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

 

706,693관객 동원
 1921-03-06 출생
작은 키에 다부진 체격, 서글서글한 윤곽의 얼굴에서 우러나는 다정한 인간미, 또한 차가우면서도 의리가 배인 음성의 소유자인 황해는, 다양함이 느껴지는 독특한 성격파 연기로서 전쟁으로 시달리고 고통받았던 전후의 대중들에게 가까운 친구로 다가섰다.
황해는 1921년 3월 6일 서울 묵정동에서 태어났다. 1939년 서울 상공학교를 졸업하고, 1940년 당시 서울 국도극장을 무대로 공연했던 <성보악극단> 연구생으로 배우에의 첫발을 딛었다. 그 후 <신태양극단>으로 옮겨 만주·중국에서 공연했다(황해는 그 당시 배우생활과 함께 일제 감시 하에서 독립군 연락원으로도 활동하였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귀국해서 <샛별극단>에 합류해서 악극배우로 이름을 날렸는데, 그 무렵은 악극배우들이 자연스럽게 영화배우로 진출하던 시기였다. 그래서 1949년 한형모 감독의 <성벽을 뚫고>에 출연하며 영화배우로 데뷔하였다.
6.25 사변 이후 황해는 한형모 감독의 <청춘쌍곡선>(1956)에 주연으로 출연한다. 이 작품은 가난하고 부유한 두 가정을 풍자적으로 비교 묘사하면서 사랑과 웃음과 눈물을 담은 러브 코미디 영화였는데, 개봉 당시 흥행에 성공하였고 아시아영화제에 한국 대표작으로 출품되는 등 황해는 일약 유명스타로 발돋음했다. 영화의 성공으로 인기를 얻은 그는 이강천 감독의 <사랑>(1957)을 거쳐 <두 남매>(1958), <한 많은 청춘>(1958), <눈물>(1958), <목포의 눈물>(1958) 등의 연속 출연으로 흥행배우로서의 자리매김을 했다. 1959년부터 1969년까지 10년간 황해는 영화배우로서 전성기를 구가한다. 그는 당시 한국영화계 액션 3인방으로 불리던 자신을 비롯한 장동휘, 허장강과 함께 "동인프로덕션"을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액션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황해는 최하원 감독의 <독짓는 늙은이>(1969)에서 움막 속에 살면서 고독하게 독을 짓는 송영감 역을 맡은 것을 계기로 제2의 연기인생을 시작한다. 인간 본연에 내재된 욕망을 표출함으로서 인간 진실에 접근하는 구도자적 연기인의 자세를 보여준다. 그는 종래의 액션, 멜로 연기에서 탈피하여 진지한 한 인간의 모습을 통해 인간 본연의 애욕을 그려내었고 이는 실로 놀라운 변신이었다. 그는 <독짓는 늙은이>에서의 열연으로 청룡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배우 데뷔 이후 최대의 결실을 거두게 된다.
그는 그의 장기인 액션은 물론 코미디, 멜로, 전쟁물에 이르기까지 장르의 벽을 뛰어넘어 전천후 연기자로서 스크린을 누볐다. 액션, 멜로물의 한때 간판스타였던 황해가 지금도 대중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이유는 그가 가끔 본격영화를 만났을 때 대중들의 선입견을 사정없이 깨뜨리고 무서운 연기투혼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영화배우 황해는 스크린이나 일상에서 "작은 거인"이었다. 그는 카메라 앞에 서면 작은 키에서 끊임없이 뿜어내는 힘있는 연기로 스크린을 압도했으며, 일상에서는 의리 넘치는 큰그릇의 사나이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황해를 주저 없이 "작은 거인"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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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03-06 출생
작은 키에 다부진 체격, 서글서글한 윤곽의 얼굴에서 우러나는 다정한 인간미, 또한 차가우면서도 의리가 배인 음성의 소유자인 황해는, 다양함이 느껴지는 독특한 성격파 연기로서 전쟁으로 시달리고 고통받았던 전후의 대중들에게 가까운 친구로 다가섰다.
황해는 1921년 3월 6일 서울 묵정동에서 태어났다. 1939년 서울 상공학교를 졸업하고, 1940년 당시 서울 국도극장을 무대로 공연했던 <성보악극단> 연구생으로 배우에의 첫발을 딛었다. 그 후 <신태양극단>으로 옮겨 만주·중국에서 공연했다(황해는 그 당시 배우생활과 함께 일제 감시 하에서 독립군 연락원으로도 활동하였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귀국해서 <샛별극단>에 합류해서 악극배우로 이름을 날렸는데, 그 무렵은 악극배우들이 자연스럽게 영화배우로 진출하던 시기였다. 그래서 1949년 한형모 감독의 <성벽을 뚫고>에 출연하며 영화배우로 데뷔하였다.
6.25 사변 이후 황해는 한형모 감독의 <청춘쌍곡선>(1956)에 주연으로 출연한다. 이 작품은 가난하고 부유한 두 가정을 풍자적으로 비교 묘사하면서 사랑과 웃음과 눈물을 담은 러브 코미디 영화였는데, 개봉 당시 흥행에 성공하였고 아시아영화제에 한국 대표작으로 출품되는 등 황해는 일약 유명스타로 발돋음했다. 영화의 성공으로 인기를 얻은 그는 이강천 감독의 <사랑>(1957)을 거쳐 <두 남매>(1958), <한 많은 청춘>(1958), <눈물>(1958), <목포의 눈물>(1958) 등의 연속 출연으로 흥행배우로서의 자리매김을 했다. 1959년부터 1969년까지 10년간 황해는 영화배우로서 전성기를 구가한다. 그는 당시 한국영화계 액션 3인방으로 불리던 자신을 비롯한 장동휘, 허장강과 함께 "동인프로덕션"을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액션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황해는 최하원 감독의 <독짓는 늙은이>(1969)에서 움막 속에 살면서 고독하게 독을 짓는 송영감 역을 맡은 것을 계기로 제2의 연기인생을 시작한다. 인간 본연에 내재된 욕망을 표출함으로서 인간 진실에 접근하는 구도자적 연기인의 자세를 보여준다. 그는 종래의 액션, 멜로 연기에서 탈피하여 진지한 한 인간의 모습을 통해 인간 본연의 애욕을 그려내었고 이는 실로 놀라운 변신이었다. 그는 <독짓는 늙은이>에서의 열연으로 청룡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배우 데뷔 이후 최대의 결실을 거두게 된다.
그는 그의 장기인 액션은 물론 코미디, 멜로, 전쟁물에 이르기까지 장르의 벽을 뛰어넘어 전천후 연기자로서 스크린을 누볐다. 액션, 멜로물의 한때 간판스타였던 황해가 지금도 대중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이유는 그가 가끔 본격영화를 만났을 때 대중들의 선입견을 사정없이 깨뜨리고 무서운 연기투혼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영화배우 황해는 스크린이나 일상에서 "작은 거인"이었다. 그는 카메라 앞에 서면 작은 키에서 끊임없이 뿜어내는 힘있는 연기로 스크린을 압도했으며, 일상에서는 의리 넘치는 큰그릇의 사나이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황해를 주저 없이 "작은 거인"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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