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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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7-07-13 출생ㅣ한국ㅣ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1939) 데뷔
김승호는 한국 영화사에서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독특한 연기세계를 구축한 명배우 중의 한 사람이다. 1917년 강원도 철원에서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그가 네살 되던 해에 집이 서울로 이사와 유년기를 서울에서 보내게 된다. 보성중학교를 졸업하고, 평범하게 직장을 다녔으나, 그가 스무살이 되던 해, 동양극장을 찾아가 연극을 지원했다. 이후 동양극장의 전속극단인 "청춘좌"에서 잔심부름과 잡일을 하며 고생을 하게 되는데, 그는 청춘좌의 히트작을 영화화한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1939)로 스크린에 데뷔하게 된다. 그리고 이후에도 다양한 연기 수업은 주로 연극 무대에 쌓는다. 그는 마흔에 가까운 나이에 본격적인 영화배우로 나서게 된다. 그러던 그가, 이병일 감독, 오영진 각본의 <시집가는 날>(1956)출연하게 됐는데, 이 영화가 한국영화로서는 최초로 해외에 출품되어 아시아 영화제에서 희극 특별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그는 본격적인 영화배우의 길을 걷게 된다. <시집가는 날>(1956)은 그에게 제1회 부일영화제의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게도 된다. 이후 그는 작고할 때까지 25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주요작품만 하더라도 상당한 편수를 자랑한다. 그는 신상옥 감독의 <로맨스 빠빠>(1960)에서의 연기로 제7회 아시아 영화제에서 그에게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또한 강대진 감독의 <박서방>(1960)은 제3회 부일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강대진 감독의 <마부>(1961)에 출연하고, 신상옥 감독의 <로맨스 그레이>(1963)로 제10회 아시아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김수용 감독의 <혈맥>(1963), 김강윤 감독의 <역마>(1967), 김수용 감독의 <만선>(1967) 등은 그에게 각종 영화상을 수상하는 계기가 된 영화이다. 이렇게 한국영화의 전성기에 가장 한국적이면서 서민적인 인물의 주인공으로 김승호는 활약했으며, 특히 아시아 영화제에서 다수의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됐다. 당시의 관객들은 김승호를 통해 한국인의 정서를 보았으며, 그를 통해 그들의 애환을 달랬던 것이다. 그는 후배들에게 "좋은 연기자가 되려면 무서운 노력이 필요하다. 어느 찬스로 잠시 별같이 반짝인다고 해서 안이해서는 안된다. 영원히 반짝이는 별이 되기 위해서는 고뇌와 자기 노력으로 인간수업을 게을리 하지 말라... 구름만 껴도 보이지 않는 별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했었다고 한다. 그는 한국 영화사에서 기억해야 할 영화인 중에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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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07-13 출생한국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1939) 데뷔
김승호는 한국 영화사에서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독특한 연기세계를 구축한 명배우 중의 한 사람이다. 1917년 강원도 철원에서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그가 네살 되던 해에 집이 서울로 이사와 유년기를 서울에서 보내게 된다. 보성중학교를 졸업하고, 평범하게 직장을 다녔으나, 그가 스무살이 되던 해, 동양극장을 찾아가 연극을 지원했다. 이후 동양극장의 전속극단인 "청춘좌"에서 잔심부름과 잡일을 하며 고생을 하게 되는데, 그는 청춘좌의 히트작을 영화화한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1939)로 스크린에 데뷔하게 된다. 그리고 이후에도 다양한 연기 수업은 주로 연극 무대에 쌓는다. 그는 마흔에 가까운 나이에 본격적인 영화배우로 나서게 된다. 그러던 그가, 이병일 감독, 오영진 각본의 <시집가는 날>(1956)출연하게 됐는데, 이 영화가 한국영화로서는 최초로 해외에 출품되어 아시아 영화제에서 희극 특별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그는 본격적인 영화배우의 길을 걷게 된다. <시집가는 날>(1956)은 그에게 제1회 부일영화제의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게도 된다. 이후 그는 작고할 때까지 25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주요작품만 하더라도 상당한 편수를 자랑한다. 그는 신상옥 감독의 <로맨스 빠빠>(1960)에서의 연기로 제7회 아시아 영화제에서 그에게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또한 강대진 감독의 <박서방>(1960)은 제3회 부일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강대진 감독의 <마부>(1961)에 출연하고, 신상옥 감독의 <로맨스 그레이>(1963)로 제10회 아시아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김수용 감독의 <혈맥>(1963), 김강윤 감독의 <역마>(1967), 김수용 감독의 <만선>(1967) 등은 그에게 각종 영화상을 수상하는 계기가 된 영화이다. 이렇게 한국영화의 전성기에 가장 한국적이면서 서민적인 인물의 주인공으로 김승호는 활약했으며, 특히 아시아 영화제에서 다수의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됐다. 당시의 관객들은 김승호를 통해 한국인의 정서를 보았으며, 그를 통해 그들의 애환을 달랬던 것이다. 그는 후배들에게 "좋은 연기자가 되려면 무서운 노력이 필요하다. 어느 찬스로 잠시 별같이 반짝인다고 해서 안이해서는 안된다. 영원히 반짝이는 별이 되기 위해서는 고뇌와 자기 노력으로 인간수업을 게을리 하지 말라... 구름만 껴도 보이지 않는 별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했었다고 한다. 그는 한국 영화사에서 기억해야 할 영화인 중에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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