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알드리치

Robert Aldr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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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8-08-09 출생
1918년 8월 9일 미국 로드 아일랜드의 크랜스턴에서 태어난 로버트 알드리치는 1983년 12월 5일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서 숨졌다.
알드리치는 버지니아대학에서 법학과 경제학을 전공하고 TV연출을 하게 된다. 영화계에 입문하여 오랫동안 여러감독 밑에서 조감독의 생활을 하던 알드리치는 채플린의 <라임라이트: Limelight>의 조감독으로도 일했었다.
데뷔작 < Vera Cruz>(1952)가 좋은 평을 받으면서 순조롭게 헐리우드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한다. < The Big Knife>로 베니스 영화제에 진출한 알드리치는 멜로드라마 <낙엽:Autumn Leaves>(1956)으로 베를린 영화제에서도 주목을 받게 되고 그해 전쟁영화 <공격: Attack>(1956)으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이탈리아 비평가상을 받는다.
폴 슈레이더가 "필름누아르의 걸작"이라고 부른 <키스 미 데들리>(1955)는 하드보일드 탐정영화의 관습을 파괴하면서 자신만의 특징적인 아이러니와 허무주의를 밑바탕에 깔면서 물신주의 숭배의 극치를 달리는 미국 이데올로기의 허상을 폭로한다.
고딕 호러 영화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What Ever Happened to Baby Jane?>(1962)는 칸느 영화제 경쟁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는데 이 작품은 캠프 장르를 정의내인 영화로 불리운다. <추악한 12인:The Dirty Dozen>(1967),서부극 <울자나족의 습격:Ulzana''''''''s Raid>(1972), <허슬: Hustle>(1975), 경찰영화 <소년 성가대: The Choirboys >(1977)등 헐리우드 장르영화를 만들면서 그 장르의 관습을 파괴하여 장르에 내재된 이데올로기의 환상 역시 파괴했던 감독으로 평가받고 있다.
< ...All the Marbles>(1981)을 마지막 작품으로 알드리치는 건강이 악화되어 영화계를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한다. 알드리치는 스튜디오 체제내에서나 독립 제작자로서나 보기드문 성공을 이룬 감독이며 주류에서 영화를 만들면서도 언제나 미국 사회의 가장 민감한 부분을 날카롭게 해부했던 급진주의자로 영화사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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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08-09 출생
1918년 8월 9일 미국 로드 아일랜드의 크랜스턴에서 태어난 로버트 알드리치는 1983년 12월 5일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서 숨졌다.
알드리치는 버지니아대학에서 법학과 경제학을 전공하고 TV연출을 하게 된다. 영화계에 입문하여 오랫동안 여러감독 밑에서 조감독의 생활을 하던 알드리치는 채플린의 <라임라이트: Limelight>의 조감독으로도 일했었다.
데뷔작 < Vera Cruz>(1952)가 좋은 평을 받으면서 순조롭게 헐리우드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한다. < The Big Knife>로 베니스 영화제에 진출한 알드리치는 멜로드라마 <낙엽:Autumn Leaves>(1956)으로 베를린 영화제에서도 주목을 받게 되고 그해 전쟁영화 <공격: Attack>(1956)으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이탈리아 비평가상을 받는다.
폴 슈레이더가 "필름누아르의 걸작"이라고 부른 <키스 미 데들리>(1955)는 하드보일드 탐정영화의 관습을 파괴하면서 자신만의 특징적인 아이러니와 허무주의를 밑바탕에 깔면서 물신주의 숭배의 극치를 달리는 미국 이데올로기의 허상을 폭로한다.
고딕 호러 영화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What Ever Happened to Baby Jane?>(1962)는 칸느 영화제 경쟁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는데 이 작품은 캠프 장르를 정의내인 영화로 불리운다. <추악한 12인:The Dirty Dozen>(1967),서부극 <울자나족의 습격:Ulzana''''''''s Raid>(1972), <허슬: Hustle>(1975), 경찰영화 <소년 성가대: The Choirboys >(1977)등 헐리우드 장르영화를 만들면서 그 장르의 관습을 파괴하여 장르에 내재된 이데올로기의 환상 역시 파괴했던 감독으로 평가받고 있다.
< ...All the Marbles>(1981)을 마지막 작품으로 알드리치는 건강이 악화되어 영화계를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한다. 알드리치는 스튜디오 체제내에서나 독립 제작자로서나 보기드문 성공을 이룬 감독이며 주류에서 영화를 만들면서도 언제나 미국 사회의 가장 민감한 부분을 날카롭게 해부했던 급진주의자로 영화사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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