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휴스턴

John Huston 

1,707,295관객 동원
 1906-08-05 출생
1906년 8월 미국 네바다주에서 태어난 휴스턴은 아버지가 월터 휴스턴으로 배우였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영화계에 쉽게 접할 수 있었던 휴스턴은 고등학교때 아마추어 권투선수로 활약하기도하였다.
졸업 후 그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헐리우드에서 시나리오작가가 된다. 그러나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런던으로 건너가 영화사에 일도 배우고 그림을 공부하기도 하였다.

다시 헐리우드로 돌아온 휴스턴은 배우로서 간간이 출연도 하였지만 30년대는 본격적인 극작가로서 활동하게 된다.
당시 워너브러더스사에 소속되어 있던 중 감독으로 일할 것을 권유받아 데뷔작이자 대표작인 된 <말타의 매: The Maltese Falcon>(1941)을 만든다. 이 영화는 필름 느와르의 정상을 차지함은 물론 기원을 이룬 영화로 평가받았다.
이 때 기용된 험프리 보가트와 인연을 맺게 되어 동료배우로서 그의 영화에 자주 출연하게 된 계기가 된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군대에 입대하면서도 영화를 지속적으로 만들낸다. 전쟁중에 만든 영화들도 사실주의적인 면이 돋보이는 등 오히려 그의 진가를 확인하게 된다.

휴스턴은 <시에라 마드라의 황금: The Treasure of the Sierra Madre>(1948)에 배우인 아버지를 출연시키고 자신은 아카데미 감독상과 각본상을, 아버지에겐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게 해 주었다.
1951년 또 하나의 걸작 험프리 보가트와 캐서린 헵번 주연의 <아프리카의 여왕>을 탄생시킨다. 이 영화로 다시 한 번 평단과 흥행에 성공하였지만 매카시즘으로 인해 그는 이미 헐리우드를 떠난 상태였다.

미국에서 아일랜드로 거너가고 주로 유럽에서 나머지 영화들을 만들게 된다.
<백경: Moby Dick>(1956), <용서받지 못할 자: The Unforgiven>(1960), <왕이 되려한 사나이: The Man Who Would Be King>(1975), 유일한 뮤지컬 <애니: Annie>(1982) 등을 감독하면서 배우로서도 활동하였는데 <차이나타운: Chinatown>(1974)가 배우로서 대표작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주가는 50년대 후반부터 떨어지기 시작했고 마지막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에 노미네이트된 <프리지스 오너: Prizzis Honor>(1985)로 약간의 명예를 회복하기도 하였다.

존 휴스턴의 작품은 1940년대가 전성기로 필름 느와르와 사실주의적인 미국영화를 보여준 대표적 감독으로 불리고 있다.
1987년 8월에 숨진 휴스턴은 5번의 결혼을 했으며 이들 자녀중 딸 안젤리카 휴스턴이 헐리우드에서 배우로서 많은 활약을 하고 있어 3대가 영화계보를 잇는 집안이 되었다.
더보기
1906-08-05 출생
1906년 8월 미국 네바다주에서 태어난 휴스턴은 아버지가 월터 휴스턴으로 배우였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영화계에 쉽게 접할 수 있었던 휴스턴은 고등학교때 아마추어 권투선수로 활약하기도하였다.
졸업 후 그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헐리우드에서 시나리오작가가 된다. 그러나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런던으로 건너가 영화사에 일도 배우고 그림을 공부하기도 하였다.

다시 헐리우드로 돌아온 휴스턴은 배우로서 간간이 출연도 하였지만 30년대는 본격적인 극작가로서 활동하게 된다.
당시 워너브러더스사에 소속되어 있던 중 감독으로 일할 것을 권유받아 데뷔작이자 대표작인 된 <말타의 매: The Maltese Falcon>(1941)을 만든다. 이 영화는 필름 느와르의 정상을 차지함은 물론 기원을 이룬 영화로 평가받았다.
이 때 기용된 험프리 보가트와 인연을 맺게 되어 동료배우로서 그의 영화에 자주 출연하게 된 계기가 된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군대에 입대하면서도 영화를 지속적으로 만들낸다. 전쟁중에 만든 영화들도 사실주의적인 면이 돋보이는 등 오히려 그의 진가를 확인하게 된다.

휴스턴은 <시에라 마드라의 황금: The Treasure of the Sierra Madre>(1948)에 배우인 아버지를 출연시키고 자신은 아카데미 감독상과 각본상을, 아버지에겐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게 해 주었다.
1951년 또 하나의 걸작 험프리 보가트와 캐서린 헵번 주연의 <아프리카의 여왕>을 탄생시킨다. 이 영화로 다시 한 번 평단과 흥행에 성공하였지만 매카시즘으로 인해 그는 이미 헐리우드를 떠난 상태였다.

미국에서 아일랜드로 거너가고 주로 유럽에서 나머지 영화들을 만들게 된다.
<백경: Moby Dick>(1956), <용서받지 못할 자: The Unforgiven>(1960), <왕이 되려한 사나이: The Man Who Would Be King>(1975), 유일한 뮤지컬 <애니: Annie>(1982) 등을 감독하면서 배우로서도 활동하였는데 <차이나타운: Chinatown>(1974)가 배우로서 대표작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주가는 50년대 후반부터 떨어지기 시작했고 마지막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에 노미네이트된 <프리지스 오너: Prizzis Honor>(1985)로 약간의 명예를 회복하기도 하였다.

존 휴스턴의 작품은 1940년대가 전성기로 필름 느와르와 사실주의적인 미국영화를 보여준 대표적 감독으로 불리고 있다.
1987년 8월에 숨진 휴스턴은 5번의 결혼을 했으며 이들 자녀중 딸 안젤리카 휴스턴이 헐리우드에서 배우로서 많은 활약을 하고 있어 3대가 영화계보를 잇는 집안이 되었다.
더보기
미정
사업자등록번호 211-88-91225 l 통신판매업 신고번호 제2016-서울강남-02630호 l 대표이사 정이은
㈜맥스무비 l 06099 서울시 강남구 선릉로 125길 8, 301호(논현동, 유진빌딩)
인터넷신문등록번호 서울 아 02730 | 등록일자 2013년 7월 11일 | 제호 맥스무비 닷컴 | 발행인 : 정이은ㅣ편집인 : 이은지

Copyright ⓒ Asiatribune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