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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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7-01-10 출생
송승환은 1957년 1월 10일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어린나이로 1965년 KBS 어린이 성우로 방송계에 입문한 이후 그의 연기생활은 30여년을 헤아린다. 그 당시 연예인에 대한 인식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고, 어릴 때부터 연기를 했고 조금 소질이 있나 보다라고만 여겼었지 직업으로 택한다거나 평생을 걸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는 재수 끝에 들어간 대학을 중도에 포기하게 되고, 1977년 "극단76"에 입단하여 본격적인 배우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1980년대 "젊음의 행진"이라는 음악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 당시 인기가수는 물론이거니와 지금 들으면 왠지 촌스러운 듯싶은 짝꿍이라는 프로그램 소속 백댄서팀이 나오는 이 프로그램은 우리의 추억 속에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이쯤 되면 프로그램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MC 송승환을 동시에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신세대들에게 하이틴 스타 송승환은 낯선 이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20대 후반부터 30대-50대에 이르는 청·장년층에게 송승환이라는 이름 석자는 그야말로 "젊음의 상징"이었다. 20여년 가까이 연예생활을 하면서 그는 20대 나이에 아파트를 4채나 가지고 있을 정도로 재력을 쌓았다.

그러나 부모님이 사업에 실패하면서 그렇게 번 돈을 모두 날리고 그는 그야말로 빈손으로 미국으로 떠났다. 어렵기는 했지만 미국생활에서 그는 참으로 많은 인생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삐쩍 마른 체구, 장발의 20대 청년으로 팬들 곁을 떠났던 그가 89년 원숙한 30대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면서 다시 돌아왔다.
그렇지만 정상의 자리에서 과감히 떠났고, 방 한칸 마련할 돈도 없이 빈 손으로 돌아온 그에게 모든 것은 너무나 많이 변해 있었다. 다행히 귀국하자마자 영화 <랏슈>의 출연제의가 들어왔고, 이때 받은 개런티 3천만원으로 17평짜리 아파트를 전세낼 수 있었다.

이 때 그의 두번째 반란이 시작되었다. CF제작을 하는 선배 사무실 한켠에 책상하나, 전화 한 대를 들여놓고 음반제작과 콘서트 기획에 뛰어든 것이다. 가수 강수지의 음반을 제작하고, 변진섭, 해바라기, 이광조, 그룹 봄·여름·가을·겨울 등의 콘서트를 기획했다.
최근의 그의 근황을 보게 되면 공연기획자의 모습으로 당당하게 우리 앞에 서 있다. 미국유학 후 연극제작에 참여하면서 두 가지 면에서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 첫째, 관객층이 한정된 좁은 국내 시장과 둘째,반드시 주제의식을 담으려는 다소 경직된 공연문화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하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90년대 초 문화흐름의 하나였던 비언어극(non-verbal performance)이야말로 이 모든 것을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기획의도하에 탄생한 것이 <난타>다. 국내에서의 대성공을 기점으로 해외에서도 많은 관심과 극찬을 받고 있는 <난타>는 우리나라 최초로 전용관에서 상설공연을 가졌다.
또한 현재 브로드웨이 관계자측과 협상단계에 있는데 내년쯤에는 그곳에서의 공연도 가능하리라고 한다. 그럴경우 한국은 물론 아시아계 최초의 브로드웨이 장기 공연작이 되는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지만 송승환 씨에게 있어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그가 대표로 있는 PMC프로덕션의 PMC란 공연(performance), 음악(music), 영화(cinema)의 영문 이니셜을 조합한 것이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난타>의 완성도를 높여갈 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음반제작과 영화사업도 적극적으로 해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그는 정형화된 우리의 문화계 현실에 그가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난타>공연장에 가면 (휴대폰 끄지 마세요. 음식물 가지고 들어오세요)라는 다소 파격적인 문구를 대하게 된다. 이는 편하게 그야말로 즐길 수 있는 문화를 제공하고자 하는 송승환 씨의 의도가 읽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그의 행보가 기대되는 지점이 바로 이 지점일 것이다. 현재 P.M.C production 대표이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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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01-10 출생
송승환은 1957년 1월 10일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어린나이로 1965년 KBS 어린이 성우로 방송계에 입문한 이후 그의 연기생활은 30여년을 헤아린다. 그 당시 연예인에 대한 인식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고, 어릴 때부터 연기를 했고 조금 소질이 있나 보다라고만 여겼었지 직업으로 택한다거나 평생을 걸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는 재수 끝에 들어간 대학을 중도에 포기하게 되고, 1977년 "극단76"에 입단하여 본격적인 배우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1980년대 "젊음의 행진"이라는 음악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 당시 인기가수는 물론이거니와 지금 들으면 왠지 촌스러운 듯싶은 짝꿍이라는 프로그램 소속 백댄서팀이 나오는 이 프로그램은 우리의 추억 속에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이쯤 되면 프로그램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MC 송승환을 동시에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신세대들에게 하이틴 스타 송승환은 낯선 이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20대 후반부터 30대-50대에 이르는 청·장년층에게 송승환이라는 이름 석자는 그야말로 "젊음의 상징"이었다. 20여년 가까이 연예생활을 하면서 그는 20대 나이에 아파트를 4채나 가지고 있을 정도로 재력을 쌓았다.

