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서린 터너

Kathleen Tur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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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4-06-19 출생ㅣ미국 미조리주 스프링필드ㅣ콘랙 (1974) 데뷔
1954년 6월 19일 미국 미조리주 스프링필드에서 태어나 캐서린 터너는 가공하지 않은 것 같은 자연스러움과 섹시함, 지적인 용모와 위트로 중년의 나이에 더 많은 영화출연을 하는 여배우다.

미국 대사관의 딸로 자라난 캐서린 터너는 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캐나다, 쿠바, 베네수엘라, 영국 등 다양한 곳으로 이주해가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려서부터 극장을 다니면서 연기자의 꿈을 키우게 된 캐서린 터너는 런던에 위치한 Central School of Speech and Drama에서 연기공부를 시작하고 미주리 주립 대학과 메릴랜드 대학에서 드라마를 전공했다.
1974년 <콘랙: Conrack>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은 캐서린 터너는 이후 주로 브로드웨이와 TV주말극, 광고 모델로 그 모습을 드러내다가 81년 로렌스 캐스단 감독의 네오 느와르 <보디 히트>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영화사상 가장 섹시한 팜므 파탈을 연기해 냈다는 평을 들은 캐서린 터너는 육감적인 몸매로 윌리엄 허트를 파탄으로 몰아넣는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
캐서린 터너는 이후 <크라임 오브 패션>(1984)등 애로틱한 이미지를 강조한 영화에 집중적으로 출연하다가 같은 해 마이클 더글라스, 대내 드 비토와 주연을 맡은 로맨스 어드벤처물 <로맨싱 스톤>(1984)에 출연해 여성스러우면서도 코믹한 배역으로 이 영화가 박스 오피스 정상을 차지하는데 한 몫을 다한다.
이 영화는 이듬해 <나일의 대모험>(1985)이란 제목의 후속편이 만들어져 다시금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로맨싱 스톤>으로 골든 글로브 뮤지컬/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을 따낸 터너는 <프리지스 오너>(1985)로 연이어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
섹시한 여배우로 배우생활을 시작한 터너는 스펙트럼이 넓은 여배우로 코미디나 정통적인 드라마, <여형사 워쇼스키>(1991)와 같은 액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배역에서 각각 영화의 특성에 맞는 연기를 잘 소화해냈다.

운동신경이 발달한 터너는 웬만한 액션 연기는 스턴트 없이 소화해 내기도 했는데 <여형사 워쇼스키>에서는 실제로 코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기도 했다.
터너는 또한 합성 애니메이션 <누가 로저 레빗을 모함했는가: Who Framed Roger Rabbit?>(1988)에서 특유의 허스키 보이스로 제시카 레빗의 목소리 연기를 담당하기도 했다.
<로맨싱 스톤>팀이 다시금 모여 만든 <장미의 전쟁>(1989)은 사회적으로도 화제가 됐을만큼 독특한 이야기 구조로 화제를 모은 작품으로 역시 박스 오피스 정상에까지 오른 작품이다.
터너는 나이가 들면서 여성적인 매력을 유지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고 얘기했지만 테크노 팝 그룹 팔코는 "캐서린 터너의 키스: The Kiss of Kathleen Turner"란 제목의 노래를 발표하기도 했다.

83년에 결혼한 제이 와이스 사이에 한 명의 딸을 둔 터너는 1999년 <베이비 지니언스: Baby Geniuses>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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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06-19 출생미국 미조리주 스프링필드콘랙 (1974) 데뷔
1954년 6월 19일 미국 미조리주 스프링필드에서 태어나 캐서린 터너는 가공하지 않은 것 같은 자연스러움과 섹시함, 지적인 용모와 위트로 중년의 나이에 더 많은 영화출연을 하는 여배우다.

미국 대사관의 딸로 자라난 캐서린 터너는 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캐나다, 쿠바, 베네수엘라, 영국 등 다양한 곳으로 이주해가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려서부터 극장을 다니면서 연기자의 꿈을 키우게 된 캐서린 터너는 런던에 위치한 Central School of Speech and Drama에서 연기공부를 시작하고 미주리 주립 대학과 메릴랜드 대학에서 드라마를 전공했다.
1974년 <콘랙: Conrack>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은 캐서린 터너는 이후 주로 브로드웨이와 TV주말극, 광고 모델로 그 모습을 드러내다가 81년 로렌스 캐스단 감독의 네오 느와르 <보디 히트>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영화사상 가장 섹시한 팜므 파탈을 연기해 냈다는 평을 들은 캐서린 터너는 육감적인 몸매로 윌리엄 허트를 파탄으로 몰아넣는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
캐서린 터너는 이후 <크라임 오브 패션>(1984)등 애로틱한 이미지를 강조한 영화에 집중적으로 출연하다가 같은 해 마이클 더글라스, 대내 드 비토와 주연을 맡은 로맨스 어드벤처물 <로맨싱 스톤>(1984)에 출연해 여성스러우면서도 코믹한 배역으로 이 영화가 박스 오피스 정상을 차지하는데 한 몫을 다한다.
이 영화는 이듬해 <나일의 대모험>(1985)이란 제목의 후속편이 만들어져 다시금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로맨싱 스톤>으로 골든 글로브 뮤지컬/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을 따낸 터너는 <프리지스 오너>(1985)로 연이어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
섹시한 여배우로 배우생활을 시작한 터너는 스펙트럼이 넓은 여배우로 코미디나 정통적인 드라마, <여형사 워쇼스키>(1991)와 같은 액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배역에서 각각 영화의 특성에 맞는 연기를 잘 소화해냈다.

운동신경이 발달한 터너는 웬만한 액션 연기는 스턴트 없이 소화해 내기도 했는데 <여형사 워쇼스키>에서는 실제로 코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기도 했다.
터너는 또한 합성 애니메이션 <누가 로저 레빗을 모함했는가: Who Framed Roger Rabbit?>(1988)에서 특유의 허스키 보이스로 제시카 레빗의 목소리 연기를 담당하기도 했다.
<로맨싱 스톤>팀이 다시금 모여 만든 <장미의 전쟁>(1989)은 사회적으로도 화제가 됐을만큼 독특한 이야기 구조로 화제를 모은 작품으로 역시 박스 오피스 정상에까지 오른 작품이다.
터너는 나이가 들면서 여성적인 매력을 유지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고 얘기했지만 테크노 팝 그룹 팔코는 "캐서린 터너의 키스: The Kiss of Kathleen Turner"란 제목의 노래를 발표하기도 했다.

83년에 결혼한 제이 와이스 사이에 한 명의 딸을 둔 터너는 1999년 <베이비 지니언스: Baby Geniuses>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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