11월 6일 서울에서 태어난 신영균은 서울대 치대를 졸업하고 조긍하 감독의 <과부>(1960)으로 데뷔했는데, 그의 배우 생활은 출발만큼 화려하고 당당하게 이십년 가까이 이어졌고, 우리 영화 배우사에 한 획을 남겼다.
그는 총 294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다양한 연기 세계를 구축했는데, 데뷔작 <과부>(1960)에서 과부를 사모하는 연정으로 속앓이를 하는 촌사람 역을 잘 어울리게 연기했다. 가진 재산 하나 없이 몸뚱어리 하나로 살아가는 우직한 시골 머슴형을 뛰어나게 소화해냈던것이다. 또한 <마부>(1961)나 <상록수>(1961)에서의 가장이나 맏아들의 듬직한 역할을 연기했으며, 그는 <남과 북>(1965), <빨간 마후라>(1971)을 비롯해 다수의 전쟁과 군대를 소재로 한 영화에 출연하며 특유의 의리있는 군인역을 연기해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연기 중에, 특별하게 강렬하게 인식되는 연기는 아무래도 연산군 역할일 것이다. 그는 <폭군 연산>과 <연산군>에서와 같이, 2번이나 그 역을 했는데, 이는 당시의 연기자 가운데에서도 풍채에 가장 잘 어울리고 폭발적 에너지가 느껴지는 그의 잠재된 연기 덕택으로 가능했을 것이다. 기막힌 영화적 삶을 살다간 연산군에 대한 영화화는 우리 영화사에서 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으며, 연기자라면 한번쯤 욕심을 내는 매력적인 역할이다. 이러한 연산군의 연기사에 있어, 신영균은 독특한 연기세계를 구성하며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그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또한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으로도 기억되고 있는데, 그것은 1968년에서 1971년에 이르러 대완결이 이루어지는 네편의 <미워도 다시 한번>이다. 여기서 신영균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 돈 많은 여자와 결혼하고, 나중에 옛 사랑과 아들이 나타남으로써 갈등을 겪는 삼각관계의 중심에 선 중년 남성 역을 멋지게 소화해낸다. 이 시리즈는 한국영화사에서 대단히 성공한 영화로 기억되며, 전국적인 흥행을 기록한 영화이다. 특히, 중년 여성 관객들이 극장가를 휩쓸며 눈물의 바다를 만들었다.
신영균은 오랫동안 함께 작업을 같이 했던 김수용 감독과 <화조>(1978)를 끝으로, 연기 일선에서 물러나 극장을 경영하고, 한국영화인협회 회장을 거쳤으며, 1981년에는 신영문화예술재단을 설립했는데, 이 재단에서는 단편을 상대로 하는 신영영화제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리고 1981년에 이어 1996년에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예총)의 회장으로 활동했다. 제15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현재 16대 현역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사회 활동에서도 굵직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데, 연기자로서의 신영균은 60, 70년대 투박하고 토속적이면서 힘있는 얼굴과 연기로 자신의 자리를 일정하게 지키면서 한국 남성상의 모습을 대변했다. 그는 김승호로 시작되는 한국적인 남성상의 연기자 계보에 무게를 실을 수 배우였다. 1987년 신영균은 대통령 동백훈장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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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
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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