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프라이스

Vincent Pr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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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1-05-27 출생ㅣ미국ㅣ호화스런 서비스(1938) 데뷔
1911년 5월 27일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 루이스에서 태어난 빈센트 프라이스는 예일대를 다닌 수재였고, 런던으로 건너가 순수미술을 공부했었다.미국으로 돌아와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오손 웰즈와 함께 머큐리 극단에서 활동했었다. 영화로 발을 넓힌 그는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계약을 맺고서 1938년 <호화스런 서비스: Service de Luxe>(1938)로 데뷔한다. 하지만, 단역이나 조연에 머물면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프라이스는 20세기 폭스사로 옮기지만 역시 뜨는 데 실패한다. 브로드웨이에서 바쁜 나날을 보내다가 헐리우드로 돌아온 프라이스는 <버나데트의 노래: The Song of Bernadette>(1943)에서 인상깊은 조연으로 떠오른다. <라우라: Wilson and Laura>(1944)등 일련의 영화들에서 확실한 이미지를 구축한 그는 <쇼크: Shock!>에서 미치광이 정신과의사역으로 주연을 맡기에 이른다. 꺾다리에다 맥이 없어 보이는 프라이스는 웬지 겸손한 태도를 지니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말할 수 없는 혐오감과 불쾌감을 주는 인물들을 주로 연기했다. 공포영화사에 길이 남을 <밀랍의 집: House of Wax>(1953)에서 보여준 연기로 이후 공포영화에서 가장 인기있는 배우로 자리잡았다. <플라이: The Fly>(1958)이나 <악령들린 집: House on Haunted Hill>(1958)뿐아니라 로저 코먼이 기획한 에드가 앨런 포 시리즈에 계속해서 출연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70년대 들어서도 <혐오스런 닥터 피브스: The Abominable Dr. Phibes>(1971)와 그 속편 < Dr. Phibes Rises Again>(1972)등을 통해 여전히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70년대 중반부터 영화계를 떠나 한때 TV 요리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었다. 미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그는 미술에 관련된 집필과 강연을 꾸준히 해나갔다. 팀 버튼이 그의 수제자였으며, 버튼의 작품인 <가위손>(1990)이 그의 유작이다. 그는 세 번 결혼했으며 두 번째 부인 매리 그랜트 Mary Grant 와 근 반세기를 함께 보냈지만 그의 마지막을 지켜본 것은 세 번째 부인 코랄 브라운 Coral Browne 이다. 1993년 10월 25일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 앤젤레스에서 위암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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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05-27 출생미국호화스런 서비스(1938) 데뷔
1911년 5월 27일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 루이스에서 태어난 빈센트 프라이스는 예일대를 다닌 수재였고, 런던으로 건너가 순수미술을 공부했었다.미국으로 돌아와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오손 웰즈와 함께 머큐리 극단에서 활동했었다. 영화로 발을 넓힌 그는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계약을 맺고서 1938년 <호화스런 서비스: Service de Luxe>(1938)로 데뷔한다. 하지만, 단역이나 조연에 머물면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프라이스는 20세기 폭스사로 옮기지만 역시 뜨는 데 실패한다. 브로드웨이에서 바쁜 나날을 보내다가 헐리우드로 돌아온 프라이스는 <버나데트의 노래: The Song of Bernadette>(1943)에서 인상깊은 조연으로 떠오른다. <라우라: Wilson and Laura>(1944)등 일련의 영화들에서 확실한 이미지를 구축한 그는 <쇼크: Shock!>에서 미치광이 정신과의사역으로 주연을 맡기에 이른다. 꺾다리에다 맥이 없어 보이는 프라이스는 웬지 겸손한 태도를 지니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말할 수 없는 혐오감과 불쾌감을 주는 인물들을 주로 연기했다. 공포영화사에 길이 남을 <밀랍의 집: House of Wax>(1953)에서 보여준 연기로 이후 공포영화에서 가장 인기있는 배우로 자리잡았다. <플라이: The Fly>(1958)이나 <악령들린 집: House on Haunted Hill>(1958)뿐아니라 로저 코먼이 기획한 에드가 앨런 포 시리즈에 계속해서 출연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70년대 들어서도 <혐오스런 닥터 피브스: The Abominable Dr. Phibes>(1971)와 그 속편 < Dr. Phibes Rises Again>(1972)등을 통해 여전히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70년대 중반부터 영화계를 떠나 한때 TV 요리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었다. 미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그는 미술에 관련된 집필과 강연을 꾸준히 해나갔다. 팀 버튼이 그의 수제자였으며, 버튼의 작품인 <가위손>(1990)이 그의 유작이다. 그는 세 번 결혼했으며 두 번째 부인 매리 그랜트 Mary Grant 와 근 반세기를 함께 보냈지만 그의 마지막을 지켜본 것은 세 번째 부인 코랄 브라운 Coral Browne 이다. 1993년 10월 25일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 앤젤레스에서 위암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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