그러나 부모님이 사업에 실패하면서 그렇게 번 돈을 모두 날리고 그는 그야말로 빈손으로 미국으로 떠났다. 어렵기는 했지만 미국생활에서 그는 참으로 많은 인생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삐쩍 마른 체구, 장발의 20대 청년으로 팬들 곁을 떠났던 그가 89년 원숙한 30대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면서 다시 돌아왔다.
그렇지만 정상의 자리에서 과감히 떠났고, 방 한칸 마련할 돈도 없이 빈 손으로 돌아온 그에게 모든 것은 너무나 많이 변해 있었다. 다행히 귀국하자마자 영화 <랏슈>의 출연제의가 들어왔고, 이때 받은 개런티 3천만원으로 17평짜리 아파트를 전세낼 수 있었다.

이 때 그의 두번째 반란이 시작되었다. CF제작을 하는 선배 사무실 한켠에 책상하나, 전화 한 대를 들여놓고 음반제작과 콘서트 기획에 뛰어든 것이다. 가수 강수지의 음반을 제작하고, 변진섭, 해바라기, 이광조, 그룹 봄·여름·가을·겨울 등의 콘서트를 기획했다.
최근의 그의 근황을 보게 되면 공연기획자의 모습으로 당당하게 우리 앞에 서 있다. 미국유학 후 연극제작에 참여하면서 두 가지 면에서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 첫째, 관객층이 한정된 좁은 국내 시장과 둘째,반드시 주제의식을 담으려는 다소 경직된 공연문화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하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90년대 초 문화흐름의 하나였던 비언어극(non-verbal performance)이야말로 이 모든 것을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기획의도하에 탄생한 것이 <난타>다. 국내에서의 대성공을 기점으로 해외에서도 많은 관심과 극찬을 받고 있는 <난타>는 우리나라 최초로 전용관에서 상설공연을 가졌다.
또한 현재 브로드웨이 관계자측과 협상단계에 있는데 내년쯤에는 그곳에서의 공연도 가능하리라고 한다. 그럴경우 한국은 물론 아시아계 최초의 브로드웨이 장기 공연작이 되는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지만 송승환 씨에게 있어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그가 대표로 있는 PMC프로덕션의 PMC란 공연(performance), 음악(music), 영화(cinema)의 영문 이니셜을 조합한 것이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난타>의 완성도를 높여갈 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음반제작과 영화사업도 적극적으로 해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그는 정형화된 우리의 문화계 현실에 그가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난타>공연장에 가면 (휴대폰 끄지 마세요. 음식물 가지고 들어오세요)라는 다소 파격적인 문구를 대하게 된다. 이는 편하게 그야말로 즐길 수 있는 문화를 제공하고자 하는 송승환 씨의 의도가 읽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그의 행보가 기대되는 지점이 바로 이 지점일 것이다. 현재 P.M.C production 대표이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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