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 허드슨

Rock Hudson 

198,309관객 동원
 1925-11-17 출생ㅣ미국ㅣ전투 비행대(1948) 데뷔
1925년 11월 17일 미국 일리노이주 위넷카 Winnetka에서 태어난 록 허드슨의 본명은 로이 셰러 Roy Scherer 에다가 그의 엄마가 1930년대에 재혼하면서 피츠제럴드 Fitzgerald라는 성을 더 붙여 주어 원래는 무척 길었다. 일리노이주 위넷카 Winnetka의 트리에 Trier High 고등학교 다닐 당시 학생들로부터 인기를 한 몸에 받았지만 공부에는 별 흥미가 없었던 록 허드슨은 학창시절부터 배우가 될 것을 결심하였지만 전쟁 때문에 해군에 입대하느라 계획에 차질이 생기게 되었다. 전후, 새로 정착한 캘리포니아에서 우체부, 전화회사 직원, 트럭 운전수, 배달부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던 그는 오로지 배우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자신의 사진을 여러 스튜디오에 돌렸고 몇 번의 인터뷰 끝에 스타가 되려면 이름을 줄이는 것이 좋겠다는 충고를 받고는 이름은 Lance 와 Derek 그리고 Rock 중에서 Rock으로 고르고 성은 자동차 이름 중에 하나인 Hudson을 골라서 Rock Hudson으로 지었다. 유니버설사와 계약한 허드슨은 바로 워너 브러더스사에 빌려져서 그의 첫 영화 <전투 비행대: Fighter Squadron>(1948)에 출연한다. 이 젊은 배우의 대성을 점쳤던 감독 라울 월시 Raoul Walsh의 예견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니버설사로 돌아가서는 조연급이나 악역을 주로 맡아 기대에 못 미치는 연기 경력을 쌓아 나갔다. <윈체스터 73: Winchester 73>(1950) 에서의 호연으로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는 했지만 스튜디오는 여전히 그의 연기력보다는 육체적인 매력을 중시하여 출연하는 영화마다 그의 셔츠를 벗기기에 급급할 정도였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그가 출연하는 영화들의 수준은 향상되어 <거대한 강박관념: Magnificent Obsession>(1954)과 <전송가: Battle Hymn>(1957) 같은 영화에 출연하게 되고 그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조지 스티븐스 George Stevens 감독의 <자이언트: Giant>(1956)에서 빅 베네딕트 Bick Benedict 역을 연기하게 되었다. 이 작품에서 허드슨은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제임스 딘에 버금가는 연기를 선보여 기존에 그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평단으로부터 비로소 인정을 받기에 이른다. 이후 여러 편의 영화는 물론 인기 탐정물 <맥밀란 앤 와이프: McMillan and Wife>(1971), 1980년대 초반에는 최고의 인기 홈드라마 <다이너스티: Dynasty>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주변의 동료들로부터 뛰어난 스포츠 맨, 성실한 배우, 친절한 남성으로 인정받던 그였지만 사생활에 있어서는 동성연애자라는 사실이 그를 힘들게 했다. 이 사실은 여러 해 동안 헐리우드에 소문으로 떠돌았으나 1980년대 초반 그가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후에야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그는 육신을 점점 망가뜨려가는 병마와 언론의 저급한 관심과 오해 그리고 대중들의 도덕적인 비판에 저항하며 많은 친구와 팬, 그리고 동료들로부터 보호받고 위로받는 가운데 마지막 남은 삶을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나가며 마치려 했다. 1985년 10월 2일 결국 에이즈로 인해 숨을 거두게 된 허드슨은 에이즈와의 사투를 숨기지 않고 낱낱이 대중에게 드러낸 정신적인 용기와 위대함을 지닌 첫 번째 스타로 팬들의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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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11-17 출생미국전투 비행대(1948) 데뷔
1925년 11월 17일 미국 일리노이주 위넷카 Winnetka에서 태어난 록 허드슨의 본명은 로이 셰러 Roy Scherer 에다가 그의 엄마가 1930년대에 재혼하면서 피츠제럴드 Fitzgerald라는 성을 더 붙여 주어 원래는 무척 길었다. 일리노이주 위넷카 Winnetka의 트리에 Trier High 고등학교 다닐 당시 학생들로부터 인기를 한 몸에 받았지만 공부에는 별 흥미가 없었던 록 허드슨은 학창시절부터 배우가 될 것을 결심하였지만 전쟁 때문에 해군에 입대하느라 계획에 차질이 생기게 되었다. 전후, 새로 정착한 캘리포니아에서 우체부, 전화회사 직원, 트럭 운전수, 배달부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던 그는 오로지 배우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자신의 사진을 여러 스튜디오에 돌렸고 몇 번의 인터뷰 끝에 스타가 되려면 이름을 줄이는 것이 좋겠다는 충고를 받고는 이름은 Lance 와 Derek 그리고 Rock 중에서 Rock으로 고르고 성은 자동차 이름 중에 하나인 Hudson을 골라서 Rock Hudson으로 지었다. 유니버설사와 계약한 허드슨은 바로 워너 브러더스사에 빌려져서 그의 첫 영화 <전투 비행대: Fighter Squadron>(1948)에 출연한다. 이 젊은 배우의 대성을 점쳤던 감독 라울 월시 Raoul Walsh의 예견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니버설사로 돌아가서는 조연급이나 악역을 주로 맡아 기대에 못 미치는 연기 경력을 쌓아 나갔다. <윈체스터 73: Winchester 73>(1950) 에서의 호연으로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는 했지만 스튜디오는 여전히 그의 연기력보다는 육체적인 매력을 중시하여 출연하는 영화마다 그의 셔츠를 벗기기에 급급할 정도였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그가 출연하는 영화들의 수준은 향상되어 <거대한 강박관념: Magnificent Obsession>(1954)과 <전송가: Battle Hymn>(1957) 같은 영화에 출연하게 되고 그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조지 스티븐스 George Stevens 감독의 <자이언트: Giant>(1956)에서 빅 베네딕트 Bick Benedict 역을 연기하게 되었다. 이 작품에서 허드슨은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제임스 딘에 버금가는 연기를 선보여 기존에 그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평단으로부터 비로소 인정을 받기에 이른다. 이후 여러 편의 영화는 물론 인기 탐정물 <맥밀란 앤 와이프: McMillan and Wife>(1971), 1980년대 초반에는 최고의 인기 홈드라마 <다이너스티: Dynasty>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주변의 동료들로부터 뛰어난 스포츠 맨, 성실한 배우, 친절한 남성으로 인정받던 그였지만 사생활에 있어서는 동성연애자라는 사실이 그를 힘들게 했다. 이 사실은 여러 해 동안 헐리우드에 소문으로 떠돌았으나 1980년대 초반 그가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후에야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그는 육신을 점점 망가뜨려가는 병마와 언론의 저급한 관심과 오해 그리고 대중들의 도덕적인 비판에 저항하며 많은 친구와 팬, 그리고 동료들로부터 보호받고 위로받는 가운데 마지막 남은 삶을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나가며 마치려 했다. 1985년 10월 2일 결국 에이즈로 인해 숨을 거두게 된 허드슨은 에이즈와의 사투를 숨기지 않고 낱낱이 대중에게 드러낸 정신적인 용기와 위대함을 지닌 첫 번째 스타로 팬들의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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