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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일

 

2,665,211관객 동원
 1937-05-08 출생ㅣ한국ㅣ로맨스빠빠 (1960) 데뷔
"영원한 청춘 스타" 신성일은 해방후 한국영화계의 대표적인 스타로 군림하면서 숱한 화제작을 내놓았다. 그가 주연한 영화만 800여편이나 된다.
전성기 시절, 그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몰랐다. 예들 들면, 63년 청룡영화상 첫회부터 73년 10회로 일시 중단될 때까지 한번도 거르지 않고 인기상을 받을 정도였다.

1960년대의 한국영화 전성기에 청춘영화의 주인공으로 은막을 주름잡은 신성일은 1937년 5월 8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꿈은 법관이었으나 경북고교 2학년때 가세가 기울면서 방향을 바꾸었다. 전후 혼란 속에서 생계수단으로 영화를 택한 것이다.
그는 1960년 신필름의 신인배우 공모에 응모하여 3200명 가운데 유일하게 신필름 전속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정식으로 스크린에 데뷔한 것이 <로맨스빠빠>(1960)이다. 이후 그는 청춘영화의 물결을 타고 인기 상승세를 탔다.
60∼70년대를 빛낸 여배우치고 그와 함께 작품을 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고은아는 <난의 비가>(1965년)에서, 윤정희는 <청춘극장>(1967년)에서 신성일의 상대로 데뷔했다. 또한 <까치소리>(1967)에서는 고은아, 남정임, 윤정희와 공연했고 <여, 여, 여>(1968년)에서는 최은희, 김지미, 문희와 공연했다. 70년대 후반들어 신트로이카를 구축했던 정윤희, 장미희, 유지인을 상대했음은 물론이다.

지금 부부로 해로중인 엄앵란과도 스크린에서 만났다. 둘은 <맨발의 청춘>(1964) 등 수많은 영화에서 사랑을 키워 1964년 영화같이 극적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안개>(1967) 등 문예영화의 주역을 맡으며 70년대를 맞은 신성일은 <별들의 고향>(1974)(서울 관객 48만명), <겨울여자>(1977)(57만명)로 건재를 과시했고, 80년대엔 <길소뜸>(1985) <달빛 사냥꾼>(1986) 등에서 원숙한 연기를 보여줬다. 또한 신성일은 89년 성일 시네마트를 설립, <코리안 커넥션>(1990)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1991) 등을 만들며 제작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잦은 정치 외도로 한때 경제적 파산 위기에 몰리기도 했으나, 그의 영화배우로서의 명성은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
최근에는 국회의원에 당선돼서 현역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영화배우로서 신성일만큼 한 시대를 풍미한 배우는 찾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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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05-08 출생한국로맨스빠빠 (1960) 데뷔
"영원한 청춘 스타" 신성일은 해방후 한국영화계의 대표적인 스타로 군림하면서 숱한 화제작을 내놓았다. 그가 주연한 영화만 800여편이나 된다.
전성기 시절, 그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몰랐다. 예들 들면, 63년 청룡영화상 첫회부터 73년 10회로 일시 중단될 때까지 한번도 거르지 않고 인기상을 받을 정도였다.

1960년대의 한국영화 전성기에 청춘영화의 주인공으로 은막을 주름잡은 신성일은 1937년 5월 8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꿈은 법관이었으나 경북고교 2학년때 가세가 기울면서 방향을 바꾸었다. 전후 혼란 속에서 생계수단으로 영화를 택한 것이다.
그는 1960년 신필름의 신인배우 공모에 응모하여 3200명 가운데 유일하게 신필름 전속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정식으로 스크린에 데뷔한 것이 <로맨스빠빠>(1960)이다. 이후 그는 청춘영화의 물결을 타고 인기 상승세를 탔다.
60∼70년대를 빛낸 여배우치고 그와 함께 작품을 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고은아는 <난의 비가>(1965년)에서, 윤정희는 <청춘극장>(1967년)에서 신성일의 상대로 데뷔했다. 또한 <까치소리>(1967)에서는 고은아, 남정임, 윤정희와 공연했고 <여, 여, 여>(1968년)에서는 최은희, 김지미, 문희와 공연했다. 70년대 후반들어 신트로이카를 구축했던 정윤희, 장미희, 유지인을 상대했음은 물론이다.

지금 부부로 해로중인 엄앵란과도 스크린에서 만났다. 둘은 <맨발의 청춘>(1964) 등 수많은 영화에서 사랑을 키워 1964년 영화같이 극적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안개>(1967) 등 문예영화의 주역을 맡으며 70년대를 맞은 신성일은 <별들의 고향>(1974)(서울 관객 48만명), <겨울여자>(1977)(57만명)로 건재를 과시했고, 80년대엔 <길소뜸>(1985) <달빛 사냥꾼>(1986) 등에서 원숙한 연기를 보여줬다. 또한 신성일은 89년 성일 시네마트를 설립, <코리안 커넥션>(1990)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1991) 등을 만들며 제작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잦은 정치 외도로 한때 경제적 파산 위기에 몰리기도 했으나, 그의 영화배우로서의 명성은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
최근에는 국회의원에 당선돼서 현역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영화배우로서 신성일만큼 한 시대를 풍미한 배우는 찾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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