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11-20 출생 요조 숙녀에서 요화 그리고 현모양처에서 여걸에 이르기까지 한국영화 전성기를 주름잡던 여배우 최은희는 1926년 중농인 최영환의 넷째딸로 태어났으며, 본명은 최경순이다. 서울에서 성장하여 경성기예 고등여학교를 졸업하고, 그녀가 18세 되던 해에 극단 <아랑>의 단원으로 첫 무대에 서게 됐다. 그후 그녀는 연극계의 스타가 되어 <현대> 등의 극단에서 활약하고, <토월회>와 극단 <실험>에서도 활동하였다. 이 무렵 영화출연 섭외로 신강균 감독의 <새로운 맹서>(1948)에 출연하여 데뷔하게 된다. 한국의 여성미를 가장 잘 표현한 여배우라는 찬사를 받으며 무대와 스크린 양쪽에서 인기스타로 부상하게 된다.
그녀는 6.25 동란 때 인민군에 피납되고, 영화계에 데뷔하면서 만난 남편 김학성과 결별한 후, 깊은 침체기에 빠지게 된다. 그럴 때 신상옥 감독의 데뷔작 <악야>(1952)에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제 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이후 신상옥 감독이 만든 영화에 최은희는 단골 주연으로 기용되면서 높은 인기를 구가하게 된다. 그녀는 외모만 뛰어난 연기자로 머문게 아니라 다양한 역할을 훌륭하게 연기하며 인기 있는 배우로서 전성기를 구가한다.
그러니까 <지옥화>(1958)로 최은희는 부일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되는데, 여기서의 양공주 연기와 <성춘향>(1961)에서의 정조를 지키려는 요조숙녀 연기를, 이어서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와 <동심초>(1959)에서의 현모양처 역을, 그리고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상록수>(1961)에서의 일제시대 농촌계몽을 위해 헌신하다가 꽃을 피우지 못하고 죽어가는 여인의 역할과 같은 강인한 모습까지 제대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청일전쟁과 여걸민비>(1965)에 이르면 투쟁적인 여성해방의 이미지마저 깃든 연기를 펼치게 된다. 그녀는 이 영화로 제13회 아시아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1960년대 전성기 시절의 최은희는 가냘프고 우아한 여성의 이미지 속에서 강인한 한국여인상의 표상인 모성애가 강한 어머니상을 등장시켰다. 1978년 북한으로 피랍된 이후, 그곳에서 신상옥 감독과 만든 <소금>(1985)에서도 강한 어머니상을 훌륭하게 연기해 내 제14회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여자 연기상을 수상하는 기록을 남긴다.
그녀는 한국영화계에서 서서히 물러나면서 안양예술고등학교(1964)를 설립하며 교장으로 부임하면서 후학을 양성하는데도 신경을 썼으며, 극단 <배우극장>(1967)을 창립하여 다시 연극무대에 서기도 하였다. 무대 50여 회와 영화 150여편에 출연하며 국내의 영화제가 수여하는 다수의 상을 수상하며 활발한 활동을 계속했던 것이다.
1986년 북한을 탈출하여 미국에서 신상옥 감독과 함께 거주하는 최은희는 "아직도 최초 무대에서 무명의 그녀에게 보내 준 팬들의 박수 소리를 듣고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팬들의 박수소리를 잊지 않고 영화를 사랑하며, 자신만의 연기세계를 구축한, 한국영화의 전성기 시절 한국을 대표하는 여배우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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